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정인지 기자】 “현대 의학으로 통증을 완화할 방법이 없는데, 참고 살아가기에는 너무 힘들다. 그렇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가족들에게 트라우마를 남기고 싶진 않고, (안락사를 허용하는) 스위스가 아닌 고국에서 생을 마감하는 방법은 없을까”
원인불명의 불치병 ‘척수염’을 진단받고 하반신 마비와 환상통에 시달리고 있는 이명식(63)씨의 말이다.
척수염 진단 5년 차를 맞은 그는 ‘조력존엄사’를 통해 회복될 가망이 없는 하루의 반복을 끊어내기를 희망하고 있다.
11일 녹색정의당에 따르면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조력존엄사 정책토론회’에서 이 같은 내용이 논의됐다. 해당 토론회는 녹색정의당 정책위원회가 주최하고 한국존엄사협회가 함께 했다.
조력존엄사는 ‘연명의료중단’과 ‘적극적 안락사’와는 분명하게 구분된다. 연명의료중단은 임종 시기에 있는 환자의 자기결정권 행사에 의해 인위적인 생명연장장치를 중단하거나 연장행위를 중지하는 것을 말한다.
적극적 안락사는 의사가 환자에게 죽음을 초래할 물질을 투여하는 등 인위적·적극적 방법으로 환자를 사망에 이르도록 하는 행위를 뜻한다.
반면 조력존엄사(의사조력사)란 대상자가 본인의 의사로 담당의사의 조력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종결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씨는 3시간 이상 앉아있기 어려운 탓에 화상회의를 통해 이날 토론에 참여했다. 그는 조력존엄사를 입법하지 않은 현행 법은 위헌이라며 지난해 12월 헌법소원을 제기한 바 있다.
이씨는 “(국내에서 조력존엄사를) 반대하고 싶다면 제 통증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반대해야 할 것”이라며 “통증 완화나 치료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는 무책임한 반대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반대하는 이들에게는 “지금 내 몸이 아무렇지 않게 건강하다고 해서 죽는 그날까지 튼튼하게 살다가 죽을 것이라고 자신하냐”고 되묻기도 했다.
그러면서 “현대의학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이라면 그 통증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거나 멈출 수 있는 마지막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대 측에서는 조력존엄사가 법제화된다면 취약 계층의 생명권을 앗아갈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동아의대 김정아 교수는 “장애, 노령 등 자본주의 안에서 생산능력을 의심받는 이들에게는 (조력존엄사가) 의무사항으로 여겨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인으로서의 양심의 자유 문제도 거론됐다. 그는 “의사들에게는 이에 대한 실질적인 역할을 하거나,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사들에게 의뢰해야 하는 의무가 발생한다”면서 “조력사가 윤리적으로 논쟁적인 지점에 있는 만큼, 어떤 의사들에게는 자신의 정체성과 상충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녹색정의당 김찬휘 공동대표는 “노인빈곤율이 OECD 최고이며 사회복지제도가 미비한 우리나라에서 이것이 오용되거나 악용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언급조차 터부시하는 것은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과 품위있는 죽음의 권리에 대해 외면하는 일”이라며 논의의 장이 활성화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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