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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래 효성(004800)그룹 명예회장이 29일 향년 88세로 별세했다. 조 명예회장은 고(故) 조홍제 창업주에 이어 효성그룹의 2세대 총수직을 35년 간 수행했다.
◇대학교수 꿈꾸던 공학도=조 명예회장은 1935년생으로 고(故)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의 첫째 아들이다.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에서 1학년을 마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와세다 대학교 이공학부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일리노이공과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하던 중 1966년 부친의 부름을 받아 효성물산에 입사하면서 그룹 경영에 참여했다.
대학교수를 꿈꿨던 공학도는 아버지 밑에서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해 1970년 동양나이론 대표이사에 취임하며 본격적인 경영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후 동양폴리에스터, 효성중공업(298040) 등 그룹의 주력 계열사를 맡아왔으며, 창업주가 별세하기 2년 전인 1982년에 효성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기술 경영’의 선두주자=조 명예회장은 재계를 대표하는 ‘기술 중시’ 경영인으로 정평이 나있다. 화공학을 전공한 공학도인 그는 경제 발전과 기업의 미래는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기술 개발력에 있다는 생각으로 기업을 경영했다. 1971년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재 효성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있는 스판덱스와 타이어코드, ‘꿈의 신소재’라고 불리는 고강도 소재인 탄소섬유, 친환경 고분자 신소재인 ‘폴리케톤’ 등도 ‘기술 중시’ 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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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념으로 만든 ‘세계 1등’=그 중에서도 효성의 스판덱스는 조 명예회장의 기술에 대한 집념과 뚝심 경영의 결과물로 알려져 있다. 효성은 1989년 조 전 회장의 지시로 고부가가치를 지닐 것으로 예상되는 기능성 섬유, 스판덱스 연구개발에 착수했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중국의 거센 추격으로 수익성이 떨어졌고 사양산업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어서다.
조 전 회장은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공급망을 확대하면서 품질을 높이는데 주력했다. 그 결과 1990년대 후반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2010년에는 마침내 세계 1위 업체로 도약했다. 현재까지도 1위 왕좌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2011년에는 국내 기업 최초로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탄소섬유를 개발했다. 2013년에는 세계 최초로 친환경 고분자 신소재인 ‘폴리케톤’을 상용화하는 데도 성공했다. 구창남 전 동양나이론 사장은 “공학도 출신인 조 명예회장은 치밀하게 분석하고 기술을 이해한 뒤 확신이 들면 사업을 전개하는 스타일”이라며 “기술에 대한 강한 집념으로 오늘의 효성을 일궜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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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글로벌’…재계의 민간 외교관=일본과 미국에서 유학을 하며 유창한 어학실력과 풍부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보한 조 명예회장은 그룹 경영뿐 아니라 민간 경제사절 역할도 톡톡히 했다. 태평양경제협의회, 한일경제협회, 한미재계회의, 한중재계회의 등 30년 이상 다양한 국제경제교류단체장을 맡아 성과를 올렸다.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경우 2000년부터 조 명예회장이 한미재계회의를 통해 최초로 그 필요성을 공식 제기하였고, 체결 이후에도 미국의회를 방문해 인준을 설득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한 바 있다
조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전경련을 이끈 허창수 회장은 조 전 회장을 ‘Mr(미스터) 글로벌’이라고 호칭하며 “일찍이 한미FTA는 물론, EU나 인도 등과의 FTA를 추진해 우리 경제의 글로벌화를 가속화시켜 나가자고 제안한 글로벌 리더십과 선견지명에 경의를 표한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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