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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명 교실에 ‘난데없이 130명’, 가천대 의대 교수들 [만나보니]

이투데이 조회수  

의사 없는 해부학교실·진료실적 쫓기는 임상 교수들, “못하겠다”

가천대의대 교수들 “130명 증원 통보, 정말 황당”
배정 과정서 의대교수 배제…“교수 태부족, 부실 의대 우려”

조현호 기자 hyunho@권오상 가천대 의과대학 교수협의회 회장이 2일 인천 남동구 가천대 의과대학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130명 증원이라는 통보를 받고는 정말 황당했죠. 도저히 가르칠 수 없는 숫자입니다. 이 숫자가 어디서 나왔는지 자초지종도 모릅니다.”

필수진료과이지만 이제는 기피과로 전락한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에서 30여 년간 환자를 진료한 의과대학 교수가 증원 통보를 받은 순간을 떠올리며 당혹감을 드러냈다. 40명의 신입생이 사용했던 강의실에 당장 내년부터 130명을 수용해야 하는 가천대 의과대학 이야기다.

본지는 2일 인천 남동구 가천대 의학관에서 권오상 가천대 의대교수협의회장(소화기내과 교수)과 익명을 요청한 A교수를 만났다. 가천대 의대는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에 참여하고 있지만, 그간 개별적인 의견 표명 없이 상황을 신중히 지켜봤다. 의대 증원과 의료정책에 대한 속내를 털어놓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30명 배정 과정, 교육 당사자인 교수들은 철저히 배제

사진제공=가천대 의대 교수협의회가천대 의대 내 일반강의실. 학생들의 휴학으로 개강이 미뤄져 비어있는 상태다. 수업은 고등학교 방식과 유사하게 학생들이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강의실에 머무르고, 매 수업마다 교수들이 들어온다. 일반강의실의 최대 수용 인원은 54명이다.

지난달 4일 정부가 대학별 의대 증원 신청을 받은 결과, 40개 의대에서 총 3401명 증원을 요청했다. 가천대 의대는 기존 40명에서 약 40명을 늘린 80여 명을 모집할 수 있다고 신청했다. 이후 정부 발표에서 가천대 의대는 기존 정원의 3배가 넘는 130명을 베정받았다. 수도권 의대 중 가장 많은 90명이 배정됐고, 증가 폭은 225%로 전국 최고다. 40개 의대 중 가장 많은 인원(49명→151명, 208%)이 배정된 충북대 의대를 넘어선 수준이다.

권 교수에 따르면 일선 (의대)교수들은 증원을 결정하는 과정에 전혀 의견을 내지 못했다. 그는 “실제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은 일선 교수들인데, 아무도 우리에게 증원에 대한 의견을 묻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가천대뿐만 아니라 전의교협에 참여하는 의과대학 대부분이 같은 상황이다.

권 교수는 “증원 신청은 총장과 의대 학장 선에서 결정됐는데, 총장은 의사가 아니다. 학장은 보직자이기 때문에 자신을 임명한 상급자에게 직언하기 어려운 처지다. 의사 결정 과정부터가 잘못됐다. 가장 이성적이고 민주적이어야 하는 대학에서 믿기 어려울 정도로 원시적이고 비이성적인 일이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A교수는 정부가 그간 적격자와 유효한 대화를 나눈 사례는 없다고 평가했다. A교수는 “정책을 결정하는데 당사자인 일선 교수들은 빼고, 임상 현장과 의대 교육에 대해 잘 모르는 엉뚱한 사람들이 결정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며 “정부가 의사들과 소통한다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개 병원 경영진이다. 경영자와 의사들의 입장은 매우 다르다. 교수라고 해도, 병원 보직자는 직언을 했다가 자리보전이 어려워질 수 있어서 말을 조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초의학 교수 태부족, 날림 임용·부실 의대 우려

사진제공=가천대 의대 교수협의회가천대 의대의 객관구조화진료시험(OSCE) 실습실. OSCE는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 분야로 채혈, 주사, 마취, 봉합 등 다양한 항목을 포함한다. 해당 시설에서 1회에 교육할 수 있는 학생은 4명이다.

정부가 발표한 의대 증원 계획은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이 교수들의 중론이다. 가장 큰 이유는 교원이 없어서다. 의대 수업은 기초의학과 임상의학으로 나뉜다. 기초의학 수업에서는 미생물학, 약리학, 생화학 등 이론을 다룬다. 임상의학 수업은 산부인과, 안과, 응급의학과 등 각 진료과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교육한다.

