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라는 정부 의지를 담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베일을 벗었다. 하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다. 실망 매물이 쏟아지며 주가가 급락하는 등 시장 충격이 크다.
밸류업 프로그램 대표적 수혜주로 꼽혔던 금융지주(은행주)들도 다르지 않다. 특히 금융지주 입장에선 밸류업 프로그램 큰 틀이 공개됐지만 새롭게 적용할 내용이 없다는 점에서 마땅한 대응책 마련도 쉽지 않다.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상반기까지 금융지주 밸류업을 둘러싼 불확실성만 가득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금융지주 적용할 내용이 없다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을 보면 기업가치 제고 계획 수립·이행·소통에 초점을 맞췄다. 기업 자체적으로 기업가치를 평가·분석해 장기적 관점에서 가치 제고를 위한 계획을 수립해 공시·이행하는 것이 골자다.
이 과정에서 기업가치를 올리고 기업이익의 주주환원을 유도하기 위해 기업 밸류업 표창과 모범납세자 선정 우대 등 세제 지원, 코리아 밸류업 지수 편입 우대 등이 혜택으로 제시됐다.
이와 함께 분기별로 주요 투자지표인 PBR(주가순자산비율)과 PER(주가이익비율), ROE(자기자본이익률) 등도 공시토록 해 비교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관련기사: ‘기업 밸류업’ 상장사 자율에 맡긴다…인센티브로 참여 유도(2월26일)
자본 대비 주가가 0.5배 수준에 그치는 대표적 저PBR주로 꼽히는 금융지주들은 이번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새롭게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 전무하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큰 실망감으로 다가오는 상황이다.
금융지주 입장에선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려면 신사업 확장이 필수다. 디지털 금융 전환을 통해 최근 AI(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분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지만 금융 틀 안에서 벗어난 사업은 규제로 인해 사실 상 불가능하다.
금융위가 강조한 주주환원도 다르지 않다. 금융지주들은 지난 2~3년간 급증한 이자이익을 바탕으로 실적 성장을 이어오며 주주환원정책도 강화했다. 현금 배당을 확대하고 자사주 매입·소각 등도 시행했다. 이를 통해 상장 금융지주들의 주주환원율은 전년보다 모두 상승했다.
투자지표 공개 역시 상장 금융지주들은 매 분기 실적 발표 시 해당 지표를 공개하고 있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새로운 내용이 전혀 없어 대응할 수 있는 것도 전무한 상황”이라며 “기존에 해오던 주주환원 정책 강화를 지속할 뿐”이라고 말했다.
미뤄진 밑그림…불확실성에 오히려 역효과?
이번 방안을 두고 금융지주 뿐 아니라 금융투자업계 전반에선 알맹이가 없다는 점에서 실망을 쏟아내고 있다.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 후 코스피 지수는 물론 금융지주들의 주가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 ▷관련기사: ‘킬러 콘텐츠 없었다’…밸류업에 ‘업’됐던 은행주 ‘와르르'(2월26일)
일각에선 5월 2차 세미나를 거쳐 최종 방안을 상반기 내 확정하겠다는 계획을 두고 총선을 의식한 결과일 수 있다는 의심의 눈초리도 보내고 있다.
금융위가 제시한 큰 틀을 보면 구체안이 나오더라도 시장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크고, 이에 따른 주가 하락이 불가피해 최종 구체안 발표 시점을 총선 이후로 미뤘다는 것이다.
금융권도 밸류업 프로그램에 회의적인 게 사실이다. 대표적인 ‘저PBR주’로 꼽히면서 시장 관심을 끌었지만 밸류업 프로그램이 모습을 드러낸 후 오히려 역효과만 커지고 있다.
또 다른 금융지주 관계자는 “세부적인 준비사항은 최종 가이드라인이 나와야 준비할 수 있어 현재로서는 애매한 상황”이라며 “이번 밸류업 프로그램은 주주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주가가 요동치겠지만 회사 차원에선 대응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토로했다.
권흥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밸류업 프로그램이 주주환원 정책에 전향적인 태도라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금융지주들은 이미 주주환원에 상당히 신경쓰고 있다”며 “금융당국이 손실흡수능력 확충 등 자본 적정성을 강조하고 있어 정책이 상충한다는 점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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