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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노숙인과 공중화장실에서 잠을 청한 KBS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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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내놔!” “카메라 치워!” 노숙인이 거주하는 서울역 길거리에 기자가 카메라를 들고 접근하자 여성 노숙인이 버럭 화를 냈다. 그 여성 노숙인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너희한테는 거리지만, 우리한테는 집이야!” 하누리 KBS 기자는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왜 카메라는 여성 노숙인을 향했을까. 하누리 기자는 대학 시절 수업에서 알게 된 미국이 1980년대 거리 미화를 위해 여성 노숙인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사건을 예로 들었다. 당시 조이스 브라운 여성 노숙인은 법정으로 이 사건을 끌고 가 ‘나는 정신병자가 아니다. 집이 없어 거리에서 용변을 보고 위험한 상황에 노출돼 사납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고 항변했다. 지난해 5월과 9월 이문영 기자가 한겨레 토요판에 쓴 성폭력으로 사망한 여성 노숙인 김목화씨 이야기를 보고 다시 대학 시절 기억을 끄집어냈다.

▲하누리 기자가 지난 1월 영등포 쪽방촌 인근 공중화장실에서 여성 노숙인 2명과 함께 밤을 보내고 있다. ⓒKBS
▲하누리 기자가 지난 1월 영등포 쪽방촌 인근 공중화장실에서 여성 노숙인 2명과 함께 밤을 보내고 있다. ⓒKBS
▲이문영 한겨레 기자가 지난해 3월6일 서울역에서 남성에게 맞아 숨진 여성 노숙인 김목화씨 관련 사건을 보도했다.
▲이문영 한겨레 기자가 지난해 3월6일 서울역에서 남성에게 맞아 숨진 여성 노숙인 김목화씨 관련 사건을 보도했다.

여성 노숙인은 가정폭력과 성폭력 등으로 거리에 내몰린다. 경제활동 경험 없이 갑자기 노숙하게 된 이들은 자립할 때 도움이 필요한데, 정부는 올해 들어 여성 노숙인 예산 1억 원을 전액 삭감했다. 여성 노숙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오광택 촬영 기자와 김성리 VJ도 함께 밤낮으로 촬영했다. 그렇게 ‘시사기획 창-길에서 여자가 살았다’편이 나왔다. 지난 6일 하 기자를 전화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노숙인 인터뷰가 무섭지 않았나.

“지난해 12월 수녀님들이 서울 동자동에서 운영하는 여성 쉼터를 찾아갔다. 섭외를 거절당하고 나오는 길에 여성 노숙인들이 있었다. ‘지금이다’ 생각하고 다가가야 했는데 못 다가가겠더라. 이분들이 저를 어떻게 볼지 걱정됐다. 혼내지 않을지 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더라. 처음 말 떼는 게 너무 어려웠다. 그러다 홈리스행동이라는 단체가 매년 가족 없이 돌아가시는 분들을 위해 여는 추모제에 갔다. 추모제에서 만난 어떤 분이 서울역 지하에 가면 항상 계시는 여성 노숙인이 있다면서 가보라고 했다. 자신 있게 카메라 들고 갔다. 근데 그분이 엄청 뭐라고 하더라. 서울역 지하에 있는 사람들이 저를 다 쳐다볼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카메라 내놔!’ ‘카메라 치워!’ 그분을 진정시키느라 30분 앉아서 이야기했다. 이렇게 접근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하시는 말씀이 ‘여기는 너희한테는 거리지만, 우리한테는 집인데 무단으로 촬영하면 안 된다. 우리도 사생활과 자존감이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아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생각이 들었다.”

▲하 기자가 지난 1월 서울역에서 생활하는 여성 노숙인과 인터뷰하는 모습.ⓒKBS
▲하 기자가 지난 1월 서울역에서 생활하는 여성 노숙인과 인터뷰하는 모습.ⓒKBS

-다수의 노숙인이 카메라 앞에 나왔다. 어떻게 설득한 건가.

