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2년 뒤 일반 주유소와 비슷하게 5분 만에 충전을 끝내는 전기차 시대가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오랜 충전 시간은 그동안 전기차 보급 확대의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로 꼽혔는데 급속 충전 기술이 전기차 산업의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기)을 극복할 돌파구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6∼8일 사흘간 열린 국내 최대 규모 이차전지 전시회 ‘인터배터리 2024’에서 앞다퉈 초급속 충전 배터리 기술력을 선보였다. SK온은 초급속 충전이 되는 어드밴스트(Advanced) SF와 함께 이를 탑재한 기아 EV9을 전시장에 내세웠다. SK온은 2021년 18분 만에 10%에서 80%까지 충전할 수 있는 SF 배터리를 공개한 바 있다. 이어 충전 시간은 유지하되 이보다 에너지 밀도를 9% 높인 어드밴스트 SF 배터리를 출시했다. 에너지 밀도가 높을수록 충전 시 주행 가능한 거리가 늘어난다. 기존 SF 배터리를 탑재한 제네시스 eG80의 충전 후 최대 주행거리는 427km이고 어드밴스트 SF 배터리를 쓰는 EV9은 501km다.
SK온은 급속충전 시간을 15분으로 단축한 SF플러스(+) 배터리도 공개했다. 중장기적으로는 5분 충전으로 300km 주행 가능한 배터리를 2030년까지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존하 SK온 부사장은 “이미 2년 전 7분 급속충전 기술도 개발했지만 2030년을 목표로 삼은 이유는 충전기 용량 등 인프라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초급속 충전 배터리를 뒷받침할 수 있는 고출력 충전기가 충분히 보급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이야기다.
반면 삼성SDI는 5분 충전에 300km 주행이 가능한 시기를 2026년으로 바라봤다. 삼성SDI는 이번 행사에서 9분 만에 8%에서 80%까지 충전 가능한 초급속 충전 기술을 발표했다. 9분 충전하면 600km를, 5분이면 절반인 300km 주행이 가능하다.
고주영 삼성SDI 부사장은 “평균 5분 주유로 600km 달리는 내연기관차처럼 동일한 수준의 전기차 배터리를 개발하는 게 우리의 방향성”이라며 “2026년 9분 만에 충전되는 배터리를 선보일 것”이라고 했다. 고 부사장은 “전기차 사용자의 패턴을 분석한 결과 일반적인 주행 거리는 하루 100km 안에서 해결됐다”며 “5분 충전으로 300km만 가도 대부분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경쟁사처럼 초고속 충전 배터리를 전시장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지만 자체적으로 충전 시간을 줄이는 방향으로 배터리를 고도화하고 있다. 2019년 업계 처음으로 실리콘 음극재를 적용한 배터리를 양산하며 20분 만에 80% 이상 충전 가능한 기술을 구현했다. 포르셰가 올 초 공개한 전기 스포츠 세단인 타이칸 신형에도 실리콘 함유량을 높인 해당 배터리가 탑재됐다. 타이칸은 18분 만에 10%에서 80%까지 충전할 수 있다. 실리콘 음극재는 기존 흑연 음극재 대비 배터리 에너지 밀도는 4∼10배 높이면서 충전 시간을 크게 줄여주는 고부가 소재다.
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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