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서울 강남구 영풍빌딩 별관에서 열린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에서 핵심 쟁점인 지난해 배당(중간배당 1만원, 결산배당 5000원)건을 포함한 1호 의안은 원안대로 통과됐다. 다만 신주 발행을 외국 합작법인에게만 할 수 있다는 내용을 삭제하는 정관변경안을 담은 2-2호 의안은 부결됐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왼쪽)과 장형진 영풍 고문.
영풍그룹은 1949년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공동으로 설립했다. 이후 후손들이 경영권을 물려받으며 영풍·영풍전자·영풍문고 등은 장 창업주 일가가, 고려아연 계열은 최 창업주 일가가 운영해 왔다.
최 창업주의 손자인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2019년부터 경영을 도맡으며 상황은 급변했다. 최 회장 체제 이후 회사는 실적을 끌어올리더니 지난 2021년 처음으로 연간 영업이익 1조원을 넘겼다. 이어 최 회장은 2022년 철강업황 부진을 대비해 신재생에너지·그린수소, 2차전지 소재, 리사이클링 등을 3대 신사업으로 정하고 집중 육성한다고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차그룹·한화·LG화학 등과 유상증자·지분교환 등을 통해 전략적 동맹군으로 끌어들였다.
재계에서는 최 회장의 고려아연이 영풍그룹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했다. 지분율이 낮은 최 회장이 결과적으로 우호지분을 크게 늘린 결과가 됐기 때문이다. 이는 고려아연 최대주주인 ㈜영풍을 지배하고 있는 장씨 일가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장씨 일가가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은 32.09% 수준이다. 최씨 일가는 15.35%에 불과하다. 하지만 전략적 동맹을 맺은 현대차·한화·LG화학 등 우호지분을 더하면 33%로 엇비슷하다.
고려아연 이사회가 올해 주총에서 전년 대비 축소된 지난해 배당안(1주당 2만→1만5000원)을 상정하자 두 집안간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영풍은 입장문을 통해 “배당금을 줄인다면 주주들의 실망이 커져 주가가 더욱 하락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 합작법인에만 제3자 유상증자를 허용하는 정관변경건도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국내기업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받는다면 주주가치 희석과 지배력 하락 등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고려아연은 “주주환원율은 50.9%에서 76.3%로 오히려 높아졌다”며 영풍측 제안을 정면 반박했다. 유상증자 관련 정관변경안도 기존주주 이익 침해가 아닌 경영상 목적(신기술 도입, 재무구조 개선 등) 달성을 위해 필요한 경우라는 조건을 달았다는 것이다.
배당건은 최 회장 등 고려아연 경영진 주장이 관철됐다. 참석주주 62.74% 찬성을 얻었다.
특히 고려아연 지분 7.49%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현 경영진 손을 들어준 것이 결정적이었다. 국민연금은 주총 직전 고려아연의 지분 보유 목적을 일반투자에서 단순투자로 변경했다. 단순투자란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 없이 차익 실현을 위해 투자한다는 것이다. 이번건과 관련해 두 집안간 다툼에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국민연금은 정관변경건에 대해서도 경영진 편을 들었다. 최 회장이 내세우는 신사업을 통해 미래가치를 키우는 방향에 동의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단 정관변경건은 찬성이 53.02%로 과반 이상을 얻었음에도 부결됐다. 정관변경 주총 특별결의 사항으로 출석주주 3분의 2, 발행주식 3분의 1 이상 동의가 필요하다는 상법 규정 때문이다. 사실상 영풍이 반대하면 통과하기 어렵다.
고려아연을 둘러 싼 동업자 집안간 충돌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윤범 회장은 대규모 자금 조달을 위한 방안을 찾으려고 할 것이고, 영풍 입장에서는 알짜 기업인 고려아연에 대한 지배력을 놓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번 고려아연 주총에서 최 회장이 사내이사로 재선임되는 한편 김우주 현대차 전무가 기타비상무이사로 이사회에 새롭게 합류했다. 영풍그룹 총수인 장형진 영풍 고문도 기타비상무이사로 재선임됐다.
곽호룡 한국금융신문 기자 horr@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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