“그날 이후 ‘다음에 올게요’라고 말하고 저한테 화낸 분에게 몇 번을 찾아갔다. 카메라 없이 간식 사 들고 가서 뵙기도 하고 수다도 떨었다. 담배 피는 분들이 담배 꽁초를 주워서 피우시더라. 복지사분들이 노숙인들에게 담배와 술은 못 사준다. 그래서 담배도 사서 한 개비씩 드리면서 이야기하고, 그러면서 조금씩 저도 두려움을 잊어갔던 것 같다. 오히려 ‘저 사람들이 우리를 무서워하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기자가 다가와서 묻고 이야기하고 촬영한다는 게 무서운 일이다.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보게 됐다. 처음엔 너무 취재가 안 되길래 사회부 기자들 하듯 몰래 찍어 녹취하고 모자이크해야겠다는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다. 근데 처음 카메라 들고 찾아간 날 혼나고 나서 절대 그렇게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여성 노숙인 인권을 다루는 건데 인권을 무시하고 몰래 찍고 몰래 녹음 따서 방송하면 의미가 없겠다고 생각해 최대한 허락받아서 얼굴과 표정이 나올 수 있게 방송했다. 10번 가까이 찾아가 설득한 분도 있고, 바로 촬영을 허락해 준 분도 있었다. 한 달 정도를 카메라 앞에 나올 수 있게 설득하는 시간으로 썼다.”

-영등포 쪽방촌 화장실에서 잤다. 같이 문간에서 잤다.

“취재가 잘 안돼서 감수하게 된 일이었다. 1시간 다큐멘터리다 보니 깊은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데, 잘 안됐다. 여성들이 길거리에서 사는 게 위험하다는 이야기가 말로만 전해지는 게 아니라 시청자들에게 직접 보여드려야 했다. 영등포 쪽방촌을 취재하러 갔다가 쪽방을 가보니 화장실이 없었고, 인근 공중화장실을 썼다. 여성 노숙인이 공중화장실에서 잠을 자더라. 함께 자야겠다고 생각했고, 지나가는 여성 노숙인한테 ‘하룻밤 화장실에서 자도 되냐’고 물었더니 ‘오면 박스 깔아줄게’라고 대답했다. 서울역에서도 자려고 했으나, 너무 술판이었다. 또 아무나 자는 것 같지만 다 자리가 있다. 사이에 아무 데나 끼여 자면 혼난다. 서울역은 잘 곳이 없었다. 저도 의도치 않게 다른 노숙인들처럼 잘 곳을 찾아다닌 거다. 화장실이 제일 안전하겠다고 생각했다.”

▲여성 노숙인들이 자는 공중화장실에 한 남성이 담배를 달라면서 들어왔다. 담배를 받은 후 기자에게 ‘다른 데 가서 자자’고 말했다. ⓒKBS ‘시사기획 창’ 보도화면 갈무리
▲여성 노숙인들이 자는 공중화장실에 한 남성이 담배를 달라면서 들어왔다. 담배를 받은 후 기자에게 ‘다른 데 가서 자자’고 말했다. ⓒKBS ‘시사기획 창’ 보도화면 갈무리

-공중화장실에 모르는 남성이 담배 달라면서 들어왔다. 위험한 순간이었다.

여성 촬영감독은 저녁 12시까지 함께 있다가 저와 여성 노숙인 2명만 남았다. 저는 고프로와 핸드폰 카메라를 들었다. 문간에서 평소에 없던 여자가 있는 걸 보고 문을 열고 들어온 것 같다. 거기 지내던 다른 여성 노숙인 두 명은 담배를 안 피우는 걸 그 남성이 알고 있다더라. 담배 없다는 거 아는데 담배 달라면서 문 연 거 자체가 핑계 대고 들어온 거다. 담배를 주니까 그 자리에 앉아서 ‘방에 가서 자자’고 이야기했다. (현장에선) 무슨 말인지 몰랐다. 녹화된 거 보니까 저한테 방에 가서 자자고 이야기한 거다. (방송엔 안 나갔는데) 여성 노숙인이 위험하다고 판단해 ‘얘 내 조카다. 건드리지 마라. 그만해라. 나가라’ 말하며 남자를 쫓아냈다. 하룻밤 만에 그런 일이 있을지 몰랐다. 전 하루지만, 이분들은 얼마나 이골이 났을까. 눈앞에서 돈을 흔들면서 따라오라는 식의 폭력이 엄청 만연하다고 했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그랬다. 남성은 쪽방촌에 거주하는 사람 같더라. 제가 후추 스프레이, 호루라기, 플래시 등을 가지고 갔는데, 상황 파악이 바로바로 안 되니까 그걸 꺼낼 새가 없었다.”

