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과일 껍질이라도 코코넛·파인애플 등 딱딱한 껍질은 일반쓰레기지만, 귤 껍질은 부드러워 음식물쓰레기다. 반면 수박껍질은 딱딱하지만, 잘게 다져서 음식물쓰레기로 버려야 한다. 바나나껍질은 서울에선 음식물쓰레기지만, 전북 군산에서는 일반쓰레기다.
서울 양천구에 사는 김나래(31)씨는 지난해 3월 일반종량제 봉투에 귤껍질을 버렸다가 과태료 10만원을 물었다. 구청 직원들이 봉투를 뒤져 김씨 주소를 찾아냈다. 김씨는 “음식물 쓰레기 분류법이 너무 복잡해서 자꾸 잊어버리게 된다”며 “시민들이 자주 잘못 버리는 쓰레기는 홍보나 안내를 더 적극적으로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2013년 6월 전국 도입된 음식물 쓰레기 분리배출제의 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난해한 분류 기준 탓에 혼란이 여전하다. 몇몇 지방자치단체들은 음식물 쓰레기 분류 기준을 글자 아닌 그림으로 봉투에 표시하는 등 여러 아이디어를 활용하고 있다.
18일 한겨레 취재 결과 서울 25개 자치구 중 중구·종로구·양천구 등 10곳이 최근 음식물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음식물 쓰레기 안내’ 글씨 대신 그림을 그려넣었다. 계란껍질, 티백, 씨앗류 등에 가위표(X)가 쳐진 그림이 글자 대신 자리하는 식이다. 지난해 상반기 이를 시행한 강남구청 관계자는 “개편 이후 종량제봉투에 버려선 안 되는 품목을 문의하는 전화가 줄어든 편”이라고 말했다. 광진구·동작구·마포구·서초구·중랑구 등 5곳은 개편을 진행 중이다. 나머지 10곳은 개편을 검토만 한 상황이거나 아예 바꿀 계획이 없다고 했다.
일관성 없는 분류 기준이 혼선을 키우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서울에서 일반쓰레기로 규정한 닭뼈, 생선뼈, 양파껍질, 마늘껍질이 강원 춘천에서는 음식물쓰레기다. 바나나껍질의 경우 서울에서는 음식물쓰레기로, 전북 군산에서는 일반쓰레기다. 환경부 폐자원에너지과 관계자는 “폐기물 관리는 지자체 소관 업무라 정부에서 통일된 기준을 만들기 어렵다”고 말했다. 환경부 ‘전국폐기물통계조사’(2022년)를 보면, 종량제봉투에 잘못 섞여 배출되는 음식물쓰레기 등 생활폐기물은 5년 새 255.4g→330.8g으로 29.5% 늘었다. 음식물류는 12.3g→19.73g으로 늘어, 폐합성수지류, 물티슈류 등에 이어 증가원인 3위를 기록했다.
분쇄기는 어떨까?
일각에선 종량제봉투 대신 ‘음식물쓰레기 분쇄기(디스포저)’를 쓰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디스포저는 음식물쓰레기를 갈아 하수구로 흘려 보내는 장치다. 원칙적으로는 불법이지만, 분쇄된 음식물찌꺼기의 20% 미만만 하수도에 배출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현행 규제를 완화해 가정에서 적극적으로 쓰자는 이야기다. ‘디스포저 규제 완화’는 윤석열 정부의 환경 공약이기도 하다. 올해 상반기에 환경부가 시범사업에 착수할 계획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디스포저가 기존 종량제봉투 배출 시스템보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좋지 않다고 지적한다. 환경부의 ‘주방용 오물분쇄기 제도 개선방안 연구’(2020년) 논문을 보면, 현행 종량제봉투 시스템이 디스포저를 사용하는 것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더 낮게 나타났다. 하수구로 음식물을 흘려보내면, 비가 올 때 수질오염 물질이 하천으로 유출될 수 있다는 문제도 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국내 하수처리장은 음식물찌꺼기가 들어오는 것을 전제로 설계된 게 아니기에, 디스포저를 확대 설치할 경우 하수처리장의 과부하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겨레/고나린 기자 / webmaster@huffingto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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