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의 대거 이탈로 의료 현장에서 혼란이 빚어지는 가운데 환자 피해와 남은 의료진들의 번아웃(극도의 피로와 의욕 상실)이 심화하고 있다.
정부가 전공의들이 현장에 복귀하지 않을 경우 3월부터는 면허 정지, 수사·기소 등 처분에 나서겠다고 밝혀, 남은 기간 의료계와의 극적 대화가 급물살을 탈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2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주요 100개 수련병원을 서면 점검한 결과 23일 오후 7시 기준 소속 전공의의 80.5%인 1만34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아직 사직서는 수리되지 않은 가운데 소속 전공의의 약 72.3%인 9006명이 근무지를 이탈했다.
전공의 집단사직에 따른 ‘의료대란’이 전날까지 일주일째 이어지면서 환자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심지어 병원을 돌고 돌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은 ‘뺑뺑이 사망’ 사례도 나왔다.
대전에서 지난 23일 정오께 의식 장애를 겪던 80대 심정지 환자는 구급차에 실려 갔으나, 전화로 진료 가능한 응급실을 확인하다 53분 만에야 대전의 한 대학병원(3차 의료기관)에 도착해 사망 판정을 받았다.
이 환자는 병상 없음, 전문의·의료진 부재, 중환자 진료 불가 등 사유로 병원 7곳에서 수용 불가를 통보받았다. 그가 최종 사망 판정을 받은 병원은 처음에 수용 불가 의견을 내놓은 곳이었다.
대형병원인데도 암 환자가 장시간 응급실에 대기하며 고통을 겪는 사례도 나왔다.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한 암 환자의 보호자는 “췌장암 말기인 친형이 열이 40도가 넘는 등 상태가 심각해 응급실에 왔는데, 응급실에서만 7~8시간을 대기했고 암 병동에 입원하는데도 꼬박 하루가 걸렸다”고 속상해했다.
환자들의 불편 사례가 쌓여가는 만큼 현장에 남은 의료진의 체력 역시 한계에 다다른 상태다.
전남대병원의 경우 일부 중환자실 전문의들이 피로감에 ‘번아웃’을 호소해, 이탈 전공의 일부가 복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의료 현장에서의 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부는 ‘2월 29일까지 미복귀 시 처벌’ 방침을 명확히 밝히는 한편 의료계에 대화에 나설 것을 요청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전날 브리핑에서 “대화의 준비는 충분히 돼 있다”며 “의료계에서는 전체 의견을 모을 수 있는 대표성 있는 구성원을 제안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는 의료현안협의체의 대화 상대였던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집단 사직에 나선 전공의에 이어 대학교수들이 목소리를 내는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다.
앞서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는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꾸리고 ‘중재’ 역할을 자처해 복지부와 만났다.
복지부는 “의대 정원을 포함한 모든 의제를 두고 대화할 수 있다. 증원 규모에 대한 입장은 변함없고, 증원에 대해 충분히 설명·설득하겠다”며 “의료계에서도 대표성 있는 대화 창구를 만들어달라”고 강조했다.
다만 의협이 정부와의 협상 가능성에 대해 ‘원점 재검토’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점은 협상의 ‘물길’을 좁히고 있다.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전날 “정부가 의협 비대위는 일부 의사의 단체인 것처럼 장난질을 치고 있다”며 “교수협의회 비대위원장은 우리와 뜻을 같이한다고 밝혔고, 의대생도 그랬다. 전공의협의회 회장은 우리 비대위 위원”이라고 대표성이 의협에 있음을 강조했다.
더욱이 정부가 3월부터는 업무 미복귀자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최소 3개월의 면허정지 처분과 관련 사법절차를 진행하기로 한 점도 오히려 전공의들의 현장 복귀를 막는다는 평가도 있다.
류옥하다 전 가톨링중앙의료원(CMC) 인턴 비대위원장은 연합뉴스에 “정부가 칼을 든 손을 등에 숨긴 채 돌아오라고 하면 누가 돌아가겠나”며 “전공의에 대한 반헌법적이고 모멸감을 주는 행위를 즉시 중단하지 않으면 저와 제 동료들은 아무도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의 대화 창구에 대해서도 “모든 정책을 백지화하고 사과 먼저 해야 한다”며 “이후에 환자와 보호자, 전공의, 전문가, 교수 의견을 취합해 창구를 만들어주면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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