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수원=연합뉴스) 김주환 기자 = 날씨가 초가을로 접어들던 작년 8월의 어느 평일.
한산하던 수원 화성행궁 매표소 앞이 낯선 장비를 든 사람들로 북적였다.
수원 화성행궁 건물과 주변 환경을 스캔하러 온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정보원 및 3D 스캔 전문 기업 ‘위프코’ 관계자들이었다.
한국문화정보원은 2022년부터 국내 문화유산을 게임·메타버스 제작에 활용할 수 있는 애셋으로 제작해 일반에 공개하는 ‘전통문화 분야 메타버스 콘텐츠 구축사업’을 진행해왔다.
주변 환경을 360도로 스캔하는 라이다(LIDAR·레이저 거리 측정) 장비를 등에 멘 한 직원은 천천히 수원 화성 경내를 돌아다니며 주변을 스케치했다.
건설 현장에서 주로 쓰이는 장비지만 정밀한 3D 공간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는 특성상 문화재 복원 작업에도 쓰인다는 것이 업체 측 설명이다.
그사이 다른 직원들은 화성행궁 위에 드론을 띄워 라이다가 챙기지 못하는 지붕 위 모습을 고화질 카메라로 촬영했다.
10명 남짓한 인력이 넓이 8만㎡가 넘는 화성행궁 외관 전체를 완벽히 스캔하는 데 걸린 시간은 1시간가량에 불과했다.
업체 관계자는 “하루에 1∼2시간가량 작업하는데, 화성행궁 건물 내부까지 포함하면 사흘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나, 스캔한 데이터를 콘텐츠로 가공하는 작업이 한창인 서울 서초구의 위프코 사무실을 찾았다.
앞서 측량한 데이터와 현장 사진, 남아있는 화성행궁 도면 자료 등을 기반으로 3D 모델링 프로그램을 이용해 실제 모습을 본뜬 디지털 모형을 만드는 작업이다. 기존의 문화재 3D 스캔은 데이터를 고용량·고화질로 그대로 보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문화정보원의 사업은 문화제 데이터를 저용량·고화질로 재가공해 활용성을 높이는 것이다.
스마트폰이나 PC에서도 무리 없이 구동할 수 있게끔 적은 수의 폴리곤(3D 모델을 구성하는 다각형)으로 실물을 재구성하고, 떨어진 디테일은 평면 위에 질감 차이를 주는 ‘노멀맵’ 기술로 살리는 식이다.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新豊樓)만 해도 원본 데이터는 4TB(테라바이트)가 넘는 방대한 양이지만, 이를 가공하면 8천분의 1 수준인 500MB(메가바이트) 정도로 크게 줄어든다는 것이 업체 측 설명이다.
또 단순히 한옥을 덩어리 파일로 만들어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주춧돌부터 마루, 기둥, 처마, 지붕의 기와까지 각 파트를 별도로 구현해 이용자가 자신만의 방법으로 한옥을 재구성할 수 있도록 모듈화한 것이 특징이다.
각각의 한옥 부품에는 게임 속 공간에서 실제 물체로 인식될 수 있게끔 충돌 처리가 되어 있어 캐릭터와 상호작용하거나 파괴 효과를 구현할 수 있다.
한국문화정보원 주도로 6개월간 작업한 데이터 4천543건은 문체부가 올해 들어 새롭게 단장한 ‘메타버스 데이터랩’ 홈페이지에 지난 13일 무료로 공개됐다.
공개된 자료 중에는 수원화성행궁뿐만 아니라 경기 김포시 통진면의 농경문화 소품, 조선 정조 시기의 무예 교범 ‘무예도보통지’ 속 ‘무예24기’ 동작, 조선시대 인물을 모티브로 제작된 가상 인간(디지털 휴먼) 등도 포함돼있다.
이런 자료는 언리얼 엔진의 ‘마켓플레이스’, 유니티 엔진의 ‘애셋 스토어’에도 동시에 올라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게임 개발자들이 한옥과 한국 전통문화 소품을 활용해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을 전망이다.
사업을 총괄한 이권수 한국문화정보원 부장은 “해외 개발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 자료도 추가할 계획”이라며 “앞으로도 더 많은 지자체, 공공기관, 기업과 협조해 한국의 문화재와 자연환경을 게임 개발자들에게 알리겠다”고 말했다.
juju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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