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만학도 학교’ 일성여중 올해 최고령 입학생 김경애 할머니 인터뷰
“어렵게 살며 도둑질 빼고는 다 해봐” 눈시울 붉혀…암 수술 후에도 ‘열공’
(서울=연합뉴스) 장보인 기자 = “중학교 1학년이면 열네살이잖아요? 내가 열네살이라는 생각으로 ‘이제 시작이다’ 하고 공부하고 있어요.”
지난 8일 만학도들의 학교인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학교에서 만난 김경애(86) 할머니는 소녀같이 맑은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김 할머니는 올해 일성여중의 최고령 입학생이다. 미국에 사는 딸이 혼자 사는 어머니가 외로울까 걱정하며 입학을 추천했다.
지난 5일 새 학기가 시작돼 새로운 학우들을 사귀고 공부에 전념하고 있는 김 할머니는 “재밌다. 시간도 너무 잘 가고 여럿이 이야기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난생처음 배워보는 영어가 좀처럼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며 이마를 짚기도 했지만 주위에 앉은 다른 학생들은 “잘하고 계신다. 귀가 조금 안 들리셔서 그렇지 젊은 사람만큼 빠르게 뭐든 잘하신다”고 입을 모았다.
주민등록상 1939년생인 김 할머니는 실은 한 해 빠른 1938년에 태어났다. 호랑이가 수시로 나오는 강원도 두메산골에서 자랐다는 그는 열두살 무렵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는 등 곡절을 겪었지만 홀로 남은 어머니는 먹고살기 힘든 상황에도 김 할머니를 학교에 보냈다. 자신이 배우지 못한 것에 한이 맺혀서였다.
국민학교를 졸업한 뒤엔 중학교에도 진학했다. 그러나 김 할머니는 1학년을 마치지 못하고 중퇴했다.
“위에 언니 오빠들은 출가했는데 나랑 남동생이 남아 있으니 어머니께서 어떻게든 애를 쓰시면서 살았어요. 그 살아온 길은 이루 다 말로 할 수가 없지. 그때만 해도 학교에 월사금을 냈는데 어머니가 너무 힘드시니 ‘나 이제 그만둘래’하고 나와서 농사일을 거들었죠.”
한때 국민학교 교사를 꿈꾸기도 했던 그는 그 뒤로는 학교에 가지 못했다. 19세에 결혼을 해 2남 1녀를 낳았고 그다지 가정적이지 않았던 남편 대신 자녀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일념으로 살았다.
“나는 어렵게 살았어도 자식들은 나같이 만들면 안 된다는 정신 하나로 버텼다”는 김 할머니는 “노점 장사도 해보고 다 했다. 도둑질 빼고는 다 했다고 할 정도로 안 해본 게 없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정신 없이 살다 보니 어느새 80대에 접어들었다. 김 할머니는 지난 5년간 건강이 악화해 병원 신세를 여러 번 졌고 지난해 5월에는 대장암 수술도 했다. 지금도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 진료를 봐야 하는 ‘환자’라고 김 할머니는 설명했다.
하지만 자녀들의 응원을 받으며 60여년 만에 다시 책상 앞에 앉는 일은 새로운 활력이 됐다.
김 할머니는 “허리도 아프고 힘들기도 하지만 나는 강하다. 엄마는 강한 것”이라며 “이제 나이가 있으니 좀 힘들 것도 같지만 그래도 정신력으로 버티며 한번 해보려고 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건강이 따라주면 고등학교도 갈 생각”이라며 “공부해서 뭔가 이루고 싶은 건 없다. 그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나이가 두려워 선뜻 도전하지 못하는 많은 이들, 특히 인생의 후배들을 향한 격려도 잊지 않았다.
“나이가 많아도 할 수 있죠.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돼요. 삶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고, 우리 같은 사람은 언제 죽을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사는 동안은 최선을 다해 보는 거예요.”
bo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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