▲서울역에서 지내던 여성 노숙인이 저녁이 되자 잠을 청하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모습. ⓒKBS ‘시사기획 창’ 보도화면 갈무리
▲서울역에서 지내던 여성 노숙인이 저녁이 되자 잠을 청하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모습. ⓒKBS ‘시사기획 창’ 보도화면 갈무리

-여성 노숙인들이 서울역에 있다가도 서울을 벗어나 잔다.

“일정한 곳에 있는 분들도 있긴 하다. 그분들은 아주 오래된 분들이고, 그 외에 분들은 그렇지 않았다. 제가 원래는 아침부터 밤까지 여성 노숙인들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역사 화장실에서 씻고, 밥을 어디서 먹고, 어디서 잠자고 이런 걸 다 찍고 싶었는데, 그게 불가능한 게 첫 번째는 보통 여성들이 누가 밥 먹고 잠자고 노출하고 싶겠나. 특히 잘 곳이 노출되면 위험하다면서 피했다. 자는 곳의 안전을 지키는 것에 민감했다. 그걸 간과하고 계속 물어보고 다녔던 거다. 성범죄, 폭행 때문에 자는 곳을 노출하지 않으려고 했다. 실제로 어디서 주무시는지 아직도 모른다. 복지사분들 말 들으면 초기엔 찜질방, PC방, 코인 빨래방에서 주무시는 분들도 많다더라. 이후엔 화장실이다. 화장실도 폐쇄되는 경우가 많다. 화장실에서도 밀려나면 어디서 주무시는지 아직도 물음표다. 각자의 공간이 있을 것 같긴 하다.”

-여성 노숙인들이 시설은 왜 안 가려고 하는 건가?

“서울역 영등포역 노숙인 많은 곳에는 노숙인 센터가 있다. 추울 때나 특히 위험한 상황에서는 잘 수 있다. 거기 도움을 받으면 쪽방이나 고시원을 갈 수도 있다. 시설 가는 걸 꺼리는 게 남성들을 위해 만든 시설은 아니지만, 남성 노숙인이 훨씬 많다 보니 성별 구분 없이 만들어놨다. 혼숙해야 하는 상황인데, 혼숙 과정에서도 문제가 발생한다더라. 시설을 가야 쪽방이든 고시원이든 갈 수 있는데, 못 가는 거다. 쪽방에서도 피해가 생기는 경우도 많다. 저 방에 여자가 사는 걸 알면 문이 허술하니까 열고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오히려 길거리가 낫다고 이야기하더라. 쪽방에 가봤는데, 진짜 문이 항상 열려있다. 누구라도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여성은 길에 사는 게 더 안전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여성 노숙인 디딤센터가 전국에 한 곳이다.

“2016년에 개소해서 운영하고 있다. 거기서 공동생활을 한 달 하고 자활 과정을 거쳐 기초생활수급 자격을 얻어 고시원이든 어디든 나가서 지낸다. 한곳이지만 거기가 있어서 서울은 그나마 다행이고, 지역은 더 심하다. 여성 노숙인이 아예 갈 곳이 없어서 피해도 심각하고 문제가 복잡하다고 하더라. 지역에서는 젊은 사람은 인터넷에서 보고 서울로 찾아오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정말 다행인데, 대부분 여성 노숙인은 정보가 차단 돼 있다.”

▲올해 정부는 여성 노숙인 예산 1억 원 전액을 삭감했다. ⓒKBS ‘시사기획 창’ 보도화면 갈무리
▲올해 정부는 여성 노숙인 예산 1억 원 전액을 삭감했다. ⓒKBS ‘시사기획 창’ 보도화면 갈무리

-정부가 올해 여성 노숙인 예산을 1억 원을 전액 삭감했다.

“여성 노숙인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오니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봄 시범사업(서울브릿지센터)을 하자고 해서 서울 노숙인 센터 한 곳에 시범사업을 맡겼다. 여성 노숙인 전담 인력을 뽑아, 거리를 다니면서 여성 노숙인들 지원하고 파악하고 급하게 시설에 가셔야 하는 분은 인계할 수 있게 고시원에 방도 만들어놨다. 원래 지원하는 여성 노숙인이 66명이었는데, 전담 인력 2명이 생기니 지원 여성 노숙인 62명이 더 생겼다. 원래 파악한 여성 노숙인의 2배가 더 있었던 거다. 이분들 지원했고, 자활도 해드리고 집도 구해줬다. 올해 복지예산이 전반적으로 깎이고 특히 노숙인 예산 전체가 깎였다. 여성 노숙인 예산도 전액 삭감했다. 그게 고작 1억 원이다. 단 1억 원인데, 그걸 삭감해서 여성 전담 인력 뽑아서 했던 센터도 지자체 예산을 배정받아야 한다더라. 확대돼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오히려 아무것도 못 하게 길이 막혀버렸다. 왜 삭감했냐고 물었더니, 노숙인은 원래 지자체가 관리하는 거라고 답했다.”

