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전 수도권 내 한 산부인과. 평일이지만 부른 배를 부여잡고 남편과 함께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순서를 기다리는 임산부들로 북적였다. 예약 없이 진료를 볼 수 없다. 임신 확인차 당일 병원을 찾은 여성은 “사전 예약 없이 당일 진료는 어렵다”는 안내를 받고 발길을 돌렸다.
대학병원 전공의들이 지난달 19일부터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발해 집단사직에 나선 이후 ‘후폭풍’이다. 집단사직 이전에도 산부인과는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등과 함께 인력과 인프라 부족에 시달리는 상황이었다. 익명을 요청한 산부인과 의사는 “가뜩이나 산부인과 지원율이 저조한데”라며 말을 아꼈다.
대학병원 인근 분만 가능한 산부인과 상황은 더 심각하다. 수도권 내 산부인과 전문의는 “근처 대학병원에서 진료받던 임산부들이 하루에도 몇명씩 넘어오는데 자체 파업을 하고 싶을 정도”라고 토로했다. 그는 10분가량 간단한 진료를 마친 뒤 쉴 틈 없이 곧바로 진료실 앞에 대기 중인 임산부를 진료에 다시 나섰다.
산부인과 간판을 걸었다고 해서 다 같은 산부인과가 아니다. 단순 진료만 보는 산부인과와 분만 가능한 산부인과가 나뉜다. 지난 2021년 기준 국내 산부인과 10곳 중 4곳만 분만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국 산부인과는 1313개인데, 분만 의료기관은 487개에 그친다. 4월 출산을 앞뒀다는 30대 김모씨는 “임신 초기 대학 병원도 알아봤지만, 고민 끝에 집 근처 병원을 택했는데 오히려 다행”이라고 했다.
수도권 상황은 나은 편일 수도 있다. 전체 산부인과 1313개 가운데 서울(397개)과 경기(272개)에만 절반이 몰려있다. 지역 내 산부인과가 없는 임산부는 다른 지역으로 ‘원정 진료’를 다니기도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출산이 임박한 산모들이 다급하게 출산 가능한 병원을 찾는 글들이 여럿 올라오고 있다. 330만명이 가입한 맘카페에는 “대학병원에서 다른 분만병원을 미리 찾아 놓으라더라”, “전원의뢰서도 무용지물”, “동네병원과 병행해서 다녀야겠다”는 글이 다수 게재됐다. 잡혀있던 진료 날짜가 1~2달 밀렸다는 얘기도 허다하다.
산부인과를 비롯해 동네 병의원들이 전공의 집단사직에 따라 ‘반사효과’를 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학병원에서 퇴짜를 맞은 환자들이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인근 병의원을 찾는다는 것이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닥터나우는 정부가 집단사직에 대응해 비대면 진료를 전면확대한 지난 2월 23일 이후 이용 건수가 배가량 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비대면 진료를 실시 중인 의료기관 대부분 동네 의원으로 알려졌다.
반대로 일부 대형 병원은 전공의들의 이탈로 줄어든 수술과 진료로 인한 손실로 간호사 등의 직원을 대상으로 ‘무급 휴가’를 받고 있다. 대한간호협회는 전국에서 병원 측 무급휴가 강요 신고가 집수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동네 병의원 의료진도 인력 한계가 뚜렷한 만큼 사태 장기화 시 업무 누적으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