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파 한 단에 875원이라고? 한 뿌리 아니고?”
“우리 동네는 한 단에 4천원인데, 원정 가야겠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오후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을 방문해 “대파 한 단에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 같다”고 말한 사실이 보도되자 누리꾼들 사이에 논란이 벌어졌다. 대파가 한 단에 875원일 리가 있냐는 의문이다.
19일 한국농수산물유통센터 농산물유통정보를 보면, 18일 기준 대파 한 단(1kg) 평균 소매가격은 3,018원이다. 일주일 전 4,005원보단 내렸지만, 여전히 평년 2,982원에 견줘 비싸다. 최고가는 7,300원에 이른다.
875원은 실재하는 가격이다. 대형마트 등 소매점 통계를 보면 서울의 한 유통업체의 가격은 875원이다. 윤 대통령이 방문한 하나로마트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유통업체는 일주일 전까지는 대파 한 단에 2,760원에 팔다가 대통령 방문 전에 1천원으로 가격을 내렸으며, 대통령 방문 당일엔 875원으로 가격을 더 낮췄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 지원금과 농협 자체 할인에 정부의 농산물 할인쿠폰까지 더해지면 875원의 가격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라며 “다만, 거의 모든 지원금과 할인 여력 등을 대파에 ‘영끌’ 했을 때 가능하다”고 말했다. 누리꾼들은 대통령이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지적한다. 대부분의 유통업체에서 3,500~4,000원대에 팔리는 대파값을 모른 채 ‘하나로마트 양재점’ 가격만 보고 현실을 파악하려는 게 말이 되냐는 것이다.
한 누리꾼은 “100곳의 마트에서 4천원에 팔리는 대파가 한 곳에서만 875원이면 대파 물가가 안정됐다고 하는 게 말이 되냐”며 “대통령 방문에 맞춰 가격을 더욱더 인하한 하나로마트도 어이없고, 실제 물가를 파악할 수 없도록 제일 싼 곳으로 안내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린 대통령실은 문책 대상 아닌가 싶다”고 적었다.
민주당 역시 대파 가격 논란에 성명을 냈다. 신현영 민주당 대변인은 “윤석열 대통령은 ‘대파 한 단에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인 것 같다’는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만 하고 있다”며 “국민께서 느끼는 체감 경기를 안다면 다른 나라보다 물가 상승률이 낮다는 소리를 못한다”고 비판했다.
더 큰 문제는 윤 대통령이 ‘대파 한 단에 875원’이라는 가격을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대목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나도 시장을 많이 가 봐서 그래도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파 가격이 800원대로 곤두박질치면 대파 산지 농민들은 수확하지 않고 밭을 갈아엎는다.
지난 2020년 2월 대파 가격이 전년도 1170원에서 817원으로 떨어지자 전국 생산량의 97%를 차지하는 전남 지역 대파 농민들은 앞다퉈 밭을 갈아엎었다. 한 단에 1천원이 넘는 생산비조차 건지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확에 필요한 인건비까지 감안하면 차라리 포기하고 밭을 갈아엎는 게 손해를 줄이는 길이라는 판단에서다.
대통령이 ‘합리적’이라고 말 한 875원은 농민이 1년간 들인 공을 모조리 포기하게 하는 ‘불합리한 가격’이라는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경기도에서 농사를 짓는 50대 농민 허 아무개씨는 “하나로마트 양재점의 대파 가격 875원이 가능한 가격이냐는 논란보다 대파 가격의 적정선조차 알지 못하는 대통령의 현실 인식 수준이 더 큰 문제”라고 짚었다.
한겨레 유선희 기자 /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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