둘 다 의대 교육에 필수적이지만, 기초의학 분야는 의사들에게 기피 진로다. 임상의사보다 수입이 낮고, 교수로 임용되지 못했을 때 차선책의 진로를 찾기 어려워서다. 정부는 의대 증원에 맞춰 2027년까지 국립대 의대 교수를 1000명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당장 내년도 새학기 시작 전까지 교원 확충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권 교수는 “가천대 의대뿐 아니라 전국 모든 의대가 기초의학 교수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교내 기초의학 교수는 총 49명인데, 이 가운데 의학과 학위가 있는 의사는 11명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해부학 수업 교수 3명 중 의사는 없다. 교수들의 전문성과 역량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임상 경험의 유무에서 오는 괴리는 극복하기 어렵다. 게다가 이분들마저도 정년을 앞둬, 곧 한 분만 남게 되는 것으로 안다”라고 덧붙였다.

교수와 시설을 급조한다면 부실 의대로 전락하게 된다는 게 A교수의 견해다. 그는 “지금도 의대 교수를 하겠다는 사람이 없는데, 1000명을 어디서 구하겠나. 연구, 교육 능력, 업적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이들이 대거 임용되면서 말 그대로 ‘교수 부실화’가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A교수는 “실습 시설과 장비 확충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국립대는 정부가 지원해주겠지만, 사립대는 대출을 하든 진료 수입을 올리든 알아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며 “결국, 해부학 교실에서 한 명만 메스를 잡아보고 나머지 10명은 뒤에서 쳐다만 보다가 종강하게 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학생들이 국가고시를 통과하기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학교도 각종 평가 기준에 미달해 제2 제3의 서남의대 사례가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진료 ‘노가다’ 내몰리는 교수들, 환자 보느라 학생 못 봐

사진제공=가천대 의대 교수협의회가천대 의대 진료수행능력시험(CPX) 실습실 모습. CPX는 환자 역할의 배우와 실제 진료실에서 소통하는 것처럼 진행하며, 교수가 학생의 말투와 행동까지 피드백하기 때문에 1회에 교육 가능한 학생이 1명이다.

이른바 (임상교수들의)‘진료 노가다’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교수들은 진료 업무에 치여 연구와 교육에 할애할 시간이 부족한 실정이다. 병원은 적자를 피하기 위해 진료 수입을 극대화하고자 교수들에게 최대한 많은 환자를 진료하도록 강요한다.

가천대는 임상의학 교원평가 항목 중 진료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가천대뿐 아니라 국내 대부분의 의대가 교원평가 기준에 진료 실적을 두고, 환자 수와 진료수입으로 등급을 매긴다. 진료를 줄이면 재임용과 승진에 불리해진단 의미다. ‘저수가’ 기조가 바뀌지 않으면 풀 수 없는 문제지만, 의대 증원 논의에서 해당 안건은 찾아볼 수 없다.

A교수는 기존 인원을 지도하는 것만으로도 빠듯하다면서, 증원이 현실화하면, 의대 교육은 사실상 멈춰설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오늘도 오전에만 외래환자 5~60명을 보고, 1시까지 검사와 시술을 했는데 오후에 진료가 또 있다. 병원은 해외 학회 참석도 최소화하고 환자를 더 많이 보라고 한다. 이건 거칠게 표현하면 ‘노가다’와 다를 바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A교수는 “진료를 보다가 디스크가 터지는 교수들이 흔하다. 교수들이 기계처럼 환자를 봐야 병원이 진료 수입을 올려 경영을 할 수 있어서다. 치료보다 검사가 수익률이 높고, 중증환자는 받으면 받을수록 손해라는 것이 병원가에 통용되는 상식이다.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진료를 줄이고 교육에 집중할 수 있겠나. 저수가 문제가 의대 교육까지 타격을 입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권 교수는 정부의 문제 접근 순서와 방법이 모두 틀렸다고 주장했다. 그는 “의대 교수들은 학교뿐 아니라 병원에서도 일하기 때문에 방학이 없다. 그런데 보장된 연차는 줄곧 10일이었다. 2020년이 돼서야 평범한 근로자들과 같은 수준인 15일의 연차를 받았다”고 말했다.

특히 권 교수는 “의대 교수가 더는 선망을 받는 직업이 아니게 된 지 오래고, 기존 교수들도 힘들어서 못 버티고 나간다. 인원을 아무리 늘려도 인재를 붙잡을 수 없는 환경을 바꾸는 것이 먼저”라며 “시스템을 고치지 않고 우선 숫자만 늘려서 밀어붙이면 해결이 된다는 발상이 어떻게 나온 것인지 의문”이라고 강조했다.

이투데이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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