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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수술을 안 하면 큰일 나는 환자들은 밤을 새서라도 해결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수술 등 신속한 처치를 받지 않으면 사망 위험이 커지는, 소위 그레이존(grey zone)에 있는 환자들입니다. ”
서울시내 한 상급종합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28일 “관상동맥(심장근육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막혀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전공의 이탈로) 시국이 어수선하다며 입원을 미뤘던 환자가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고개를 떨궜다.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의과대학 증원에 반발해 전공의 근무지 이탈 등 집단행동이 벌어진 지 9일째에 접어들면서 제때 진료나 수술을 받지 못한 환자들의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지난 19일부터 전일(27일) 오후 6시까지 보건복지부의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 접수된 피해신고는 304건이나 된다. 하루 사이 26건이 늘었는데, 수술 지연이 21건으로 대부분이었다. 현장 의료진들은 “심장 등의 문제로 수술을 대기하던 중 사망한 환자 소식도 각 병원에서 들려온다”고 귀띔했다. 전공의 이탈을 환자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라 단정 지을 순 없으나 진료현장의 혼란이 장기화할수록 그 피해가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는 게 의료계 안팎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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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남아 전공의들의 빈 자리를 메우고 있는 의료진의 피로는 쌓여가고 있다. 조용수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전일(27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님, 부디 이 사태를 좀 끝내주십시오. 대체 뭣 땀시(때문에) 이렇게 질질 끄는지 모르겠다”며 “응급의학 전공하고 대학병원에 취직한게 죄는 아니지 않나. 코로나19 때부터 나라에 뭔 일만 생기면 제 몸이 갈려나간다. 다 잡아다 감옥에 처넣든지, 그냥 너희 맘대로 하라고 손을 털든지, 어느 쪽이든 좋으니 평소처럼 화끈하게 질러주시면 안 되겠는가”라고 호소했다. 조 교수는 지난 21일에도 SNS에 “현실엔 병들고 아픈 사람들이 많다. 당장 치료받지 못하면 곤란한 환자들이 많다는 걸 유념해달란 얘기다. 싸움이 길어져서 좋을 게 없다”고 적었다. 비단 응급의학과만의 문제는 아니다. 서울시내 한 상급종합병원 신경과 교수는 “진료공백으로 환자에게 문제가 생겨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긴장감이 한껏 높아진 가운데 남은 인력들이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처지”라며 “환자 곁을 차마 떠나지 못해 몸을 갈아넣고 있는 의사들마저 밥그릇 지키기에 혈안이 된 ‘의새’(의사 지칭 비속어) 취급을 받는 현실이 씁쓸할 따름”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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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달 29일을 전공의 복귀 마지노선으로 정하고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보건복지부 의사집단행동중앙사고수습본부는 전국 수련병원들에 공문을 보내 29일까지 전공의들의 수련 변동내역을 입력해 달라고 요청했다. 의료법상 전문의 수련 및 인정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수련 기간 중 근무지 이탈, 무단 결근 등으로 정당한 사유 없이 수련하지 못한 공백기간이 30일을 초과할 경우 추가 수련을 해야 한다. 복지부의 99개 수련병원(자료 부실 1곳 제외) 점검 결과 사직서 제출자는 소속 전공의의 약 80.8% 수준인 9937명, 근무지 이탈자는 약 73.1%인 8992명이었다. 이들이 낸 사직서가 모두 수리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는 만큼, 근무지 이탈에 해당하기 때문에 연가를 포함해 공백 기간 30일이 넘으면 추가 수련의 대상이 된다. 정부가 정한 시한을 넘기면 차후 병원으로 복귀해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전문의 시험에 합격해도 그 해 3월부터 일정 기간 추가 수련을 받아야 이듬해 전문의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는 얘기다.
