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나 얼굴 알아지쿠과. 나는 아버지 얼굴 몰라. 아버지가 나 불러도 모를 거고. 나도 아버지 부르고졍 해도 못 부르고….”(아버지 제 얼굴 아시겠어요. 나는 아버지 얼굴 몰라, 아버지가 나 불러도 모를 거고. 나도 아버지 부르고 싶어도 못 부르고)
3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봉행된 76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에서는 4·3 당시 5살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어 아버지, 어머니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한다는 김옥자 할머니의 가슴 아픈 사연과 인공지능(AI) 기술로 복원한 부친 영상에 추모객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내레이션을 맡은 제주 출신 배우 고두심은 “옥자 할머니의 70여 년은 흐르지 않는 정지된 시간이었다. 4·3의 피바람은 이렇게 긴 세월이 무색하게도 여전히 5살 옥자인 팔순 노인을 남겨놨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4·3 당시 소개령이 내려지자 김 할머니의 가족들은 제주 화북리 곤을동 마을로 거처를 옮겼다. 며칠 뒤 김 할머니의 아버지는 외양간에 두고 온 소를 살피러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나선 뒤 토벌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김 할머니의 어머니도 이듬해 봄에 곤을동 인근 화북천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언니와 동생마저 굶주림과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그렇게 김 할머니만 남겨졌다고 한다.
무대에 오른 김 할머니의 손녀 한은빈양은 “할머니는 새해 달력을 걸 때면 ‘음력 동짓달 스무날 찾아보라’라고 하신다. 그날이 바로 가매기 몰른 식게, 즉 죽은 이의 영혼을 인도하는 까마귀조차 모르게 지내는 제삿날이라는데 바로 할머니의 아버지, 제 증조할아버지의 제삿날”이라고 설명했다.
한 양은 “할머니가 5년 전 곤을동 잃어버린 마을 터를 다시 찾아가셨다. 말 한마디 없이 한참을 둘러보고 돌아서며 소나무 앞에서 ‘저 소낭(소나무)은 그때도 딱 저만큼 커났져(컸었다)’라고 하셨다”며 “저희 할머니 시간은 여전히 5살에 머무르고 있지만 그리움에 사무친 아버지 얼굴은 그 시간 속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말 아닐까요”라고 했다.
이어 유족 증언 등을 바탕으로 최첨단 AI 기술로 김 할머니의 아버지 생전 모습을 복원하는 과정과, 복원된 아버지 사진을 갖고 4·3평화공원을 찾은 김 할머니의 영상이 상영됐다.
김 할머니는 아버지 이름이 적힌 각명비 앞에서 “아버지 이 사진 아버지랑 닮아수과(닮았나요). 이거 나랑 닮았다 고라줍서(말씀 해주세요)”라며 눈물 흘렸다.
이에 딥페이크 기술로 합성된 김 할머니의 아버지가 “옥자야 아버지여. 하영(많이) 기다렸지. 이리 오라 우리 똘(딸) 얼마나 컸는지 아버지가 한번 안아보게”라며 두 팔을 벌려 다가오는 모습이 스크린에 떠올랐다.
행사장의 김 할머니는 손녀의 품에서 눈물을 흘리며 영상을 지켜봤고, 행사장을 찾은 유족 등 참석자들도 아픔을 함께하며 눈물지었다.
슬픔에 잠긴 추념식장에서 뒤이어 가수 인순이가 ‘아버지’라는 곡을 부르며 유족 아픔을 위로했다.
추념식 말미 바리톤 김동규, 소프라노 한아름, 도란도란 합창단 등도 ‘바람의 노래’ 공연을 통해 4·3 영령의 넋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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