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을 30여 일 앞둔 가운데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녹색정의당이 기후 위기와 환경에 관심이 많아진 유권자들의 표심을 공략하기 위해 정책 공약 경쟁을 벌이고 있다. 기후 위기 대응 정책은 중도층 유권자가 관심을 갖는 주제다. 여당은 기후대응기금 5조원 조성을 공약했다. 야당은 재생에너지 3배 확대를 들고 나왔다. 전문가들은 기후 공약 부상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유권자들이 공약의 정책 실현 가능성을 계속 지켜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2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번 4·10 총선에서 기후 변화가 중요한 정책적 의제로 부각되고 있다. 기후 변화가 환경 이슈를 넘어 경제·외교·고용 등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유권자들의 표심 사로잡을 만한 ‘블루 오션’으로 부상했다는 평가다.
소위 ‘기후 유권자’의 마음을 잡기 위한 여야 경쟁도 치열하다. 기후 유권자는 최근 기후 변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생긴 용어다. 주로 기후·환경 의제를 중심으로 투표 선택을 고려하는 유권자를 뜻한다.
최근 환경단체 ‘기후정치바람’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전국 남녀 1만7000명은 ‘가장 심각한 사회적 도전 과제’로 인구 위기(58.3%)와 기후 위기(20.0%)를 꼽았다. 특히 이번 총선에 나온 기후 위기 공약이 마음에 들면 정치적 견해가 다른 정당 후보에게 투표를 고려하겠다는 응답이 60%를 넘기도 했다.
◇ 與, 기후대응기금 2배 확대… “원전·재생에너지 함께 가져가야 탄소 중립 달성”
거대 양당 중 먼저 기후 공약을 발표한 곳은 국민의힘이다. 핵심은 문재인 정부 때 만든 ‘기후대응기금’ 규모를 2조4000억원에서 오는 2027년까지 5조원으로 늘리고 차세대 소형모듈원전(SMR)과 관련한 기술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기후대응기금을 세율 조정 등을 통해 마련할 계획이다. 우선 교통·환경·에너지세 전입 비율 7%를 조정해 일반회계 전입금을 확대한다. 또 전력산업기반 기금·복권 기금 등에서 정부 출연 추가 재원을 확보한다.
확충한 재원은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산업 육성, 기술개발 등에 중점적으로 투자한다. 특히 기후대응 컨트롤 타워를 강화하기 위해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의 기능을 강화하고 제22대 국회에 기후 위기 특별위원회도 상설화할 예정이다.
또 국민의힘은 SMR 기술개발을 적극 추진하고 원전·풍력 등 무탄소 전원에 유리하게 전기요금체계도 개편하기로 했다. 무탄소 에너지 인증 체계 국제 표준화를 추진하고 무탄소 에너지 관련 사업·투자·연구에 대해 세제·재정·금융 지원도 실시한다. 특히 국민의힘은 기후테크산업을 육성해 지역 경제도 활성화하기로 했다. 지역 특성을 반영한 기후산업 분야를 발굴해 시범 프로젝트로 선정하고 지원해 지역 기반 ‘기후테크 유니콘 기업’을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수소 생태계를 구축해 수소경제 선도 국가로 도약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원전과 신·재생에너지를 균형 있게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린수소 해외투자 확대, 국내 청정수소 생산기지 등을 통해 오는 2030년까지 해외에서 연 100만톤(t), 국내에서 100만t을 확보한다. 여기에 석탄화력발전소 폐지 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도 제정해 충남·인천 등 화력발전소 지역을 세계 최대 청정수소 생산지로 전환할 방침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27일 기후 공약을 발표하면서 “(그동안 정치가 기후 대책에 대해) ‘북극곰이 어렵다는 건 알겠는데, 당장 우리가 표를 얻는 데 뭔 도움이 되겠냐’는 식으로 접근했다”며 “정치 권력은 사실 꼭 당장 먹거리를 위해서만 쓰여야 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재생에너지만으로는 탄소중립 달성이 어렵다. 국민의힘은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함께 가져갈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기후·환경 분야 인재도 영입했다. 총선 공약·정책에 보다 높은 시너지 효과를 주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국민의힘 기후·환경 분야 인재는 김소희 기후변화센터 사무총장을 포함해 심성훈 사회적 기업 패밀리파머스 대표, 임형준 농업 스타트업 네토그린 대표, 정혜림 SK경영경제연구소 특별연구원(리서치 펠로우) 등 4명이다.
