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대한축구협회는 대중들에게 투명하지 못한 조직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는 축구협회를 최고의 스포츠 행정 조직으로 여기고 치열한 경쟁을 통해 들어왔던 엘리트 직원들의 퇴사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퇴사 후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전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축구협회 조직 자체는 국내 최고의 스포츠 단체라 해도 손색없다는 평가다. 조직 자체가 잘 갖춰져 있고 국제축구연맹(FIFA), 아시아 축구연맹(AFC) 등 국제기구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현재와 미래를 능동적으로 대비 가능하다.
하지만, ‘대표팀’이라는 주제에서는 모든 신뢰를 잃는 경향이 있다. 특히 정몽규 회장이 결정하지 않으면 실무자들이 아무 대답도 못 하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사단법인’ 정몽규 회장 체제 대한축구협회는 어디로 향하고 있나
익명을 원한, 축구협회에서 재직했던 A씨는 “분명 과거의 축구협회는 정책 결정하는 과정에서 일선 직원이 말하면 고위층이 듣는 시늉이라도 했다. 그렇지만, 현재는 눈치를 보거나 거짓말로 회장을 속이는 일들이 있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이상해졌다”라며 한탄했다.
전임 집행부에 몸담았던 B씨는 “왜 정 회장 옆에 쓴소리나 직언하는 인물이 보이지 않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정 회장이 모든 사안을 조금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바로 잡아주거나 참고가 될 말을 해야 하지 않나 싶지만, 그런 것이 보이지 않는다”라며 싫은 말도 듣는 자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경질 후 새로운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축구대표팀 전력강화위원회 역시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정해성 위원장을 외부에 소식을 알리는 단일 창구로 하겠다고 하면서 윤곽이 나오기 전까지는 외부에 비공개로 회의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곧장 ‘밀실 행정’으로 비판받았다. 흥미로운 점은 파울루 벤투 전 감독 선임 당시에도 홍명보 전 전무-김판곤 국가대표 전 전력강화위원장이 보안을 지키면서 감독 선임 과정을 이어갔다는 점이다. 향후 김 전 위원장이 상세하게 브리핑하면서 일단은 의심이 해소가 됐다.
같은 비밀주의였지만, 어느 정도 결과가 도출되면 언론 간담회 등을 하겠다고 공지를 한 축구협회에는 비판이 쏟아졌다. 전력강화위에 대한 의심이 커지는 것은 그만큼 외부 여론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는 것과 같다. 눈치를 보면서 방향을 돌렸다는 비판이 따르는 이유다.
이런 축구협회에 문화체육관광부가 관리하는 국민체육진흥기금이라는 정부 지원금을 받으니 공공 기관에 준하는 책임을 더 강하게 져야 한다는 논리도 나오고 있다. 2021년 기준 체육진흥기금(108억 원)과 토토 수익금(225억 원)을 합치면 올해 예산 1,871억 원의 18% 수준이다.
축구협회는 사단법인이다. 정부 기관이 아니라는 점에서 자유로운 정책 결정이 가능하지만, 축구팬과 국민들은 점점 축구협회에 대한 인내심이 폭발 일보 직전이다. 감독 결정 과정에 K리그 감독 빼가기 논란에 시위 차량이 등장하는 등 강한 반대 여론을 마주했다.
책임 있게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의무는 아니지만, 공공 기관에 준하는 사무관리규정을 바로 세워 움직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공식적인 회의에는 반드시 ‘회의록’을 남겨 발언자의 책임, 윤리의식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밀실 행정’ 듣기 싫으면 회의록 남겨 놓고 자발 공개, 어렵다면 연한 정해 놓아야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공공기록물법’이다. 공공기록물법 제3조에는 공공 기관을 두고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관’으로 정의한다. 기록물에 대해서는 ‘ 공공기관이 업무와 관련하여 생산하거나 접수한 문서, 도서, 대장, 카드, 도면, 시청각물, 전자문서 등 모든 형태의 기록정보 자료와 행정박물(行政博物)’로 명시했다.
