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중기 탈북자 연기 눈길…이방인의 삶·멜로 그린 영화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내년 2월이요? 기카면 그때까지 어카고 지냅니까.”
벨기에 정부에 난민 지위 신청을 한 남자 기완(송중기 분)이 다음 면접은 몇 달 후라는 통역사의 말을 듣자 놀라 묻는다.
“잘 버티셔야죠.”
통역사는 뭘 그런 당연한 걸 묻느냐는 말투로 답한다.
김희진 감독이 연출한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의 주인공 기완은 이때부터 말 그대로 풍찬노숙을 시작한다.
누군가 먹다 버린 빵을 먹고 공병을 주워 팔다가 늦은 밤에는 공공화장실에 지친 몸을 뉜다. 거리에서 백인 남자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탈북자인 그는 어머니와 중국에 머무르다 공안에게 잡히기 직전 벨기에로 도망쳤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어머니의 시신을 병원에 판 돈으로 비용을 마련했다. 어머니의 유언은 “살라”였다.
기완은 어머니의 마지막 당부를 지키기 위해 기를 쓰고 살려 한다. 그러나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가난한 이방인으로 살아가기란 힘겹기 그지없다.
생존하기도 벅찬 상황에서도 사랑은 싹튼다. 기완이 자기 지갑을 훔친 한국 이민자 마리(최성은)를 만나게 되면서다.
마리 역시 몇 년 전 어머니를 여읜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하지만 기완과는 반대로 그는 삶을 일부러 망가트리면서 스스로 형벌을 내린다. 마약에 손을 대고 불법 사격 도박장을 기웃거리며 돈을 번다.
기완은 닮은 듯 다른 마리에게 본능적으로 끌린다. 마리도 자신과는 달리 살고자 하는 의지로 가득한 기완에게 호기심이 생긴다.
낯선 땅에 떨어진 난민의 고된 삶, 생명관이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영화의 두 축을 이룬다.
기완이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탈북자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지난한 여정과 마리와 사랑을 키워나가는 과정이 동시에 담겼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이들의 사랑은 내내 위태롭게 그려진다.
기완은 벨기에에 남지 못하면 북한으로 강제 추방당해야 하고, 마리는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
영화는 신동엽문학상 수상작이자 한국문학가협회 ‘우리 시대의 소설 50편’에 선정된 조해진의 장편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를 뼈대로 했다.
소설의 설정을 다수 차용했지만, 탈북자의 운명과 연대를 차분하고 세심하게 그려낸 원작에 비해 영화는 멜로에 더 공을 들인 듯하다.
이 때문에 기완 개인의 삶도, 기완과 마리의 사랑도 어정쩡하게 담긴 듯한 느낌을 줘 아쉬움을 남긴다.
그동안 장르 영화에 치중했던 넷플릭스가 ‘로기완’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배우진의 연기 역시 흠잡을 구석이 거의 없다. 꾀죄죄한 탈북자로 변신한 송중기를 비롯해 불안정한 청춘을 지나는 마리 역의 최성은, 북한 말투와 미묘하게 다른 중국동포 억양을 완벽하게 소화한 이상희까지 각자의 캐릭터를 맞춤한 듯 표현했다.
3월 1일 넷플릭스 공개. 131분.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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