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통해 허위사실 유포를 밥 먹듯이 하는 조선일보 등에 대해 명확하게 징계하고, 제도적으로 방지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국회에 들어가면 해야 할 제1호 법안.”
양문석 국회의원 당선인이 JTBC 인터뷰에서 밝힌 말이다. 언론계 출신 인사들이 대거 당선된 가운데 22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디어 전반의 구조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인데 개원 이전부터 언론을 대상으로 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입법이 언급되는 등 정파적 입법 논의나 정치적 갈등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언론계 출신 인사들 과방위 배정 가능성
언론 분야 전문성이 요구되지만 비인기 상임위원회인 과방위에는 언론계 출신 초선 의원들이 배정되는 경향이 있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미래(비례정당)의 언론인 출신 초선 당선인은 △신동욱 전 TV조선 앵커 △박정훈 전 TV조선 시사제작국장 △이상휘 전 데일리안 기자 △정연욱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 △김장겸 전 MBC 사장 등이 있다. 더불어민주당에선 △노종면 전 YTN 앵커 △이정헌 전 JTBC 앵커 △이훈기 전 OBS 기자 △정진욱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 △한민수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이 언론계 출신이다.
언론 유관단체에 소속됐거나 과거 언론활동을 했던 인사들도 과방위 배정 가능성이 있다. 재선인 김현 전 의원과 초선인 양문석 당선자는 방통위 상임위원 출신이다. 최민희 전 의원은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KBS ‘저널리즘토크쇼J’에 출연했던 강유정 당선인과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출신인 신장식 당선인도 과방위 배정 가능성이 있다.
야당에선 현재 과방위 소속인 고민정, 조승래, 민형배, 박찬대, 이인영, 이정문, 장경태 의원이 재선에 성공해 다시 배정될 가능성도 있다. 여당에선 현재 과방위 소속 의원 중 22대 총선 당선인이 없다.
선정적 입법·정치적 유불리 따른 논쟁 반복?
국회는 과방위 등을 중심으로 특정 매체나 언론에 특혜를 제공하거나 반대로 언론의 자유를 위협할 수 있는 과도한 규제 법안을 둘러싼 논쟁이 반복되고 있다. 현재 국회 개원 전이지만 양문석, 노종면 당선인은 언론 징벌적 손해배상제 추진 입장을 밝혔다.
일례로 이명박 정부 때 종합편성채널을 허가하는 방송법 개정이 이뤄졌다. 박근혜 정부 때는 새누리당이 주도한 포털·언론 규제 논의가 본격화됐고 민주당이 표현의자유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맞섰다. 문재인 정부 들어선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가짜뉴스’ 규제 법안을 내놓았고 국민의힘이 반발했다. 윤석열 정부에선 다시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 언론탄압성 조치에 반발하며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고 있다. 여당이 되면 언론 규제에 나서고, 야당이 되면 반대하는 경향이 반복되고 있다.
여야의 협의와 생산적인 논의가 필수적인 미디어기구의 구조와 관련한 법안도 ‘공수’에 따라 입장이 바뀌었다. 정부여당과 야당이 6:3으로 위원을 추천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정치 심의 논란이 커지면서 방심위 구조 개편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데 18대 국회 때 당시 최민희 의원이 방심위원을 여야 동수로 구성하는 법안을 발의했으나 민주당 집권 후 민주당이 관련 법안에 주목하지 않는 식이다. 오히려 야당이 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정용기 의원이 여야 추천을 7:6으로 바꾸는 법안을 발의했고 민주당은 호응하지 않았다.
정부 여당은 현재 방심위를 적극 활용하고 있지만 4년 전만 해도 미래통합당은 총선 공약으로 ‘방심위 폐지’를 제시했다.
과방위에선 절충을 찾기 힘든 입법 양극화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언론학회 언론법제윤리연구회·건국대 디지털커뮤니케이션연구센터가 과방위의 법안 공동발의자를 분석한 결과 민주당과 자유한국당(국민의힘) 두 축으로 확연히 갈라졌다. 특히 쟁점이 된 허위조작정보 법안 24건에 대한 공동발의자 네트워크 지형도를 보면 유사한 성격의 법안임에도 양당 의원이 공동 발의한 법안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장벽이 높았다.
과방위가 ‘기피 상임위’이기에 거센 발언이나 현안과 연계한 법안이 아니고선 존재감을 드러내기 어려운 면도 있다. 과방위는 다른 상임위와 달리 지역구에 유치할 수 있는 시설이나 지역 배분 예산이 제한적이다. 과방위 간사를 맡아 언론 관련 정치적 발언을 주도한 박성중 의원은 2018년 과방위 첫 배정 당시 인사말을 통해 “주변에서 과방위에 (배정)됐다고 하니 귀양갔다고 한다”고 밝혔다.
10년째 발 묶인 새 미디어법
과방위는 극한 대립이 반복되면서 법안처리율이 떨어지는 상임위라는 평가를 받는다. 2016년에는 1년간 법안처리 0건이라는 ‘기록’도 갖고 있다. 20대 국회 때인 2019년 문희상 국회의장이 과방위 여야 의원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20대 국회의 전체 법안처리율이 28.8%로 역대 최악의 상황인데 과방위는 평균에도 못 미치는 18.8%”라며 여야의 협력을 당부할 정도였다.
문제는 여야 갈등에 밀려 필요한 법안 논의가 때를 놓치는 일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고 있지만 법은 여전히 고정형TV 시대에 머물러 있다. 통합방송법 논의는 박근혜 정부 때부터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본격적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2019년 당시 과방위 간사인 김성수 민주당 의원이 인터넷미디어를 포괄하는 통합방송법을 발의하고 공청회를 여는 등 논의를 주도했지만 쟁점 현안에 밀렸다. 현재까지 입법은커녕 여야가 합의한 단일한 안도 마련하지 못했다. 쟁점이 많아 복잡한 데다 정치적 현안과 거리가 멀어 관심도가 떨어졌다.
윤석열 정부가 규제 완화 일변도로 치닫는 상황에서 정책적 대안 마련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국무총리실 산하 미디어·콘텐츠산업융합발전위원회에서 대대적인 방송 미디어 규제 완화를 골자로 한 ‘미디어·콘텐츠 산업융합 발전방안’을 발표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2024년 업무계획을 통해 규제 완화 조치와 함께 방송 보도에 관한 제재 조치 강화, 인터넷 게시물 삭제·임시 조치 대상을 ‘모욕’까지 확대 등 언론·표현의 자유 침해 소지가 있는 정책을 제시했다.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협력실장은 “22대 국회 과방위는 정권 심판 구호의 연장으로 윤석열 정권의 언론장악에 대한 위법성을 폭로할 수 있다”면서도 “이는 행정부 감시 기능의 일부이지 입법 기능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김동원 실장은 “행정부 감시가 언론장악 등을 비롯한 미디어 정책의 파행을 드러내는 비판이라면, 입법 활동은 그 대안을 제시하고 합의를 이뤄가는 과정”이라며 “시급한 건 올해 발표된 ‘미디어콘텐츠 산업융합 발전방안’과 ‘2024 방통위 업무계획’을 면밀히 검토하고 평가하는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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