◇ 민주당, 기후에너지부 신설·재생에너지 3배 확대 등 추진… 녹색정의당 ‘기후 휴업제’ 강조
민주당은 국민의힘에 뺏긴 기후 공약 주도권을 되찾아오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도 꾸준히 기후 위기 대응 정책을 준비해 왔다. 대표적인 정책이 ‘기후에너지부 신설’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 대선 때부터 강조했던 공약이다. 이와 관련, 이 대표는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어떻게 대비하느냐에 따라 우리들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민주당은 제11차 전력수급 기본계획 수립 시 재생에너지를 3배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20일 기후 위기 대응 과제와 관련해 “기존 전력수급 기본계획보다 재생에너지를 3배 이상 확대해야 한다”며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용량은 2023년 대비 3배가 되는 최소 8만9206메가와트(MW)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은 ‘1호 영입 인재’로 기후·환경 전문가인 박지혜 변호사를 데려왔다. 1호 영입 인재는 이번 총선에서 당이 집중하고자 하는 정책과 연관이 깊은 만큼, 기후 위기 의제가 민주당에서 중요한 의제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다만 대대적인 기후 공약 발표는 아직 하지 못한 상황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번 국민의힘 기후 공약 발표로, 그간 우리 당이 노력해 왔던 기후·환경 정책적 제안과 방향성에서 주도권이 넘어간 분위기”라며 “2월 초쯤 발표할 계획으로 기후 공약도 총선 공약 시리즈로 계속 준비하고 있었다. 지금 공천으로 인해 당 분위기가 그리 좋지 않아 보류한 상황이지만, 공천 사태가 어느 정도 일단락되면 바로 기후 공약도 국민들에게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총선을 앞두고 정의당과 녹색당이 출범한 선거연합 정당인 녹색정의당은 기후 위기 대응 공약으로 ‘폭염기 2주간 전국 기후 휴업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기후 휴업제는 폭염이 예상되는 시기인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 사이 약 2주 정도 일정 규모 이상의 모든 기업이 일을 멈추는 것을 말한다. 안전 등 시민 생활에 중요한 업종은 예외로 하되, 기업 활동을 통한 탄소배출을 감소하기 위한 정책을 제시한 것이다.
이외에 녹색정의당은 ▲핵·석탄 발전소 가동 중단 ▲오는 2050년까지 탄소 중립 실현 ▲국내총생산(GDP) 대신 지속 가능한 전환 지표 적용 등을 기후 위기 대응 정책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녹색정의당은 기후 선거를 주도할 ‘기후 후보’로 대기과학자인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을 영입했다.
◇ 전문가들 “기후 공약의 총선 의제 부상은 긍정적… 관건은 실현 여부”
전문가들은 이번 총선 의제로 여야 모두 기후 공약을 낸 것에 대해 그간 놓쳤던 기후 위기·환경 이슈를 정책 무대로 끌고 왔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선거를 목전에 두고 표심만 쫓는 게 아닌지 확인하고 지속적인 정책 실현까지 가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준한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기후 변화가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중요한 의제라는 판단을 모든 정당이 한 결과”라며 “중도층 표가 가장 많으니 이들 표심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을 세운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소장은 “기후 위기 대응은 경제·사회·산업·일자리·불평등·삶의 질 등 모든 영역과 연결된 만큼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의제다. 이번 총선에서 그 의제에 대해 각 정당이 입장을 밝히고 토론·논의하는 판이 열린 건 유권자에게도 긍정적인 신호”라면서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각 정당에서 내놓은 기후 위기 해결책이나 대책이 지속 가능한 건지,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등도 계속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는 환경단체 ‘기후정치바람’이 지난해 12월 1일부터 같은 달 27일까지 전국 17개 시도 1만7000명을 대상으로 기후위기 국민 인식조사(전국 여론조사)를 한 결과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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