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발니 부인 “투표용지에 남편 이름 적었다”
러시아 대통령 선거 마지막 날인 17일(현지시간) 정오에 곳곳에서 이른바 ‘나발니 시위’가 벌어졌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러시아 대선 투표가 이뤄진 15일부터 이날 오전까지 극도로 조용하다가 오후 12시를 기점으로 긴 줄이 나타났다.
모스크바 중심부 폴리안카 지하철역 옆의 한 투표소에는 오후 12시 30분까지 블록 주변으로 수십 명의 줄이 섰는데, 주로 20~30대 모스크바 시민들이었다. 근처에는 경찰차 한 대와 순찰차 두 대가 맴돌았고, 투표소 입구는 여러 명의 경찰관과 보안요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오랫동안 러시아의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위한 활동을 하다 지난달 옥중 사망한 알렉세이 나발니 측근들은 이날 정오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반대표를 던질 것을 촉구했다.
러시아 당국이 극단주의 행동에 참여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대량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2022년 러시아 침공 이후 수백 명이 체포되는 등 반대에 대한 탄압이 심해졌음에도 러시아 국민이 푸틴의 독재에 항거하며 동참한 것으로 풀이된다.
나발니의 지지자들은 러시아와 세계 곳곳의 투표소에서 다른 후보에게 투표하거나 무효표를 만들거나 푸틴에 대한 항의를 표출하는 시위를 벌였다. 또 많은 유권자가 ‘나발니는 나의 대통령’, ‘전쟁 반대, 푸틴 반대’, ‘푸틴은 살인자’ 등 항의 구호와 함께 손상된 투표용지 사진을 게시했다.
나발니의 부인 율리아 나발나야는 이날 투표용지에 남편 이름을 적었다고 밝혔다. 나발나야가 대사관 앞에 늘어선 줄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지지자들은 그의 이름을 외치며 환호했다.
WP는 “러시아인들은 일요일 정오에 푸틴 대통령에 반대표를 던지기 위해 긴 줄을 형성해 푸틴의 권위주의적 권력 장악에 항의했다”면서 “대선 투표 기간이 사흘로 충분한 것을 고려하면 일요일 정오에 갑자기 군중이 몰려든 것은 우연이 아니다”고 전했다.
현지 인권단체인 ‘OVD-Info’에 따르면 이날 러시아 16개 도시의 투표소에서 최소 65명이 구금됐다. 이중에는 남편이 오웰이라는 이름의 스카프를 착용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모스크바 부부도 있었다. 1984년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의 배신에 바탕을 둔 정치우화 ‘동물농장’을 쓴 작가 조지 오웰을 상기시켰다는 이유에서였다.
푸틴 외에도 세 명의 후보가 투표에 참여했는데, 모두 크렘린에 우호적인 인물로 인지도가 낮았으며, 심각한 위협을 가하지 않으면서도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고도로 관리된 선거였다는 지적이다. 반전 정서의 도화선이 될 수 있었던 보리스 나데즈딘과 예카테리나 둔초바 등 두 명의 반전 후보자는 대선 출마가 금지됐다.
푸틴은 이번 대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개표가 60% 진행된 상황에서 푸틴 대통령이 87.26%의 득표율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푸틴은 이번 대선에서 90%에 가까운 득표로 5선 고지를 확정한 뒤 나발니를 정식으로 호명하고 사망에 대해 처음 언급했다. 이전까지 푸틴 대통령은 나발니를 ‘그 사람’, ‘블로거’ 등으로 칭해왔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밤 모스크바 고스티니 드보르에 마련된 자신의 선거운동본부에서 기자들과 만나 “나발니가 사망하기 며칠 전에 일부 사람들이 그를 서방 국가에 수감된 사람들과 교환할 아이디어가 제시됐고 나는 동의했다”고 말했다.
러시아 당국은 나발니가 자연사했다는 입장이지만 나발니의 미망인은 푸틴이 살인을 지시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는 또 “러시아는 더 강하고 효과적이어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푸틴이 5선에 성공하면서 5월 7일 취임, 2030년까지 30년을 통치하게 된다. 개헌으로 6선도 가능하게 만들어 놓음에 따라 2036년까지도 집권할 수 있다.
대규모 러시아 사상자가 발생하는 전쟁 속에서 러시아 당국이 앞으로 몇 달 동안 시위에 엄격한 통제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