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누구든 ESG(환경‧사회‧지배구조)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실제 이를 정책에 반영하고 실천하겠다는 의지는 여야별 입장이 명확하게 갈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와 함께 정책 추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국민의힘은 지금보다 더 개선된 ESG정책 도입은 자칫 사회‧경제 전반의 규제로 작용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제22대 국회 임기내에 보다 개선된 ESG정책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적극적 입장을 밝혔다.
특히 흩어져 있는 ESG관련 법들을 유기적으로 관리하는 차원에서 거론되고 있는 ‘ESG기본법’ 도입에 대해 야당은 찬성한 반면 여당은 명확한 반대 입장을 보였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주최로 29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대전환의 시대 ESG정책 토론회’에서는 제22대 총선을 앞두고 ESG 정책에 대한 각 정당의 입장과 비교‧분석하고 평가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토론회에는 여당인 국민의힘 관련 토론자는 빠진 채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쪽 토론자만 참석했다.
ESG정책 도입 소극적 ‘여당’ VS 적극적 ‘야당’
토론에 앞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은 현직 국회의원이 한 사람이라도 있는 정당 6곳(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녹색정의당, 새진보연합, 진보당, 개혁신당)에 ESG정책관련 14개의 질문이 담긴 질의서를 보냈다. 6개 정당 중 답변을 보내온 곳은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녹색정의당, 새진보연합, 진보당 5곳이다. 개혁신당은 답변을 보내지 않았다.
또 지난 2월 8일 이후 탄생하거나 합당 또는 분당한 당은 질의서 대상에서 제외했다. 따라서 새로운 미래(이낙연 대표) 및 조국혁신당(조국 대표) 등은 이번 질의에서 빠졌다.
각 질의를 세부적으로 보면 △ESG기본법 제정 △ESG정보공개(조기)의무화 △한국판 공급망 실사법 제정 △지속가능 공공조달 의무화(조달사업법 개정) △한국판 지속가능금융 액션 플랜 및 로드맵 수립 △한국판 지속가능금융 공시규제 마련 △모든 공적연기금의 ESG고려 의무화 및 주주권 확대가 있다.
또 △금융기관 자산건전성 평가에 기후리스크 고려 의무 △공적연기금 등 자산 포트폴리오 넷제로 선언 △ESG금융공사 설립 △스튜어드십 코드 모니터링 기구 설치 △ESG워싱 방지 모니터링 기구 설치 △탈탄소화 목표수립 및 재생에너지 공급확대에 대한 입장 △기업재생에너지 구매 환경 개선 여부도 질의서에 담겼다.
각 질의에 대해 정당들의 답변은 다소 갈렸다. 국민의힘은 14개 질의 가운데 △한국판 지속가능금융 액션 플랜 및 로드맵 수립 △기업 재생에너지 구매 환경 개선 정책에만 찬성표를 던지고, 그 외에 질문 내용에는 반대표를 던지거나 유보적인 입장이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일부 문항을 제외하곤 대체로 14개 질의 대부분에 찬성의견을 밝혔다. ESG경영 의무화, ‘규제’ 우려하는 국민의힘
ESG정책 강화에 대체로 반대 또는 유보적 입장을 밝힌 국민의힘은 지금보다 강한 ESG정책 도입이 사회‧경제 전반에 규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특히 ESG기본법 도입에 대해 국민의힘은 “ESG경영 의무화는 규제로 작용할 우려가 있고 ESG경영 촉진을 위해 단일법을 제정한 해외 사례는 없다”며 “ESG경영은 정부가 법률로 의무화하기 보다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정책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ESG기본법을 찬성한 더불어민주당은 “ESG기본법이 산업, 환경, 정무, 노동 등 다분야에 걸쳐 있어 정부 부처 및 상임위가 깊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22대 국회 임기내에 통과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금융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상장기업의 ESG공시 의무화에 대해서도 각 당의 입장은 갈렸다. 금융위는 2026년 이후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부터 ESG공시 의무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금융위의 정책 발표를 토대로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수렴을 거쳐 추진해야 하고 유럽연합(EU)와 북미 등 무역상대국 동향을 주시하면서 국내 산업계의 부정적인 영향이 없도록 면밀한 지원방안 마련 후 제도를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즉 금융위의 추진방향을 그대로 따르겠다는 것이 국민의 힘 입장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전제로 실질적으로 ESG경영을 강화할 수 있다는 다양한 제도적 장치 도입 노력을 병행해야하고 ESG공시정보 조기의무화를 22대 국회 임기내 추진하겠다”고 답했다.
한국판 지속가능금융 공시규제 마련에 대해서도 입장이 갈렸다. 한국판 지속가능금융 공시규제는 EU의 지속가능금융 공시규제(SFDR)에서 따왔다. 펀드 등 금융상품의 지속가능성과 환경‧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공시토록 한 내용이다.
다만 국민의힘은 “ESG펀드공시 기준이 시행 초기인 만큼 펀드시장 규모, 상황 등을 면밀히 모니터링한 후 공시제도 개선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 밖에 국민연금 등 공적연기금의 ESG관련 정책(스튜어드십코드 모니터링 기구 설치 등)에 대해서도 국민의힘은 자율성을 강조한 반면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22대 국회 임기내 정책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ESG정책은 국가경쟁력… 진보·보수 문제 아냐”
국민의힘 토론자가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는 각 정당의 ESG정책 관련 답변에 대한 평가를 중심으로 논의가 이어졌다.
각 정당에 질의서를 보내고 답변을 받아 정리한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은 “국민의힘은 전반적으로 ESG관련 정책을 규제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며 “규제든 자율이든 독이 있고 약이 있는 만큼 어떤 규제가 필요한지는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14개 정책관련 질의 중 국민의힘이 찬성한 ‘한국판 지속가능금융 액션 플랜 및 로드맵 수렴’은 금융기관의 지속가능금융 추진에 대한 내용을 담은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녹색산업 지원, 청정에너지 사용 등에 대한 자발적 규제 등 2050탄소중립 달성 정책도 한국판 지속가능금융의 일환이다.
다만 해당 정책을 국민의힘이 찬성한 이유는 최근 정부 주도로 추진하고 있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이종오 사무국장은 “국민의힘이 한국판 지속가능금융 액션플랜 및 로드맵 수립에 찬성한 것은 최근 추진 중인 밸류업 프로그램과 연관해 정책을 가속화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박태우 진보당 정책국장은 “집권여당 중심으로 녹색금융에 재정을 투입하겠다고 하는데 이는 산업계 이해관계 중심으로 편파적인 입장이 담긴 정책인 것 같다”고 언급했다.
박항주 녹색정의당 정의정책연구소 기후위기 대응센터장은 “유럽으로 제품 수출하는 대기업들은 이미 ESG공시 관련 어느 정도 준비가 됐을 것”이라며 “ESG공시 의무를 늦추겠다는 정부의 입장은 몸을 사리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종오 사무국장은 “전세계 경제와 사회가 탄소중립을 필두로 한 ESG 이슈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점에서 ESG는 기업과 금융기관 그리고 국가의 경쟁력과 직결된다”며 “그런 점에서 ESG 관련 법, 제도, 정책은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