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피해자들이 최소한 국가로부터 보호받는다는 느낌이 조금이라도 들 수 있도록 범죄 피해자 권리가 보장되었으면 합니다. 이왕 가해자에게 죽는다면 후회하지 않을 만큼 싸우겠습니다. 아직 안 죽었으니까.”
집으로 가던 20대 여성을 무차별 폭행한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 ㄱ씨가 21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부실 수사 등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피해자 권리 강화를 위한 소송
21일 오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여성인권위원회의 ‘부산 돌려차기 사건 국가배상 대리인단’은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민변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ㄱ씨가 범죄 피해자 권리 강화를 위해 국가배상 청구소송에 나선다”고 밝혔다.
ㄱ씨는 지난해 5월22일 새벽 부산 진구 서면에서 귀가하던 길에 ㄱ씨를 성폭행할 목적으로 10여분간 쫓아온 이아무개씨로부터 오피스텔 공동현관에서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ㄱ씨는 사건의 충격으로 해리성 기억상실 장애를 겪었고 16주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외상성 두개내출혈과 발목 아래가 마비되는 영구장해 피해를 입었다.
ㄱ씨는 이날 “부실 수사, 재판 배제 등 사법 체계로부터 가해를 받았다”며 소송에 나서게 된 이유를 밝혔다. 이날 영상으로 발언에 나선 ㄱ씨는 “(경찰이) 현장 사진을 제대로 찍지 않은 점, 목격자의 진술을 묵인한 점, 가해자의 휴대폰 포렌식 결과를 보고서도 가해자가 아니라고 하니 가볍게 넘어간 점 등”의 문제를 제기하며 “제가 기억을 잃으니 가해자의 말이 모두 진실이 됐다”고 밝혔다. 이어 “성폭력 사건 재판이 아니었기에 비공개로 재판을 받을 권리도 없었고 방청객으로서 가해자의 얼굴을 바로 앞에서 봐야 했다”고 덧붙였다.
당초 살인미수혐의로만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던 이씨는 ㄱ씨가 입었던 바지에서 이씨의 디엔에이(DNA)가 검출되는 등 추가 증거가 드러나 지난해 9월 강간·살인 미수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20년이 확정됐다.
“국가가 가해자의 보복 위협 야기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국가배상 대리인단은 “이 사건에서 수사기관은 법상 객관적인 증거를 수집할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있음에도 성폭력 의심 정황을 모두 무시하고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며 “수사의 밀행성만을 강조하며 피해자에게 어떤 정보도 공유하지 않고 증거 확보도 포기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의 재판 참여 기회와 알 권리가 박탈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오현희 민변 여성인권위 위원장은 “피해자가 사건 수사 기록을 보고 싶다고 세 차례 열람등사를 신청했지만 다 거절됐고, 결국 민사 소송을 통해 우회적으로 증거를 받아봐야 했다”며 “그 과정에서 피해자 인적사항이 드러났고 이는 가해자의 보복 위협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대리인단은 피해자가 사건기록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건기록 열람등사청구권에 대한 입법을 촉구하며 관련 피해자들을 모아 헌법소원을 하는 것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한겨레 장현은 기자 /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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