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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현장을 이탈한 전공의가 9000명에 육박하는 가운데 미국에서 전공의 수련을 받기 위해 필요한 서류를 정부가 의도적으로 발급해주지 않고 있다는 의혹이 일면서 의료계가 들끓고 있다.
17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의과대학 졸업 후 전공의 수련을 준비 중이던 20여 명이 보건복지부에 미국 전공의 수련 프로그램 신청에 필요한 J-1 비자를 발급 받는 데 필요한 해외수련추천서(SoN·Statement of Need)를 신청했지만 거부 당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J-1 비자는 미국 시민권이나 영주권이 없는 한국 의대 졸업생이 미국에서 전공의 수련을 받기 위해 필요한 서류다. 교류비자인 만큼 미국 외국 의대졸업생 교육위원회(ECFMG)가 후원의 조건으로 신청자에게 자국 보건당국의 추천서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 3월부터 예비 전공의들이 복지부에 신청한 해외수련추천서 발급이 ‘수련 내용 기입이 올바르지 않다’는 이유로 반려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공교롭게도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에 반발해 집단 사직 후 병원을 떠난 직후부터 추천서 발급이 중단됐다는 것이다.
해외수련추천서 발급을 받지 못한 예비 전공의들은 올 여름부터 미국에서 시작되는 전공의 프로그램에 지원할 수 없다. 20여 명의 예비 전공의들은 주한미국대사관 등에 보낼 탄원서를 취합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탄원서를 통해 “정부가 초래한 의료대란이 2월 말 시작된 이후 한국 보건복지부는 J-1 비자가 필요한 프로그램에 매치된 예비 전공의 약 20명에게 해외수련추천서(SoN)를 발급하지 않고 있다”며 “마지막으로 확인된 SoN 발급은 의료대란이 일어나기 전인 2월 18일 요청 서류를 보낸 펠로우십 합격자가 신청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이번 J-1비자가 필요한 사람들은 의료대란의 당사자가 아니라 2023년 9월에 지원을 마쳤다는 점에서 현 상황과 전혀 무관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로부터 자유를 억압당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3월에 서류 요청을 보낸 펠로우십 지원자 뿐만 아니라 3월 매칭 후 요청을 보낸 거주권 신청자 중 SoN 발급을 받았다고 확인된 사람이 없다”며 “대한민국 정부의 이런 방침을 규탄하며 이들이 미래 수련 병원, 국립 레시던트 매칭 프로그램(NRMP·The National Resident Matching Program)’을 통한 매치 결과 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미국 정부의 도움을 요청한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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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의혹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차기 회장 당선인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론화하면서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해당 사실을 접한 상당수의 의사들은 “지금까지 SoN 발급이 필요한데 발급을 안 해준 사례가 없었다”며 복지부가 직권을 남용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제기했다. “정부가 국민을 대상으로 갑질을 하고 있다”거나 “범죄자가 아닌데 고의로 공민서 서류를 발급 안 해주면서 비자발급을 막는 게 말이 되느냐”며 소송으로 강경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반응도 있었다.
앞서 정부는 일부 전공의들이 병원으로 복귀하지 않은 채 한국을 떠나 미국 등 해외 취업을 꿈꾸는 데 대해 “행정처분을 받은 의사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이 지난달 22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 브리핑에서 J-1 비자를 거론하며 “한국 학생은 복지부의 추천서를 받아야 하는데 규정상 행정처분 대상자는 추천에서 제외하게 돼 있다. 전공의들이 이번에 처분을 받게 되면 추천서 발급 대상에서 제외되므로 미국의 의사가 되기 위한 길이 막힐 수 있다”고 발언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다만 해당 발언과 이번에 제기된 의혹은 무관하다는 게 현재 복지부의 공식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몇몇 의대생들이 SoN 발급 중단을 이유로 탄원서를 취합 중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정황을 파악 중”이라며 “의도적으로 추천서를 발급하지 않는다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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