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선 이상 중진, 대거 ‘낙동강 벨트’ 재배치…’양지’ 강남권 초·재선도 험지로
총선 한 달여 앞두고 밤낮없이 ‘얼굴 익히기’ 나서…”눈코 뜰 새 없어”
(서울=연합뉴스) 김치연 홍준석 기자 = 국민의힘의 4·10 총선 지역구 공천 작업이 8부 능선을 넘은 가운데 새 지역으로 재배치되는 현역 의원들이 속속 나오면서 그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당이 선당후사와 이기는 공천을 앞세워 전략적으로 중진 의원을 중심으로 지역 재배치에 나섰으나 대상 의원 대부분이 선거를 코앞에 두고 연고가 없는 지역으로 옮긴 탓에 애를 먹고 있다.
6일 연합뉴스가 전날까지 진행된 국민의힘 공천 결과를 분석한 결과 과거 당선된 지역을 떠나 당선 이력이 없는 새 지역으로 이동해 출마했거나 출마를 고려하고 있는 현역 의원은 12명으로 집계됐다.
12명 중 7명은 3선 이상 중진이었고, 초선 3명, 재선 2명이었다.
특히 부산·경남(PK) 지역 중진들의 ‘낙동강 벨트’ 재배치가 눈에 띈다.
5선 서병수 의원은 부산 부산진갑에서 부산 북구갑으로 이동했고, 3선 김태호 의원은 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에서 경남 양산을로, 3선 조해진 의원은 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에서 경남 김해을로 이동해 도전장을 낸다.
초·재선에 비해 인지도 면에서 앞서는 중진 의원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서병수 의원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나는 부산시장을 했기 때문에 이곳에 일해놓은 흔적도 있고 시장 때 알던 사람들도 있어 그나마 괜찮은 편”이라며 “다만 다른 지역 후보들은 지역 여론을 조성하는 자생 단체 사람들과 만나고 알아가는 과정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에서 가장 먼저 부산 해운대갑을 떠나 서울 출마를 결정한 3선 하태경 의원도 “서울 중·성동을에 출마한다고 선언한 이후로는 매일 같이 지역에서 살고 있다”며 “초선의 마음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뛰면서 지역 주민들을 만나기에 눈코 뜰 새 없다”고 말했다.
선거구 획정으로 일부 지역구가 조정되면서 3선 김도읍 의원이 부산 북강서을에서 부산 강서로, 3선 유의동 의원이 경기 평택을에서 경기 평택병으로 이동했다. 두 지역 모두 선거구 획정 전 기존 지역보다 야당 강세 지역으로 평가된다.
중진 의원들이 비교적 기존 지역구와 인접한 곳으로 재배치됐다면, 초·재선 의원은 ‘양지’에서 ‘험지’로 이동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태영호 의원(초선·서울 강남갑)은 서울 구로을로 이동해 출마를 선언했고, 유경준(초선·서울 강남병) 의원은 당 공천관리위원회가 재배치 지역을 고심 중이다.
최승재 의원(초선·비례)은 서울 마포갑 출마를 희망했으나 이후 당의 요청에 따라 경기 광명갑으로 이동한 뒤 현실의 벽을 느끼고 결국 경선 포기를 선언하기도 했다.
재선 의원 중에서도 박성중 의원(서울 서초을)은 경기 부천을로, 이용호 의원은 서울 마포갑을 희망했으나 이후 서울 서대문갑으로 이동해 출마하기로 했다.
선거를 불과 한 달여 앞두고 재배치가 이뤄지는 탓에 후보들 사이에서는 사실상 제대로 된 지역 다지기가 불가능하다는 불만도 나온다.
재배치된 지역에서 출마하게 된 한 후보는 “당을 위해 험지로 가달라는 요청을 받아 수락하기는 했지만, 당이 재배치하려면 좀 더 빨리해줬어야 하는데 너무 늦어져서 참 답답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관록 있는 전직 의원들도 지역구를 옮겨 ‘험지 탈환’에 고군분투하고 있다.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도 부산 북강서갑에서 두 차례 당선됐으나 서울 강서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시절 서울 양천을에서 3선을 한 김용태 전 의원도 이번 총선에서는 경기 고양정 탈환의 숙제를 떠안았다.
지역구 재배치 요구를 받은 한 후보는 “당에서는 기존에 후보들에게 두 번 세 번 기회를 줬고 좋은 지역구였다면 혜택을 받았던 것 아니냐는 생각도 있는 것 같다”며 “그렇기에 본인들이 조금 어려운 곳이지만 감수하고 출마할 기회를 준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공천 잡음을 줄이면서 현역 물갈이를 하는 방식으로 지역 재배치를 당이 이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진이 대거 재배치된 ‘낙동강 벨트’는 비교적 선전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지만, 대부분의 경우 선거를 코앞에 두고 새 지역에서 기존 조직을 장악하고 유권자에게 이름을 알리는 것이 쉽지 않은 탓이다.
3선을 지낸 서울 양천갑을 떠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지역구인 인천 계양을에 출사표를 낸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계양에 처음 왔을 때 나를 국토부 장관으로 아는 분도 계시지만 내가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분들도 많았다”며 “계양에 뿌리내리겠다며 동양동으로 이사하고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주민들을 만나러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총선에서 지역구를 바꿔 출마에 나선 현역 의원들의 성적표는 좋지 않았다.
안상수 전 의원은 21대 총선에서 인천 동·미추홀을에 나서 고배를 마셨고, 서울 서초갑에서 3선을 지낸 이혜훈 전 의원도 서울 동대문을에 출마해 낙선했다.
김재원 전 의원도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을 떠나 지난 총선에서 서울 중랑을에 나선 뒤 떨어졌다.
당 지도부 관계자는 “어려운 곳에 가주셨으니 당에서 지원할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먼저 지원하려는 마음과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도부는 관계자는 “재배치 요구는 당 상황이 어려우니 희생하고 헌신해 달라는 취지”라며 “당 입장에서는 출마 기회를 준 것만으로도 보답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chic@yna.co.kr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