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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수술이요? 기다리세요”…의사가 병원을 떠나자 벌어진 일들 [이슈크래커]

이투데이 조회수  

#2월 20일 난소 난종 수술을 앞둔 A씨는 16일 병원에서 수술이 연기된다는 전화를 받았다. 하루 전(15일) 수술 전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병원에 갔을 때만 해도 의사는 “20일 수술할 때 보자”고 말했다. 갑작스런 수술 연기는 전공의 파업으로 마취과 의사가 부족해졌기 때문이었다. 병원 측은 한 달 후로 다시 예약을 잡아줬지만 B씨는 이마저도 파업 상황에 따라 더 밀릴 수 있다는 통보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폐암 4기인 어머니의 수술을 기다리던 B씨는 어머니가 수술을 받기로 했던 병원으로부터 황당한 전화를 받았다. 하루가 급한 환자의 수술을 갑자기 연기한다는 전화였다. B씨의 어머니는 2년간 항암치료를 받던 상황에 폐와 뼈 사이에 암세포가 퍼졌다는 소식에 수술 날짜를 잡았다. B씨는 이런 일이 우리 가족에게도 일어날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 못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우려했던 ‘의료대란’이 현실이 됐습니다.

21일 의료계에 따르면 ‘빅5’ 병원으로 불리는 주요 대형병원은 최소 30%에서 50%가량 수술을 줄이면서 전공의들의 이탈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빅5’병원은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을 말하는데요. 이 병원들은 응급과 위중증 환자 위주로 수술하면서 급하지 않은 진료와 수술을 최대한 미루고 있는 상황입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날 밤까지 주요 100개 수련병원 전공의의 71.2%인 8816명이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근무지 이탈자는 7813명으로 확인됐는데요. 전체 전공의 10명 중 7명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10명 중 6명은 근무를 하고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잊을 만 하면 반복되는 의료 대란의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의 몫으로 돌아갑니다. 말기 암 환자 등 위중한 환자들의 불안감이 커져만 가는 상황인데요.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교수와 전임의 등으로 메운다고 하지만 작금의 사태가 2주 이상 장기화하고 전공의 파업대열에 합류 의사을 보인 전임의까지 파업을 이어갈 경우 의료체계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 사직서를 내고 근무 중단을 선언한 전공의 대표들이 20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열린 대한전공의협의회 긴급 임시대의원총회에 참석해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암 환우까지…” 검사도 수술도 중단

전공의 사직서가 대거 제출된 서울의 대형병원, ‘빅5 병원’의 입원 환자들에게도 의료 공백은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진료 중단이 시작된 신촌 세브란스 병원은 전체 과의 수술이 절반 정도로 줄어든 상황인데요.

삼성서울병원도 전공의들의 사직서 제출이 시작된 19일 전체 수술의 10%를 줄였고, 이들의 병원 이탈이 시작된 전날에는 30%까지 줄였습니다. 전공의 이탈이 본격화하면서 30% 이상의 수술이 연기될 것으로 보입니다. 세브란스병원과 강남세브란스는 아예 수술을 ‘절반’으로 줄였습니다. 대다수 전공의가 현장을 떠난데 따라 정상적인 수술실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입니다. 서울성모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역시 수술을 30%가량 축소했습니다. 전체 전공의의 3분의2 이상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병원을 이탈하면서 수술 취소 규모는 조만간 더욱 커질 전망입니다.

여기에 각 병원의 진료 일정 조정 폭도 점차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교수와 전문의를 환자 진료 및 응급과 야간 당직근무 등에 투입하고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피로도가 쌓여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성모병원은 현재 외래 진료가 정상 운영되고 있지만 전공 공백에 따른 환자 대기시간은 연장 등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는 상황입니다. 서울아산병원은 신규 환자의 진료 예약에서 응급도를 고려해 ‘응급·중증’위주로 받고 있고, 고려대안암·중앙대병원 등도 진료과별로 일정을 지속해서 조정하는 상황입니다.

결국 전공의들의 공백을 메우고 있는 전임의들의 움직임에 시선이 쏠리고 있는데요. 2020년 문재인정부 당시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파업에 나서자 전임의도 무기한 파업에 돌입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전임의들마저 사직 릴레이 동참 의사를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20일 ‘빅5 병원’을 포함한 전국 82개 수련병원 소속 임상강사·전임의들은 입장문을 내고 “현재의 상황에서는 의업을 이어갈 수 없다”며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고수할 경우 전공의들을 따라 현장을 이탈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힌 상황입니다.

6일 서울 소재 의과대학 앞에서 시민들이 오가고 있다. (뉴시스)

“2000명 증원은 최소…3곳 연구 따른 것”

정부는 2020년 의료계 파업에서 물러섰던 사례를 되풀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의료계가 집단행동을 지속할 경우 면허 취소 등 법과 원칙대로 강경 대응한다는 원칙을 줄곧 유지하고 있습니다. 2000년 의약분업과 2014년 원격의료, 2020년 의대 증원 등 의료체계를 고칠 때마다 의사들의 집단 행동에 정부가 뒤로 물러섰던 전례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인데요.

