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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전공의 이탈로 빚어진 의료공백의 대책 중 하나로 간호사 인력의 전면 활용이라는 카드를 꺼내자 보건의료계 표정이 크게 엇갈렸다. 그동안 의료현장에서 공공연한 비밀로 활용돼 온 ‘진료보조(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 제도화가 속도를 내면서 간호계는 모처럼만에 화색이 돌았다. 당초 정부와 의사들의 강대강 대치 속에 “간호사가 또다시 이용만 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던 것과 달리, 의사들의 진료 독점이 깨지고 간호사들의 오랜 숙원인 간호법 제정에 탄력이 붙을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8일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오늘(8일)부터 간호사들도 응급 환자를 대상으로 심폐소생술(CPR)을 하고, 응급 약물을 투여할 수 있게 된다. 보건복지부는 전일(7일)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보완 지침’을 통해 일시적으로 간호사들이 의사를 대신할 수 있는 의료행위 98개를 제시했다.
일선 병원에서는 복지부가 전공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에 돌입하자 구체적인 기준이 없어 간호사들이 불법 상황에 내몰리고 현장 혼란이 가중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날 공개된 보완 지침은 복지부가 대한간호협회와 협의를 통해 마련한 것으로 당초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이 주로 하던 행위가 다수 포함됐다. 간호사를 숙련도와 자격에 따라 ‘전문간호사·전담간호사·일반간호사’로 구분하고 그에 따른 업무 범위와 교육·훈련 의무를 명시했다. 전담간호사란 특정 분야·업무에 관한 훈련을 받은 간호사로, 흔히 말하는 PA 간호사다. 전문간호사는 추가로 자격시험을 통과한 간호사를 말한다. 전문간호사와 전담간호사의 경우 위임된 검사·약물의 처방은 물론 진료기록이나 검사·판독 의뢰서, 진단서, 전원 의뢰서, 수술동의서 등 각종 기록물의 초안을 작성할 수 있다. 응급 환자에 대한 심폐소생술과 응급 약물 투여 등의 업무는 일반간호사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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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PA 간호사는 의료법 등에 따라 제도화된 직역이 아닌 탓에 합법과 위법의 경계에 놓여 있었다. 업무 범위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규정이 없다 보니 수술 전 준비와 수술 후 정리, 수술 관련 처방을 확인하고 누락사항을 알려주는 등 의사 지시에 따른 보조 역할 정도를 관행적으로 하고 있었던 실정이다. 한시적이라고는 하나 이날부터 전문·전담간호사는 진단서와 수술동의서 초안(의사가 승인)을 쓰고, 검사·약물을 처방할 수 있다. X선 촬영과 대리수술, 전신마취, 전문의약품 처방, 사망 진단 등을 제외하면 독자적으로 수행 가능한 의료 행위의 범위가 대폭 확대된 것이다. 전문간호사라면 중환자의 기관 삽관, 중심정맥관 삽입, 뇌척수액 채취 등도 할 수 있다. 모든 간호사는 응급상황에서 심폐소생술과 응급 약을 투여할 수 있게 됐다. 단, 의료기관장이 간호사 업무 범위 조정위원회를 구성해 간호부장과 업무 범위를 협의하고 관리·감독 미비로 의료사고가 일어날 경우 기관장이 최종 법적 책임을 진다는 전제다.
이번 조치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일 “진료지원 간호사는 시범사업을 통해 전공의 업무 공백을 메우고 법적으로 확실하게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언한 데서 비롯됐다. 정부는 이 시범사업을 모니터링해 제도화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각 병원이 전담간호사를 채용하면 보상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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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단체는 이번 조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번 조치는 의사, 간호조무사 등 간호사를 제외한 보건의료직역들의 반발 끝에 지난해 윤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와 국회 재표결 부결로 폐기됐던 간호법과 상통하는 측면이 많다. 의료법 제2조는 간호사의 임무를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라고 규정한다. 간호사의 임무를 ‘진료의 보조’로 한정한 탓에 간호사들은 그동안 실질적으로 의사 업무를 상당 부분 수행하면서도 법적, 제도적 지위를 인정받을 수 없었다. 시범사업 형태로 한시 허용한다고는 하나 심폐소생술, 응급약물 투여는 물론 뇌척수액 채취, 진료기록 작성 등 전문적인 의료행위까지 허용함으로써 사실상 의사가 독점해 온 진료 영역을 깨고 간호법 제정의 물꼬를 트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대한간호협회는 대통령이 주재한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 직후 논평을 통해 “윤 대통령 발언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긴급 체계에서만 시범사업으로 간호사를 보호하고 위기가 끝나면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번 기회에 간호사를 상시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궁극적으로 간호인력의 자격·업무범위 명확화와 처우 개선 등을 담은 간호법이 제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간호협은 오늘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실이 간호법 제정에 대해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한 데 대한 공식 입장을 발표한다고 예고했다. 이러한 기세를 몰아 간호법 제정 재추진에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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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행보에 의사단체는 “정부가 나서 불법 의료행위를 양성화한다”며 날을 세우고 있다. 주수호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7일 정례 브리핑에서 “제대로 자격도 갖추지 못한 PA 간호사에 의해 불법 의료행위가 양성화되면 의료인 면허 범위가 무너지면서 의료 현장이 불법과 저질 의료가 판치는 곳으로 변질될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또 “의사들이 의료법에 규정된 의료 행위를 하고 결과가 나쁜 경우 민·형사상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처럼 간호사들도 동일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업무 범위 조정에 따른 의료 행위에 대해 간호사들을 법적으로 보호해 줄 수 있는 장치가 하나도 없는데 과연 간호사들이 시행하겠느냐”고 비꼬았다.
현장 간호사들은 아직 조심스러워 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뚜렷한 보상이나 역할 분담에 대한 논의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업무를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상급종합병원에 근무 중인 PA 간호사는 “전공의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추가 보상 없이 업무를 떠맡은 지 3주가 되어간다”며 “(간호법 제정이) 또다시 불발되면 비상상황 시 대체 인력으로만 전락하는 건 아닌지 불안해 하는 이들이 많다”고 토로했다.
의협은 간호법이 통과되면 간호사가 지역사회, 즉 의료기관 밖에서 의사 지도 없이 단독 개원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간호사의 무면허 수술과 처방이 속출할 것이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의사를 비롯한 나머지 보건의료직역들의 이 같은 논리로 간호법 제정안을 격렬하게 반대하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간사인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난해 11월 논란을 빚었던 ‘지역사회’ 문구를 수정한 채 재발의했다. 당시 윤 대통령은 “(간호법안이) 유관 직역 간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간호 업무의 탈 의료기관화는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하고 있다”며 양곡관리법에 이어 취임 후 두 번째로 재의를 요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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