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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개통 20년, 과연 철도 르네상스 시대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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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일로 고속열차 KTX가 개통 20년을 맞았다. 철도공사와 국토부를 비롯한 관계 기관에서는 개통 20년을 축하하는 다양한 행사도 진행된다. 다수 언론에서도 KTX가 가져온 혁명적 변화에 대해 뉴스로 다루고 있다. KTX의 등장은 한국철도의 위상을 그 전과 후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큰 역사적 사건임에 틀림없다. 여행에 나서 KTX의 맛을 본 사람들은 쉽사리 다른 대안을 생각하지 못한다.

이용자의 입장에서만 좋은 것도 아니다. 고속철도 등장 이전 한국철도는 비전철화가 발목을 잡고 있었다. 전국 철도 노선에 전차선을 깔고 전기 운행방식을 도입하겠다는 계획은 진즉에 있었지만 실현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KTX가 등장하면서 고속선뿐만 아니라 일반선의 전철화도 빠르게 진행되었다. KTX는 단계별 개통 방식을 거치면서 고속선과 일반선을 공유했는데 이로 인해 일반선의 전철화와 선로 개량이 필요했다. 한국의 주요 간선인 경부선, 호남선, 전라선의 전철화가 주는 효과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상당했다.

디젤 기관차 운행을 대체하면서 유류 비용을 절감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대폭 줄여 철도는 진정한 친환경 교통수단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다. 또 전철화로 인한 소음, 진동 감소로 선로변 환경도 개선되었다. 전철화의 특징인 고마력 견인력은 많은 승객과 화물을 수용하고도 빠르게 순항 속도로 돌입할 수 있어 열차 운영의 효율성도 증가시켰다. 고속철도 환경에 맞는 신호 체계 도입 등 열차 운영 시스템 전반을 개혁하는 성과도 이뤘다. KTX가 등장해 20년 동안 이끈 변화였다. 이런 면에서 철도 혁명은 성공했다.

▲한문희 한국철도공사 사장이 28일 오후 서울 중구 문화역284에서 열린 ‘KTX 개통 20주년 기념 철도문화전’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철도에 관심이 있는 많은 사람들은 KTX 개통 이후를 철도 르네상스 시대라고 부른다. 철도는 한국 사회 산업적 인프라로서 그 중요성과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또 다가오는 이번 총선까지 후보들은 앞다퉈 철도 관련 공약을 내놓고 있다. 순회 민생토론 수도권편에서 윤석렬 대통령은 토론회 참가자들에게 GTX의 장밋빛 미래를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GTX 공약만큼은 대통령과 여당에 지지 않는다. 정부와 여야가 이렇게 노력한다면 아름다운 미래가 보장되어야 하는데 과연 그럴지 모르겠다.

GTX망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겠다는 대통령은 말로 약속하면 되지만 실행은 돈이 있어야 한다. 광역고속철도망 재원은 너도나도 민자사업으로 충당하겠다고 한다. 결국 수많은 민영철도를 앞다퉈 건설하는 꼴이 된다. 그동안 민자사업은 시민들의 주머니를 터는 합법적 장치라는 비판을 들어왔다. 이재명 대표는 과거 대선후보 시절 민자사업의 폐해를 주장하며 일산대교 통행료 무료화를 추진했었다. 이재명 대표에게 일산대교를 건설한 민간사업자는 악이지만 GTX 건설에 동원되는 민간사업자는 선인 것인가?

정치권은 물론 언론도 GTX만 건설되면 세상은 천국이 될 것만 같은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 지하 40미터로 내려가 비싼 요금을 내고 서울 일자리로 가야만하는 사람들은 GTX의 신세계에서 행복할까? 모든 사회적 재원이 수도권에 몰려 공동화된 지역 도시는 GTX 시대의 또다른 면일 수 있다.