그러면서 정부는 의대 증원 인력 2000명을 산정한 근거를 세밀하게 밝히기도 했습니다. 현 여건상 실제 필요한 인력보다 현저히 작은 인력을 증원한다며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한다는 입장을 재차 고수한 것이죠. 전공의의 집단행동 이틀째인 21일 박민수 중수본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적정 의사 수’에 대한 논쟁이 이어지자 의대 정원 수를 2000명으로 결정한 근거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KDI), 서울대 등 총 3개 기관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세밀하게 발표했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 결과는 2020년 나왔는데요. 과거 의료 이용량과 활동 의사 수 추이를 토대로 미래 수급을 예측했습니다. 한 해 의사의 진료일을 공휴일 제외 265일로 계산했고 의사의 환자 진료량이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된다고 보는 등 보수적 가정을 한 결과 2035년에는 9654명의 의사가 부족하다고 예측했는데요.

2022년 KDI는 장래 인구 추계와 연령별 의료 이용량을 토대로 미래 의료 수요를 예측한 후 의사의 연령별 이탈률을 적용해 의사 공급량을 결정했습니다. 그 결과 2035년에는 1만650명, 2050년에는 2만 2000명의 부사가 부족하다고 밝혔습니다.

서울대도 KDI와 마찬가지로 장래 인구 추계와 연령별 의료 이용량을 토대로 미래 의료 수요를 추정했습니다. 다만 의사 공급은 과거 추이를 토대로 산출했는데요. 그 결과 2035년에는 1만816명, 2050년에는 2만6570명의 의사가 부족한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이를 토대로 박 차관은 “정부는 위 3개 연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의대 정원 규모를 결정했다”며 의대 증원 수준은 협상이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박 차관은 “2000명은 현재의 교육 여견 등을 고려한 최소 인원으로 2035년엔 1만5000명이 부족하다고 가정할 경우 이를 다 증원하려면 3000명으로 증원 규모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의료계의 입장은 다릅니다.

의료계에서는 정부가 한 번에 의대 정원 2000명을 증원하기보다 의료계와 협의해 적정 증원 규모를 끌어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린다고 지방의료와 필수과 기피 현상이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죠. 주된 요구 사항은 △의대 증원 계획 전면 백지화 △과학적인 의사수급 추계를 위한 기구 설치 △수련병원 전문의 인력 채용 확대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 제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업무개시명령 전면 폐지 등입니다. 대전협은 정부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대해서도 “국민 부담을 늘리는 지불제도 개편, 비급여 항목 혼합진료 금지, 진료면허 및 개원면허 도입, 인턴 수련기간 연장, 미용시장 개방 등 최선의 진료를 제한하는 정책들로 가득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예고한 대로 전공의 집단 사직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고 이에 불응할 경우 최종적으로 면허를 박탈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각 병원에 전공의의 사직서를 수리하지 말 것을 공문으로 내려보낸 상횡인데요. 의료법 59조에 따르면 복지부는 의료인이 정당한 사유없이 진단으로 진료를 거부하면 업무 개시를 명령할 수 있는데 여기에 따르지 않은 의료인은 1년 이하의 자격 정지뿐만 아니라 3년 이하의 징역,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특히 개정된 의료법은 어떤 범죄든 ‘금고 이상의 실형·선고유예·집행유예’를 선고받았을 때 의사 면허를 취소할 수 있게 했습니다.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의료대란’이 현실화되는 가운데 20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로 시민들이 들어서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강대강’ 대립 속 피해는 국민만…남겨진 의료인들, 뒷수습에 피로 가중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가운데 피해는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전공의가 떠난 병원 현장을 지키고 있는 의료인들도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는데요. 특히 간호사들이 업무 부담 가중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옵니다. 실제 지난 19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간호사가 인턴 업무를 하고 있다’는 제목의 글이 게시돼 주목을 받았습니다. 서울아산병원에 근무한다는 한 간호사는 “지금 인턴만 파업 중이고 곧 전공의까지 파업한다고 하는데, 병원에서 인력이 부족하니 인턴 업무를 간호사에게 하도록 하고 있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다”고 적었습니다. 그는 또 “20일에 전공의들 파업 시작한다는데 답이 없다. 이미 저희 병원에 중환자분들 너무 많은데, 다른 병원에 전원시키는 것도 아니고 그대로 저 환자들 내버려두고 나가버리면 죽이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전공의까지 없는 상태에서 어레스트(arrest, 심정지) 환자 발생하면 어떡하냐”며 “바로 처방하러 달려올 사람이 없어 약도 못 준다. 정말 큰일이다”라고 우려했습니다.

문제는 현 상황이 쉽게 진정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입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이날 서울 이촌동 의협회관에서 첫 정례브리핑을 열었는데요. 의협은 “정부가 아무리 자유의사에 기반한 행동(전공의 사직)을 불법으로 탄압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며 “1명의 의사가 탄압받으면 1000명의 의사가 (의업을) 포기할 것이고, 그 수가 늘어나면 대한민국 모든 의사가 의사 되기를 포기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현장에 남겨진 의료인들도 피로 누적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를 상황인데요. 이 경우 국민 피해는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이투데이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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