▲일본 시민들이 버스 정류장에서 노숙하던 오바야시 마사코가 모르는 남성에게 맞아 죽자 애도했다. ⓒKBS ‘시사기획 창’ 보도화면 갈무리
▲일본 시민들이 버스 정류장에서 노숙하던 오바야시 마사코가 모르는 남성에게 맞아 죽자 애도했다. ⓒKBS ‘시사기획 창’ 보도화면 갈무리
▲일본 시민들은 여성 노숙인 오바야시 마사코의 죽음을 알고 있었다. ⓒKBS ‘시사기획 창’ 보도화면 갈무리
▲일본 시민들은 여성 노숙인 오바야시 마사코의 죽음을 알고 있었다. ⓒKBS ‘시사기획 창’ 보도화면 갈무리

-일본은 여성과 남성 노숙인 실태를 따로 조사하고 있다. 또 버스정류장에서 죽은 여성 노숙인의 죽음을 많은 시민이 알더라.

“버스정류장에서 지내다 맞아 죽은 여성 노숙인이 있다. 그 노숙인이 지내던 버스정류장에 직접 가서 일본 시민들을 인터뷰했다. 물었을 때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사망 사건 있기 전부터 그 여성분이 버스정류장에서 있다는 사실을 눈여겨봤다고 하더라. ‘도와줘야 하지 않나. 왜 여성이 저렇게 길거리에 있나.’ 안타까워하는 상황이었는데 맞아 죽었다고 하니 다들 충격을 받았다. 그 정류장에 한동안 계속 꽃이 있었다고 하더라. 일본이 사실 정책적으로 크게 앞서나가 있지 않은데 시민들의 시선이 다르다는 게 크게 와 닿았다. 노숙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개인이 게을러서, 개인이 원해서 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우리 사회의 문제고 나도 언제든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더라. 주거 문제든, 비정규직 문제든, 가정폭력 문제든 언제든 맞닥뜨릴 수 있는데 하나라도 겪게 되면 길거리에 나갈 수도 있다는 상황을 일본 사람들은 공감했다. 그런 시선이 우리도 있었으면 좋겠다.”

-정실질환 문제도 컸다.

“남성 노숙인보다 여성 노숙인의 정신질환 비율이 엄청 높다. 복지사분들도 그것 때문에 여성 노숙인들이랑 유대감 갖고 친해지기 어려워 시설로 보내기 어렵다고 하더라. 정신질환 때문에 나온 거냐 나와서 살다 보니 정신질환에 걸린 거냐 물었는데, 정확히 모르더라. 조사를 제대로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언어 성폭력만 당해도 사람이 충격에 빠지고 정신적 치유 기간이 필요한데, 폭력적인 상황이 일상인데 치유할 기회가 전혀 없다. 실제로 방송 나온 사람 중에 남편이 정신병원에 계속 입원시키고, 쫓아낸 사람도 많았다. 시설에 안 가는 이유도 정신병원에 보낼까봐 안 간다고 말하더라. 노숙 전에도 후에도 범죄 피해당한 퍼센트가 높다.”

-정책적으로 뭘 해야 하나?

“실태조사를 제대로 해야 한다. 2021년 마지막으로 실태조사를 했다. 쪽방 시설, 일정한 거리에 있는 노숙인을 대상으로 실태조사가 이뤄지는데 남성들이 대부분이고, 여성들은 잘 때 서울 외곽으로 이동하다 보니 자연스레 배제될 수밖에 없다. 여성 숫자도 축소돼서 발표되고 뭐가 필요하고 뭐가 어려운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대책이 잘 안 세워지는 거다. 일본 노숙인 실태조사를 보면 수십 페이지에 걸쳐 남녀를 정확히 구별해서 결과를 공개해 놨다. 이런 게 있어야 사람들도 보고 정책 만드는 분도 대책을 마련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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