철도 정책은 전체 교통 정책이라는 대전제 아래 진행되어야 한다. 국가의 한정된 자원과 재화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각 교통수단이 상호 보완하면서 궁극적으로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것으로서의 교통 정책이 필요하지만 이를 수행할 컨트롤타워는 없다. 정부는 국가적 교통 정책 아래 철도의 위상과 역할은 무엇이고 미래과제는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철도는 철도 대로, 도로는 도로 대로, 항공은 항공 대로 발전 전망만 내세우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는 끊임없는 도로 건설, 공항 건설 모색으로 개발만능주의의 틀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현재적 위기로 닦친 기후변화에 대응하여 자동차를 줄이고, 단거리 항공을 철도로 유도하며, 철도 중심 교통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노력은 해외뉴스로만 들어야 하는 현실이다.

지난 20년 한국 철도는 철도정책을 집행하는 국토부의 정책실패로 점철된 시기였다. 더 큰 문제는 실패나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관료들의 완강함으로 인해 잘못을 시정 할 기회를 번번이 놓쳤다는 사실이다. 일종의 종교적 신념이 아닐까 의심되는 경쟁체제 숭배는 현재진행형이다. 페인트 색만 다른 똑같은 상행 열차가 똑같은 역에서 똑같은 선로 위를 달리다가 평택쯤 와서 서울역과 수서로 나누어 들어간다. 국토부는 이를 효율적인 경쟁체제라고 부른다. 이래서 코미디 프로가 폐지되는 것이 아닐까. 미치지 않고서야 서울역 주변에 사는 사람이 경쟁사가 좋다고 수서로 가는 열차를 탈까.

▲전국철도노조가 14일부터 파업을 시작한 가운데, 대전지방본부 소속 노조원들이 이날 오전 대전역 동광장에 모여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경쟁체제수호를 위해 오랫동안 진행된 국토부의 대국민 괴롭히기도 있었다. 수서와 포항, 마산, 진주, 전주, 여수를 잇는 고속열차는 지역 주민들과 의원, 철도노조, 시민단체 등의 지속적인 요구에도 십 수년을 모르쇠로 일관하다 지난해에야 몇 편성을 배치했다. 정책당국은 전 국민에게 좋은 철도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를 갖고 있다. 그 의무를 수행하라고 세금을 내 월급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 머리 위에 존재하는 국토부 고위 철도 관료들에게는 “동료시민”이란 없다.

한정식집 입장에서는 테이블 정원을 손님이 다 채울수록 좋다. 4인상 하나가 1인상 4개 보다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수서로 고속철도 노선 지선이 생길 때 현업 부서인 코레일 수서 고속 승무사업소와 수서역만 있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야말로 밥상에 수저만 놓는 일이다. 이를 억지로 분리해 회사를 만들어 사옥을 짓고 사장과 임원들을 두는 일을 철도 발전이라며 밀어붙인 결과 매년 수백억의 중복 비용을 낭비하고 있다.

이제 국토부도 변해야 한다. 철도정책도 기후변화와 저출생, 지역소멸이라는 세계적이며 국가적 과제와 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 전국 철도망과 광역 철도망, 또 지금 불타오르는 GTX 확대까지 철도가 시민들의 삶 속에서 모빌리티의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속철도만큼 일반철도에 대해서도 투자가 필요하다. 일반철도 활성화는 결국 고속철도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철도가 수도권 집중에 따른 지방 소멸을 가속화 하지 않는 길도 찾아야 한다. 수도권과 달리 지역 광역권 철도는 수익성을 확보할 수 없다. 철도 수혜지역 확대를 위해 비수익 노선을 보호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KTX는 지난 20년 국토부의 외면과 냉대 속에서도 꿋꿋하게 시민들의 발이 되어 달렸다. 그 바탕에는 시민에 대한 헌신을 사명으로 여기는 기관사, 열차 승무원, 정비원, 청소원들의 노고가 담겨있다. 관제부터 선로 유지보수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철도노동자가 함께해온 20년이었다. 이제 다음 20년은 SRT와 KTX가 하나로 통합되어 비정상의 상태를 극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앞으로 20년, 철도가 위기의 시대를 돌파해 나가는 기관차가 되었으면 한다.

▲전국철도노조 대전지방본부 소속 노조원들이 대전역 동광장에 모여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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