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고척, 신원철 기자] 한국에서 처음 열릴 메이저리그 경기는 야구를 즐기는 방법도 바꿔놨다. 지금까지는 극히 제한적으로 공개됐던 KBO리그 선수들의 트래킹 데이터가 메이저리그 홈페이지, 또 통계 사이트 등을 통해 널리 퍼졌다. 덕분에 원태인(삼성 라이온즈)은 그동안 속앓이했던 ‘구속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반대로 오해를 산 선수가 있다. 문동주(한화 이글스)는 패스트볼 계열의 회전 수가 다른 선수들에 비해 떨어져 논란이 됐다. 야구 커뮤니티에서는 이 지표를 근거로 문동주의 성장 가능성이 낮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장을 경험한 데이터 분석 전문가의 의견은 달랐다. 회전 수 하나만으로는 어떤 것도 설명할 수 없다. 투구는 그만큼 복잡한 물리적 특성을 가진다.
메이저리그 통계 사이트 베이스볼서번트는 17일과 18일 열린 ‘2024 메이저리그 월드투어 서울 시리즈 스페셜게임’의 트래킹 데이터도 공개하고 있다. 18일 팀 코리아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경기는 특히 주목을 받았다. 그동안 KBO리그 중계 화면에 노출된 직구 구속이 자신이 알고 있는 구단 자료와 차이가 크다고 아쉬워하던 원태인의 ‘진짜(에 가까운)’ 구속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문동주에 이어 3회부터 마운드에 오른 원태인은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를 상대로 초구에 시속 92.5마일 패스트볼을 던졌다. 시속 148.8㎞다. 원태인은 이날 패스트볼 18구를 던졌는데 최고 92.9마일(약 149.5㎞)부터 최저 89.7마일(144.3㎞)를 기록했다. 원태인은 과거 SNS에 포털사이트 문자중계 기록과 구단 전력분석팀이 제공한 기록을 비교하면서 “경기당 평균 4~5㎞가 덜 나오면 평균 구속은 1년 통계 몇 ㎞가 떨어질까요?”라고 썼다.
원태인에 따르면 전력분석팀 자료에는 모두 시속 147㎞가 나왔는데, 문자중계에는 142㎞에서 144㎞로 적게는 3㎞, 많게는 5㎞ 차이가 났다. 현재 많은 방송사들이 제공하고 있는 ‘PTS’ 기반의 측정 방식에 의하면 자신의 구속이 낮게 나타난다는 불만이 커 보였다. 그러나 다른 방식으로 측정하니 이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됐다.
원태인은 오해를 풀었지만 문동주는 오해에 휘말렸다.
문동주는 17일 경기에서 한국 선수 중에서는 가장 빠른 시속 96.4마일(약 155.1㎞) 패스트볼을 던졌다. 95마일(152.9㎞) 이상의 패스트볼은 모두 7구였다. 사실 문동주가 빠른 공을 던진다는 사실은 야구 팬이라면 대부분 아는 사실. 대신 이 공들의 회전 수가 화제였다. 96.4마일 짜리 패스트볼의 회전 수는 2136회로, 최준용이 2500회 이상의 회전 수를 기록한 것과 대조를 이뤘다.
야구 커뮤니티에서는 이런 수치를 ‘문동주의 직구 구위가 좋지 않다는 증거’로 들이대기도 한다. 그러나 데이터 분석 전문가의 의견은 그렇지 않았다. 과거 KBO와 프로 구단에서 데이터 분석을 맡았던 정대성 씨는 18일 고척돔에서 “3차원적으로 봤을 때 회전은 방향이 중요하다. 그 방향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의도적으로 던졌고 공이 그대로 갔다면 그게 더 좋은 투구다”라며 문동주의 낮은 패스트볼 회전 수가 ‘구위’를 설명하는 잣대가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회전 수 자체만으로 뭔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패스트볼 회전 수와 헛스윙 비율은 상관관계가 그렇게 높지는 않다”며 “물론 영향이 없지는 않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그보다 다른 요소들이 많다. 그게 바로 무브먼트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전 축, 회전 효율 등 다른 지표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얘기다.
구단 안에서도 이런 오해가 많았다. 정대성 씨는 “처음 구단에 들어갔을 때 미션 가운데 첫 번째가 트래킹 데이터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는 것이었다. 어떤 선수는 패스트볼 회전 수가 적은데 헛스윙 유도율이 높다면서 트래킹 데이터를 믿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수술 후 첫 재활 등판을 마친 뒤부터 (느낀 점이 있는지) 먼저 찾아오더라”라고 자신의 에피소드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인생에도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고 하지 않나. 회전도 어떤 방향인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본 야구에서 ‘공부하는 지도자’이자 ‘편견을 깨는 지도자’로 유명한 요시이 마사토 감독(지바롯데 마린스)은 저서 ‘가르치지 않아야 크게 자란다’에서 자신이 코칭에 실패한 사례로 사이토 유키를 떠올렸다. 사이토는 ‘손수건 왕자’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했다. 다나카 마사히로(라쿠텐 골든이글스)와 고교 시절 라이벌이었지만 프로에서는 차이가 하늘과 땅 이상 벌어졌다. 사이토는 결국 프로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남기지 못한 채 은퇴했다.
요시이 감독에 따르면 사이토는 구속은 빠르지만 회전 수는 평범한 직구를 가졌다. 사이토는 트래킹 데이터를 확인한 뒤 회전 수를 올려 ‘떠오르는 직구’를 던지게 하고 싶었다. 당시 닛폰햄 파이터즈 투수코치였던 요시이 감독은 일단 사이토의 뜻대로 하도록 지켜봤지만,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요시이 감독은 책에서 “사이토는 빠르면서도 회전 수가 적은 ‘특별한 움직임’을 가진 공을 던졌다. 거기서 회전 수를 높여서 평균적인 공을 던지려고 노력했던 것이다”라며 “당시에 사이토에게 공이 처진다고 말한 것을 후회한다. 지금이라면 패스트볼이 앞에서 살짝 가라앉는다고 말해줄 것이다. 그냥 던졌는데 자연스럽게 공이 움직였으니 그 자체가 사이토의 개성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썼다.
또 “단순히 회전 수가 좋다고 좋은 공은 아니다. 무조건 회전 수를 높이려고 했다가는 오히려 경기력이 떨어질 위험도 있다. 일본 프로야구 투수들의 평균 회전 수보다 자신의 회전 수가 낮다는 것을 알게 된 선수가 평균을 따라잡으려 하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데이터에 대한 오해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투수는 오히려 ‘평균에서 벗어난 공’을 지향해야 한다”고 했다. 문동주의 패스트볼 회전 수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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