정부 기관은 모든 행사, 회의 등의 발언을 기록물도 남겨 놓는다. 기록관리사가 이를 최종 정리한다. 하다못해 완전 공개하기 어려운 자료라면 발언 인사의 이름을 가리고 특정 인물을 언급하는 것 역시 빼놓고서라도 공개해 대략적인 상황을 유추하게 한다.
이를테면 “OOO 위원: OOO 감독의 국제적 감각이 대표팀을 이끌어 가는 것에 도움이 될 수 있다”, “OOO 위원: OOO 감독은 팀을 오랫동안 지휘하지 않아 부적합하다”라는 식으로라도 알리는 것이다. 발언을 통해 회의가 자유롭게 의견 개진이 됐는지 또는 수직적이었는지 해석할 수 있다. 사학재단 이사회 회의록 등에서 보이는 형식이다.
물론 축구협회는 공공기록물법에 해당하지 않는 사단 법인이다. 남길 의무도 없다. 불리하다 판단되면 굳이 공개할 필요도 없다. 귀담아듣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투명성 확보를 위해서 임원 회의, 전력강화위 등의 회의 기록을 문서와 영상으로 남길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밀실 행정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완벽하게는 공개하지 못해도 보존 연한을 정해 놓고 이슈가 지나간 한참 뒤에라도 어떤 결정 과정을 알릴 필요가 있어 보인다.
시도민구단 대표를 역임했던 한 축구인은 “시도민구단은 구단주가 지자체장이라 회의 기록을 확실하게 남겨 놓는다. 정부 기관을 만나서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발언 자체가 조심스러우면서도 사실만을 전달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긴다”라고 설명했다.
시도민구단 상당수는 재단법인이다. 지자체에서 예산 지원을 ‘출연금’ 형태로 조례로 정해 놓아 개입을 편하게 해놓았다. 의회 등에 예산 지원을 더 해달라고 공개적으로 부탁하고 이는 영상 기록물이나 회의록에 그대로 남는다. 비교적 자유로운 사단법인과는 차이가 있는 셈이다.
최근에는 영상 기록물이 대세지만, 축구협회 사무규정은 모두 문서 기반이다. 내부 결재 체계에만 신경 썼을 뿐이다. 2018년 이후 바뀌지 않았다. 한 정부 부처에 재직 중인 기록연구사 C씨는 “축구협회가 공공 기관이 아닌 사단법인인 것은 맞지만, 국가를 대표하는 기관이라면 기록에 대한 인식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대충 넘기려면 단체 명칭에서 ‘대한’을 빼던지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을 빼는 것이 낫다. 공공의 성격이 짙은 사단법인이라는 것을 알고 사무규정에 변화를 줬으면 좋겠다”라고 조언했다.
전임 전력강화위 당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화상으로 연결해 발언했던 것 모두 녹화해 자료화, 몇십 년 뒤에라도 공개해 정확한 처리 과정과 그의 감정과 생각을 확실하게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 “손흥민, 이강인의 불화가 문제였다”라는 발언을 정확하게 볼 필요가 있다. 당시 영상은 녹화된 것으로 확인됐다. 폐기만 하지 않았다면, 확실한 이야기를 나중에라도 알릴 필요가 있다.
신뢰가 땅에 떨어진 축구협회 스스로 개선점을 보이지 않는다면, 감독 선임 문제부터 선수단 사이 조직력 회복까지 모든 것에서 의심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정몽규 회장이 클린스만 감독과 그의 사단 위약금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도 여전한 궁금증이 있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이는 해결하기 전까지 지속해 과정을 알려야 하고 견제 받아 마땅하다.
모든 스포츠는 갈수록 기록의 스포츠로 진화 중이고 그 자체가 하나의 산업화로 이어지고 있다. 시대의 흐름을 역류할 것인지, 듣는 척이라도 할 것인지, 축구협회를 향해 국민의 많은 눈이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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