복지부는 이날 오전부터 수련병원 전공의 대표자 등의 집에 직접 찾아가 업무개시명령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우편이나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등으로 전공의들에게 현장에 돌아올 것을 명령했으나 마지막으로 ‘송달 효력’을 확실히 함으로써 사법 절차를 위한 준비를 마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을 경우 복지부가 이들 수련병원 전공의 대표들을 중심으로 ‘면허정지’ 등 행정처분과 사법당국 고발 등의 조처를 할 공산이 높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김택우 위원장과 주수호 언론홍보위원장, 박명하 조직강화위원장을 비롯해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 노환규 전 의협 회장 등 의협 전현직 간부 5명은 지난 28일 의료법 59조와 88조에 따른 업무개시명령 위반, 형법상 업무방해, 교사·방조 등의 혐의로 고발돼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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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마지노선 제시와 전방위적인 압박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병원들은 아직 전공의들의 복귀를 체감하기 어렵다. 서울 건국대병원 소속 전공의 12명이 지난 26일 복귀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소위 ‘빅5’로 불리는 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서울성모병원·삼성서울병원·세브란스병원 등에서도 전공의들의 뚜렷한 복귀 움직임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정부가 각 수련병원에 수련 변동내역 입력 시한으로 제시한 29일이 돼서야 전공의들이 어느 정도 복귀했는지 파악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주요 의과대학을 포함해 수련병원 교수들은 전공의, 의대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 간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던 정진행 서울의대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6일 서울의대와 서울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 보라매병원 교수 및 전공의들과 긴급 회동을 가졌으나 돌연 사퇴했다. 정부의 협상 의지를 없음을 확인하고 그에 대한 항의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비대위원장을 내려놓는 대신, 헌법 소원 제기 등 법적 대응을 추진하는 동시에 진료교수 및 전공의들과 물밑으로 접촉하며 대응책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대 의대 교수의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의 소송을 부추기는 언행과 경찰청장의 전공의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발언 등을 당장 중단하라”며 “전공의와 교수단체를 포함한 의료계와 의대 증원 문제를 원점에서 재논의하라”고 촉구했다.
정부가 최후통첩을 날린 만큼 의료계 안팎에서는 대다수 전공의들이 복귀 마지노선인 29일까지 눈치를 보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의료계에서는 실제 현장에 복귀하는 전공의들이 많지 않을 것이란 회의론도 적지 않다. 업무복귀명령부터 진료유지명령, 출국금지, 법정최고형, 경찰의 감시 등 정부가 전공의들의 복귀를 종용하는 과정에서 취한 강압적인 조치들이 되려 젊은 의사들의 반감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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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병원을 떠난 전공의 중 상당수는 수련을 포기하고 일반의 자격으로 미용성형 시술 등을 주로 하는 개원가에 취직하거나 이민 등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의사면허시험(USMLE)과 일본 의사면허시험(JMLE) 준비 서적이 품귀 현상이 일어나고, USMLE 준비 사이트가 접속 폭주로 다운됐을 정도다. 대한내과학회 수련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대중 아주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젊은 의사들이 내과를 기피해 입시를 3번이나 하면서 겨우 1년차 전공의 649명을 뽑았는데 (의대 증원 추진으로) 얼마나 들어올지 기약할 수 없게 됐다. 힘들게 2년 과정을 마친 전공의도 다 사직서를 쓰고 나가버린 데다 올해 인턴을 뽑지 못하면 내년 1년차를 또 못 뽑는 악순환이 벌어질 것이 자명하다”며 “몇년이 지나야 이런 도미노 상황이 수습될지 예측하기도 어렵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공의들의 공백을 메우고 있는 전임의들마저 재계약 시점인 3월 이후 이탈할 기류를 보이고 의대 졸업생들마저 인턴 임용을 포기해 의료대란이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빅5 병원 관계자는 “전공의 과정을 마친 신규 전임의들이 3월 1일자로 신규 임용을 앞두고 있다. 3월부터 전임의의 과반수를 신규 임용으로 채울 예정이었는데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이야기가 들려 긴장하고 있다”며 “전공의에 이어 전임의들마저 떠나면 그야말로 손쓸 도리가 없어 애만 태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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