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값이 연일 기록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국내 연기금은 정작 수혜를 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 현물·선물 상품을 운용 포트폴리오에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금 선물 등 파생상품은 현행 법령상 편입 가능하지만, 새로운 세부 자산군을 담기 위해선 기금운용위원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금 투자에 관심없는 연기금·기관
최근 금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뉴욕상품거래소에 따르면 6월 인도분 금 선물 가격은 8일(현지시간) 온스당 2331.70달러를 기록했다. 지난달 사상 처음 2100달러대를 돌파한 뒤 한달만에 2300달러도 뚫은 것이다.
안전자산의 대표격으로 꼽히는 금값이 날아오른 건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연내 기준금리 인하를 시사한 영향이 크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인플레이션 우려가 나오고 있음에도 하반기 기준금리를 내리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바 있다. 더욱이 대만지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등 지정학적 우려도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를 높이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달 16만 온스를 추가 매입했다고 밝혔으며, 인도, 터키, 동유럽 국가들도 금 매수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현재 금에 투자하지 않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의 자금을 위탁받아 운용하는 한국투자공사(KIC)도 투자 포트폴리오에 귀금속, 원자재 부문을 할당하지 않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대체투자 자산을 담는 멀티에셋 펀드 등을 통해 금에 일부 자금을 투자할 수 있지만 그 비중은 미미할 것”이라고 밝혔다.
파생상품시장에 정통한 관계자는 “국내 기관들은 금을 ‘무수익 자산’으로 보고 잘 담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현물을 직접 보유하기 어렵더라도 선물로 양방향 베팅도 가능하고 지금처럼 금값이 오를 땐 선물에서 프리미엄을 취할 수 있는데도 시장에선 관심이 낮다”고 말했다.
대체투자 자산군 편입 기준 ‘깐깐’
국민연금이 금을 비롯한 원자재에 투자하는 것을 아예 검토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국민연금연구원은 2017년 해외연기금의 상품(commodity) 투자사례를 소개하며 국민연금의 대체투자 자산군에 상품 도입을 검토해봐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당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 최대 연기금인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는 글로벌채권투자 부서에서 상품의 선물, 옵션 등에 투자하고 있다. 네덜란드 공적연금(ABP)는 상품 투자펀드를 구성해 농업, 에너지, 귀금속 섹터에 자금을 배치했다.
이 보고서는 “국민연금이 효율적인 위험관리와 함께 상품에 투자를 한다면, 투자시기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포트폴리오 분산효과를 높이고 인플레이션 개선 효과를 얻을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의 대체투자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투자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는 상황에서 상품을 새로운 대체투자 대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현재 국민연금의 투자 범주를 정해놓은 국민연금법 시행령에 따르면 금 선물과 같은 파생상품은 투자자산으로 편입이 가능하다. 문제는 실제 자산 포트폴리오에 편입하기 위해선 기금운용위원회의 인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 허들을 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체투자 세부자산군에 헤지펀드를 추가할 당시 기금위 의결이 ‘큰 산’으로 지적받았다. 2008년부터 기금위 산하 실무평가위원회가 헤지펀드 투자 방안을 보고했으나 기금위는 글로벌 금융위기 등 외부 환경이 안정되지 않았으며, 상품 특성상 구조가 복잡하다는 이유로 편입을 보류해왔다. 이후로도 해외투자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야한다는 목소리가 계속 제기되자 결국 2015년 2월 기금위는 대규모 해외 헤지펀드부터 편입을 허용했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헤지펀드 투자 허용도 3년이 넘게 걸렸고, 해외 사모대출펀드(PDF)도 승인을 결국 받았지만 시장에서 수요가 많아지는 시기에 맞춰 국민연금이 투자를 개시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특히 대체투자 부분은 새롭게 등장한 자산도 많아 국민연금의 대응이 늦춰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국민연금이 앞으로 자산배분 체계를 바꾸기로 하면서 금 현·선물에도 투자가 가능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앞서 국민연금은 오는 5월 중기자산배분에서 대체투자 부문부터 레퍼런스 포트폴리오(RP)를 적용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현재 국민연금은 전략적 자산배분(SAA)을 통해 매년 자산군 별로 목표 비중을 정하고 각 자산군이 벤치마크에 도달했는지를 평가한다. 그러나 레퍼런스 포트폴리오가 적용되면, 전체 성과를 기준으로 수익률을 본다.
예를 들어 어떤 부동산 자산에 투자할 때 위험도가 주식 40%, 채권 60%로 평가한다면, 그만큼의 주식과 채권을 팔아(기회비용 발생) 부동산 자산에 투자해 기회비용 이상의 수익률을 내는지를 분석하는 것이다. 이를 도입하면 유연한 포트폴리오 구성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남 연구위원은 “대체투자에서는 레퍼런스 포트폴리오를 적용하면, 기금운용본부가 레퍼런스(기준)에만 도달할 수 있게 세부자산군을 알아서 구성할 수 있다”며 “새롭게 나오는 투자자산을 유연하게 편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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