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즘 사회문제는 다 ‘메갈’이 일으켜요.”
직장인 ㄱ씨는 점심시간, 남성 동료로부터 이러한 얘기를 듣고 짧은 언쟁을 벌였다. 차별에 항의하는 여성에게 메갈(여성혐오에 ‘미러링’으로 대응한 인터넷 커뮤니티 메갈리아 이용자를 가리키는 말로, 극단적 페미니스트를 혐오적으로 부르는 표현) 딱지를 붙이는 게 더 문제라는 취지로 반박했다. 다음 날 해당 자리에 동석했던 이사가 ㄱ씨를 불렀다. “다음주부터 나오지 마세요.” ㄱ씨는 해고됐다.
#2. “나 때는 좋아하는 여자 밤에 따라다니는 게 국룰이었어.”
직장인 ㄴ씨는 대표가 한 이 말에 동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 여성분은 좀 놀라셨을 수도 있겠다”고 조심스럽게 답한 게 해고의 빌미가 됐다. 대표는 “사상과 가치관에 맞지 않아 함께 일할 수 없다”고 했다.
페미니즘사상검증공동대응위원회(이하 공대위)가 6일 발표한 일터 ‘페미’ 사상 검증 피해 사례다.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과 전국여성노동조합, 청년유니온 등 6개 단체는 이날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전태일 기념관에서 공대위 출범식을 진행하며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전국여성노동조합이 온라인 설문을 통해 제보받은 피해 사례 일부를 공개했다.
총 56명이 제보한 77건의 피해 사례를 살펴보면, 여성 노동자는 공적·사적 장소를 가리지 않고 페미 사상 검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채용 면접에서 ‘여성 커뮤니티 활동을 한 적 있느냐’ ‘페미니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기 일쑤였고, 일상 대화 중에도 ‘페미는 패버려야 한다’ ‘페미는 잘라야 한다’는 말을 수시로 들었다. “돈 벌어서 집 사겠다고 했더니 동료가 ‘페미냐’고 비아냥거렸다”는 제보도 있었다.
페미 사상 검증이 단순히 언어폭력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 계약해지와 해고로 이어진 경우도 상당수였다. 피해사례 총 77건 가운데 7건(9%)이 부당해고 및 계약해지였고, 채용시 성차별을 받거나 입사 취소로 이어진 경우도 14건(18%)에 달했다. ‘채용 후라도 (여성 커뮤니티) 활동 사실이 밝혀지면 인사상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 ‘재직 중 에스엔에스(SNS)에 물의를 일으킬 경우 본인이 피해를 보상한다’ 등 노동자에게 현저히 불리한 조항이 포함된 계약을 체결한 경우도 2건 있었다.
특히 일러스트레이터, 성우 등 게임 업계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는 일부 악성 게임 유저로부터도 페미 사상 검증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악성 게임 유저들이 커뮤니티에 ‘페미니스트 블랙리스트’를 작성·게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게임회사에 지속적으로 민원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여성 노동자를 ‘사이버불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페미니스트가 아닌데 이 리스트에 올라갔을 경우 사상 검증을 통해 닉네임을 지워주겠다’며 판관 행세까지 하고 있다고 공대위는 전했다.
공대위는 “페미 사상 검증은 사상의 자유라는 헌법 가치를 침해하는 심각한 인권 탄압이자 범죄임에도 기업은 일부 게임 유저의 요구에 따라 계약을 중지하는 등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불이익 대우를 하고 있으며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공대위는 사상검증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신고채널을 운영하고, 회사와 정부가 제 역할을 하도록 압박하는 활동을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한겨레 최윤아 기자 /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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