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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 Biz] 34년 만의 증시 신고가ㆍTSMC 공장 준공…日경제, ‘쇼와의 저주’ 풀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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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닛케이225 지수가 사상 최고가를 경신한 것을 보여주는 전광판사진AP연합뉴스
지난 26일 닛케이225 지수가 사상 최고가를 경신한 것을 보여주는 전광판[사진=AP·연합뉴스]

지난 24일, 일본의 한 유명 스키장에 1990년대 일본 가요계를 풍미한 히로세 코미의 히트곡 ‘로맨스의 신(ロマンスの神様)’이 다시금 울려 퍼졌다. 버블 경제 시절, 일본 국민의 윤택한 삶을 반영하듯 겨울이면 스키장이 인산인해를 이뤘고 이 노래가 장내에 깔리며 흥을 돋구곤 했다. 닛케이225 평균주가(닛케이지수) 사상 최고치 경신 직후 울려 퍼진 ‘로맨스의 신’은 마치 ‘잃어버린 30년’에서 탈출한 일본 경제에 대한 이른 축가처럼 들렸다.

22일, 일본 닛케이지수가 사상 최고치(3만 8915)를 34년 2개월 만에 경신한 3만 9098로 마감하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금 일본 경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자평했다. 

1980년대 말 버블 절정기, 자동차와 가전 등 일본 제조업이 세계 시장을 석권하던 시절, 미국의 경제학도들은 일본의 성공 사례를 ‘일본형 경영’이라 부르며 교재로 삼았다. 이미 1979년에는 미국 사회학자 ‘에즈라 보겔’의 저서 ‘재팬 에즈 넘버원(Japan as Number One, 세계 제일 일본)’이 불티나게 팔리며 전 세계적으로 ‘일본 배우기’ 열풍이 불었다.

하지만 모래성과도 같던 일본 경제는 주가가 최고가를 찍었던 1989년부터 하염없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연호가 ‘쇼와(昭和)’에서 ‘헤이세이(平成)’로 바뀐 직후인 1990년부터 일본 경제는 길고 어두운 터널 안에 갇혀왔다.

이로부터 34년. ‘헤이세이’에서 ‘레이와(令和)’로 시대가 바뀌었고, 주가는 ‘쇼와의 저주’에서 드디어 벗어났다. 버블 붕괴 시작 무렵부터 일본에서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모건스탠리 MUFG 증권의 로버트 펠드먼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22일, “지금의 주가는 일본 기업의 실력에 걸맞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증시뿐만이 아니다. 지난 24일에는 구마모토현 기쿠요마치에서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인 대만 TSMC가 약 86억 달러(약 11조 4600억원)를 투자한 반도체 제1공장 개소식이 열렸다. 일본 정부는 경제 안보에 있어 중요한 반도체 산업의 부활을 위해 TSMC 공장 유치를 국책 사업으로 정하고, 총 설비투자액 약 1조엔(약 9조원) 가운데 절반가량인 4760억엔을 보조했다.

TSMC는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연내 구마모토 제2공장도 착공할 예정이다. 제2공장 역시 정부가 최대 7320억엔(약 6조 5000억원)을 보조금으로 지급한다는 계획이다. 제1공장의 보조금을 더하면 모두 1조 2000억엔(약 10조 6208억원)의 막대한 자금이다.

일본 언론들은 구마모토에 진출한 TSMC 공장을 ‘레이와의 구로후네(黑船・흑선)’라 칭하며 환영과 경계의 시선을 동시에 보내고 있다. 구로후네는 일본이 서구에 문호를 개방하게 된 계기가 된 1853년 미국 매슈 페리 제독의 함선이다.

환영의 시선은 1980년대 반도체 분야에서 최강을 자랑하던 일본의 위상이 부활할 것이라는 전망에서 비롯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TSMC 진출이 기폭제가 되어 일본 내 반도체 공장의 신설 및 증설이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단 반도체 생산 거점으로 자리 잡게 되면 구마모토현은 물론 규슈 지역 전체에 파급하게 될 경제 효과도 상당하다.

반면 관련 기업의 잇따른 진출로 구마모토 공장 주변은 현재 땅값이 급등해 ‘반도체 버블’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들썩이고 있어 부지 및 일손 부족이 문제가 되고 있다. 지역 영세 기업들에겐 고사 위기가 될 수도 있다.

한편 일본은 최근 뒤처진 인공지능(AI) 분야에서도 쇄신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일본은 디지털 전환(DX)을 주요 국가 과제로 내세울 만큼 산업 전반에서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이 널리 통용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정부 및 민간 분야에서 챗 GPT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등 산업 영역에서 AI를 활용하려는 모습이 눈에 띈다. 일본 정부 역시 AI 활용 기업에 대해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 경제는 정말 ‘쇼와의 저주’에서 탈출해 ‘잃어버린 30년’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이미 한 차례 ‘버블 붕괴’의 쓴맛을 경험한 만큼 신중한 시각이 대세이지만, 34년간 일본 기업 및 경제가 크게 변화해 온 것을 인정하고 현 상황을 일본 경제 도약의 발판으로 삼고자 하는 분위기도 강하다.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는 것이 ‘임금 인상’과 ‘금리 인상’이다. 매년 봄 실시되는 노사 임금협상인 ‘춘투(春闘)’에서 얼마나 큰 폭의 임금 상승이 이뤄질지가 관건이다. 일단 2년 연속 큰 폭의 인상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도 마이너스 금리 해제를 가시권에 두고 있다. ‘제로 금리’에서 금리가 ‘있는’ 세계로 진입하게 되면, 그간 제로 금리의 그늘 아래 살아남았던 기업들의 존속은 어려워진다. 기업 체질 개선의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일본 경제의 만성적인 문제로 지적되는 일손 부족도 기업 효율화를 촉진시키는 채찍질로 생각한다면 반전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산업의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만들고, 성장 분야로의 인재 이동을 추진하는 등 경제 전반의 자원 배분을 전환할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아주경제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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