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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은 ‘정권 심판론’의 손을 들어줬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내세운 ‘이·조(이재명·조국) 심판론’은 ‘지민비조(지역구는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 돌풍 앞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여기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주호주대사 임명과 ‘대파 한 단 875원’ 논란은 윤석열 정부 심판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10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정치 전문가들은 4·10 총선의 거야(巨野) 압승 원인을 더불어민주당의 전략보다 정부·여당의 실정에서 먼저 찾았다. 박창환 장안대 특임교수는 “정부·여당의 민생 무능과 내로남불, 오만함이 국민의힘의 참패를 불렀다”며 “이태원 참사부터 해병대 채 모 상병 순직 사건까지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틀리지 않았다’고 외친 정부·여당의 모습에 국민들의 참았던 감정이 터져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국민의힘의 참패는 윤석열 대통령의 ‘독불장군식 국정운영’과 한 위원장의 ‘정치 초보 리더십’이 맞물린 결과물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대통령실의 연이은 헛발질은 ‘정권 심판론’의 단초를 제공했다. 국민의힘이 상승세를 탈 변곡점마다 용산의 실정이 정국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위기감을 느낀 윤석열 정부는 ‘관권 선거’ 논란을 무릅쓰고 전국 순회 민생 토론회를 진행하고 김건희 여사가 넉 달 넘게 모습을 감췄지만 민심은 이미 등을 돌린 뒤였다. 본지 총선자문단인 하상응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사실상 윤 대통령 자체가 여당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반면 민주당은 정부·여당이 스스로 만든 ‘정권 심판’ 분위기를 적극 활용했다. KAIST 대학원 졸업생이 윤석열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에 항의하다 경호원에게 끌려나가자 ‘입틀막’을 앞세웠고 정부가 파 가격을 두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을 때는 ‘파틀막’이라는 신조어를 꺼내 들었다.
공식 선거운동에서도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 5대 실정으로 규정한 ‘이채양명주(이태원 참사, 채 상병 사망 사건, 양평고속도로 의혹, 명품 백 수수, 주가조작)’를 전면에 내세웠다. 유세 일정 또한 대통령실이 위치한 서울 용산에서 시작해 용산에서 마무리하는 ‘용두용미’로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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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혁신당의 등장은 정권 심판 및 야권 지지층 결집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 ‘비명횡사’ 공천으로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실망한 이들까지 흡수하며 진보 진영의 파이를 키웠다. 이는 투표 참여를 주저했던 야권 성향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나오게 한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본격적인 총선 국면에 들어서자 이 대표와 한 위원장의 리더십 차이가 여실히 드러났다. 이 대표는 윤석열 정부의 ‘무능’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정부·여당이 선거기간 내내 다루지 않은 민생·경제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선거 초반 ‘비명횡사’ 공천으로 촉발된 리더십 위기를 스스로 극복했다.
이에 반해 국민의힘에서는 한동훈 ‘원톱’ 체제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 한때 ‘한동훈 신드롬’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파를 몰고 다녔지만 신선한 이미지가 소모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궁지에 몰린 한 위원장은 ‘쓰레기’ ‘불량품’ ‘개같이’ 등의 날 선 발언을 쏟아내며 “여의도 사투리를 쓰지 않겠다”던 앞선 공언만 무색하게 만들었다.
총선 승리만 바라본 정부·여당은 유력 대선 주자로 거론된 한동훈 카드를 당겨 썼지만 4년 전보다 더 처참한 결과를 만들어내며 보수 몰락만 앞당긴 꼴이 됐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한동훈 효과가 애초부터 국민의힘의 외연 확장에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얘기가 많았는데 결과적으로는 이 같은 예측이 확인된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 막판 양문석(경기 안산갑)·김준혁(경기 수원정) 민주당 후보의 편법 대출 의혹 및 막말 논란을 집중 부각시키면서 분위기 반전을 노렸지만 지상파 3사 출구조사 결과에서 민심은 오히려 ‘2030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의 책임이 있는 장성민(경기 안산갑) 국민의힘 후보와 ‘대파 한 뿌리’ 논란을 일으킨 이수정(경기 수원정) 국민의힘 후보를 심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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