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제조업체 애플이 10년 동안 공들여왔던 전기차 애플카를 포기하기로 한 것은 아무리 빅테크(거대 기술기업)라도 전기차 시장 진입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27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애플이 애플카 개발을 포기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애플은 이날 이같이 결정했으며 애플카를 개발하는 \’스페셜 프로젝트 그룹\’에 속한 약 2000명의 직원들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을 비롯한 다른 부서로 전환될 예정이다.
애플의 이런 발표가 예견된 일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애플은 2014년부터 \’프로젝트 타이탄\’이란 이름으로 자율주행 전기차의 개발을 추진해왔지만 개발에 뚜렷한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블룸버그는 애플이 애플카 시제품 단계에 진입조차 하지 못했다고 지난달 지적했다.
그 결과 애플카 출시일이 두 차례 밀리고 성능 또한 최고 수준의 자율주행인 \’레벨 5\’에서 운전자가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레벨 2+\’ 단계로 낮아졌다.
애플카 프로젝트의 핵심 인력들도 대거 회사를 떠났다. 이 프로젝트를 이끌던 더그 필드 책임자가 2021년 9월 퇴사해 포드자동차로 옮겼고, 지난달에는 애플카 개발에 관여해 DJ 노보트니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부사장이 퇴사했다.
이에 애플은 기대치를 확 낮춘 전기차를 출시하거나 프로젝트를 아예 중단하는 결정을 내리는 단계까지 왔다고 블룸버그는 지난달 밝혔는데, 결국엔 애플카 개발 계획이 폐기됐다.
전문가들은 자동차 산업 진입에 대한 난이도를 애플이 과소평가했다고 지적한다. 컨설팅 업체 글로벌데이터의 제프 슈스터 자동차 리서치 부회장은 “애플은 \’우리는 스마트폰을 제조하며 관련 기술력도 충분히 보유하고 있어 어려울 게 뭐가 있겠냐\’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10번 중 9번은 테크 업체들이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더 도전적이고 역동적이고 복잡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급성장했던 전기차 시장이 최근에 위축되고 있는 점도 이같은 결정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가 여전히 비싸다는 소비자들의 인식과 충전 인프라가 부족한 점이 전기차 대중화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애플카 가격은 약 10만 달러로 책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블룸버그 인텔리전스는 올해 미국 전기차 판매량이 고작 9%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3년간 연평균 65%씩 성장해왔던 것과 대조적이다.
업황 둔화에 전기차 업체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때 \’제2의 테슬라\’로 주목받던 리비안은 지난 21일 올해 전기차 생산량 전망치를 5만7000대로 제시해 8만대 이상 생산을 기대했던 시장은 실망감을 나타냈다. 리비안은 또 인력 10%를 감축하겠다는 소식도 발표하자 주가는 21일 당일에만 최대 26% 급락해 2021년 상장 이후 최대 낙폭을 보였다.
또 다른 테슬라 대항마로 주목받던 루시드도 올해 전기차 생산량 목표치를 지난해 대비 소폭 늘어난 9000대로 제시했다. 루시드 주가는 지난 한주에만 19% 가까이 급락했다.
미국 대형 렌터카업체는 자사가 보유하고 있는 전기차 2만대를 매각할 계획이라고 지난달 밝혔고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는 전기차 목표를 축소하고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2030년까지 전기차만 판매하겠다는 계획을 철회했다.
테슬라도 올해 성장률이 “눈에 띄게 낮아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애플의 자진 포기로 테슬라가 반사이익을 누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불확실한 전기차 시장에 610억 달러의 현금을 보유한 애플이 스스로 시장 탈출을 택한 것은 테슬라에겐 주요 경쟁자가 사라졌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애플카 개발 포기로 실직하는 인재들도 새로 영입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수차례 가격할인에 나선 테슬라는 첨단기술을 상징하는 애플과 같은 빅테크가 전기차 시장에 진출해 경쟁하는 것을 우려해왔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의 마이크 램지 애널리스트는 “그들(자동차 제조업체)은 아마도 안도하고 있을 것”이라며 “애플은 시장 진입 초기에 업계를 놀라게 했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테슬라는 전기차 기술을 상징한다는 면에서 큰 수혜를 받고 있다”며 “애플카도 이와 같은 인식을 가질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를 반영하듯,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자신의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경례하는 것과 담배를 상징하는 이모티콘을 게시하면서 애플의 철수 소식을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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