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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변(便)이 있나.’ 더럽고 냄새나는 것으로 치부되기 쉬운 대변이지만, 대변은 건강의 바로미터다. 옛 왕실에서는 군주의 대변을 맛보고 살펴 병의 유무를 가렸다. 용변 후 냄새나 모양·색상 등을 보는 것, 건강을 확인하려는 본능적 습성이다.
우리나라는 옛부터 대변을 비료로 활용했고, 일본엔 똥 파는 직업도 있었다. 가난한 집 보다 영양상태가 좋은 부잣집 똥은 고가에 거래됐다. 중국에선 이미 4세기에 분변을 약으로 사용했다. 대변이 돈이 된 역사는 유구하다.
똥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오랫동안 천착해 온 기업이 있다. 지난 2016년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이동호 교수(대표이사)가 설립한 바이오벤처기업 바이오뱅크힐링이다. ‘국내 1위 대변은행’ ‘FMT 기반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개발’ 등 바이오뱅크힐링을 대변하는 수식은 많다.
건강한 사람의 대변에서 추출·제조한 미생물(FMT) 이식액을 장 질환자에게 이식해 치료하는 것으로, 환자마다 다른 장내 환경·미생물 등을 고려하면 최적의 맞춤 조합 찾기란 사막에서 바늘찾기다.
우선 이식액 생산이 어렵다. 주원료인 대변의 질을 담보하기 쉽지 않다. 미국의 가장 큰 대변은행 합격률은 3% 수준이다. 이원석 이사는 “대학병원 수준의 건강검진을 통해 어렵게 찾은 건강한 사람이라도, 매번 좋은 대변을 기증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조금이라도 결격사유가 있으면 그대로 아웃, 명문 하버드대 입시보다 어렵다”고 말했다.
철저한 절차를 거쳐 확보한 대변으로 혐기성 미생물을 보존하면서 FMT 이식액을 만드는 기술이 가장 중요하다. 기술력의 차이가 드러나는 지점이다. 국내에선 분당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이 경쟁한다. 바이오뱅크힐링은 현재 15개 병원에 FMT 이식액을 공급한다. 국내 최대 규모다.
FMT 이식액(250㎖) 가격은 80만선. 시술비까지 합하면 130만원대로, 난치성 시디피실 감염성 장질환(CDI) 치료는 단 1회면 충분하다. 내시경 가능 병원이면 시술 가능하다. 상부내시경을 통해 십이지장, 대장내시경을 통해 상행결장이나 횡행결장에 뿌려주면 된다. 환자의 장내 미생물 종류에 따라 장내환경을 변화시켜 건강을 되찾게 하는 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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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T 이식액의 활용 가능성은 열려 있다. 임상데이터 축적이 필요하지만 항생제 유발 장염은 물론 염증성장질환이나 만성질환·자폐증의 경우 지속 투여시 증상 개선에 도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동호 교수는 “건강한 사람의 미생물은 치료율이 90% 이상 된다는 게 임상연구로 증명됐다”며 “인체유래라 더욱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바이오뱅크힐링 연구실에서는 기증자의 대변에서 치료효과가 있는 미생물을 찾는, 미지의 채굴 작업이 무한반복 중이다. 아직 찾아내지 못한, 난치성 질환을 비롯한 인류를 괴롭히는 여러 질환 치료에 도움줄 수 있는 수백 수천종을 찾아내려는 수고다.
이동호 교수는 “장내미생물이 면역시스템을 바꿀수 있기 때문에 면역항암제가 안 듣던 환자에게도 효과가 있을 수 있다”며 “난치병 정복의 하나의 툴, 난치병 치료의 열쇠가 대변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속가능한 연구개발을 위해서는 임상이라는 큰 문턱이 남아 있다. 단일조합 확인에도 수개월이 걸린다. 복합균주로 8개 이상의 치료제를 개발하는 바이오뱅크힐링으로서는 간단치 않은 문제다. ‘기술개발-중도포기-기술수출’ 악순환은 않겠다는 이동호 교수에게 필요 자금은 100억원. 자금력에 성패가 달렸다.
시디피실 감염성 장질환(CDI)·과민성대장증후군(IBS)·염증성장질환(IBD) 등 3대 난치성 장질환의 2023년 시장규모는 39조원으로, 오는 2030년 70조5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시장가치는 있는 셈이다.
똥을 둘러싼 기술경쟁은 아시아권 전반으로 확전 추세다. 일본과 중국은 물론 지난 2020년엔 싱가포르에도 대변은행이 생겼다. 국가차원의 지원은 아니지만, 가능성을 엿 본 영리기관들의 투자가 이어지면서 똥의 전쟁이 본격화는 모양새다.
질환별 최적의 조합으로 경구용 치료제 개발에 성공해 한국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회사의 우수한 기술력을 알리고 싶어하는 바이오뱅크힐링은 오는 2026년 주식사장 상장까지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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