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원·달러 환율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진화 노력에 숨고르기 국면으로 돌입했다. 조기 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직 때가 아니라고 일축했다.
통화·금리정책과 관련해 ‘보이는 손’을 자처한 중앙은행 수장의 행보에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는 분위기다.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참석 차 방미 중인 이 총재는 17일 외신과 인터뷰를 하며 이달 들어 환율 변동성이 확대된 상황에 대해 의견을 밝혔다.
그는 “시장 펀더멘털을 고려할 때 최근의 변동성은 다소 과도하다”며 “환율 변동성이 계속될 경우 우리는 시장 안정화 조치에 나설 준비가 돼 있고 그렇게 할 충분한 도구와 자원도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지연, 유럽의 6월 금리 인하 시사 등 악재에 더 오를 것으로 예상된 원·달러 환율은 이 총재의 강력한 구두 개입에 1380원대 초반으로 내려앉으며 심리적 마지노선인 ‘1400원’ 선을 지켰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1390.0원에 개장한 환율은 전날보다 7.7원 내린 1386.8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달러화 강세에도 불구하고 외환당국의 개입 경계감이 환율 하락 압력으로 작용했다.
이 총재는 가파른 원화 절하의 원인에 대해 “달러화 강세와 지정학적 요인이 더해진 결과”라고 진단했다. 여전히 뜨거운 미국 고용 지표에 끈적한(Sticky) 물가까지 더해져 강달러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데다 이란의 이스라엘 공습 후 지정학적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원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이 총재의 인터뷰 직전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최근 지표는 견조한 성장과 지속적으로 강한 노동시장을 보여준다”면서 “인플레이션이 2%로 낮아진다는 더 큰 확신에 이르기까지 더 오랜 기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파월의 매파적 발언 이후 달러 강세가 더 뚜렷해졌다.
주변국 상황도 환율 상승 요인으로 꼽았다. 일본 엔화와 중국 위안화가 약세를 나타내면서 ‘프록시(Proxy·대리) 통화’인 원화가 동반 약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한·일 양국의 경제 수장이 역사상 처음으로 공동 구두 개입에 나선 이유다. 지난 15일 엔·달러 환율은 1990년 6월 이래 약 34년 만에 처음으로 장중 달러당 154엔대로 떨어진 바 있다.
이 총재는 금리 향방에 대해서도 팁을 건넸다. 주요국 통화정책이 디커플링(탈동조화)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그는 “아직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터닝 신호를 준 상태가 아니다”라며 “한국은 미국, 유럽과 달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근원물가 상승률보다 높고 끈적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전망과 관련해선 “당초 예상보다 지연될 수 있으나 연내 인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1년 반 전에 미국이 금리를 인상할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면서 “금리 인하에 따른 충격도 1년 반 전처럼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오는 21일 취임 2주년을 맞는 이 총재는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와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그룹(WBG) 춘계회의’를 마치고 23일 귀국한다. 글로벌 경제 상황과 지속 가능 금융, 글로벌 자본 이동 등 주요 이슈에 대해 회원국 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 국제 금융기구 인사들과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 이날은 크리슈나 스리니바산 IMF 아태국장과 ‘한국의 관점에서 보는 통화정책에 대한 통찰’을 주제로 대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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