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메뉴 바로가기 (상단) 본문 컨텐츠 바로가기 주요 메뉴 바로가기 (하단)

분뇨를 사고팔던 시대 청춘의 사랑…영화 ‘오키쿠와 세계’

연합뉴스 조회수  

일본 에도 시대 말기 하층민의 삶 묘사…구로키 하루 빼어난 연기

영화 '오키쿠와 세계'
영화 ‘오키쿠와 세계’

[엣나인필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시대극 영화라고 하면 대개 먼 옛날을 배경으로 한 영웅의 일대기를 떠올리게 된다. 특출한 역사적 인물이 전쟁과 같은 역경 속에서 위업을 이루는 이야기 말이다.

이 점에서 사카모토 준지 감독의 신작 ‘오키쿠와 세계’는 독특한 영화다. 시대극이면서도 평범한 하층민의 일상을 그린 데다 누구나 기피할 만한 소재인 사람의 분뇨에 관한 이야기란 점에서다.

이 영화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운 에도 시대(1603∼1868) 말기 쇄국을 고수하던 일본이 서양의 압박으로 문호를 열어 근대화에 들어서는 전환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한다.

당시 일본의 중심지 에도(오늘날의 도쿄)의 빈민가에 사는 몰락한 사무라이의 외동딸 오키쿠(구로키 하루 분), 분뇨를 사고파는 청년 야스케(이케마쓰 소스케)와 츄지(간 이치로)가 주인공이다.

영화에선 일본이 역사적 전환기에 들어선 사실이 쉽사리 느껴지진 않는다. 평민의 삶은 에도 시대 몇백년 동안 흘러온 그대로인 것처럼 보인다.

다만 당시로선 신조어였던 ‘세계’라는 단어를 통해 일본 사회의 급격한 변화가 눈앞에 와 있음을 암시한다.

오키쿠의 아버지 겐베이(사토 고이치)는 “하늘의 끝은 어딘지 알 수 없다. 그것이 세계”라며 “나라가 어수선한 건 인제 와서야 그걸 알았기 때문”이라고 탄식한다.

‘오키쿠와 세계’는 외부와의 통상을 거부해온 농업 사회의 순환 경제를 분뇨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그려낸다. 극중 에도 시대 일본에서 분뇨는 폐기물이 아니라 토지를 비옥하게 하는 비료로 쓰이는 귀중한 자원이다.

영화 '오키쿠와 세계'
영화 ‘오키쿠와 세계’

[엣나인필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야스케와 츄지는 인구가 밀집한 에도에서 이집 저집을 돌며 돈을 주고 분뇨를 수거한다. 이걸 나룻배에 실어 강을 타고 농촌 마을로 가 웃돈을 얹어 판다.

사람의 몸에 들어간 음식은 분뇨가 돼 몸 밖으로 나오고, 분뇨는 토지에 뿌려져 농작물에 영양분을 공급한다. 야스케는 “똥이나 음식이나 다 똑같다”며 분뇨 예찬론을 편다.

현대인에게 낯설기만 한 순환 경제의 생활상을 보여주지만, 자원 재활용이나 환경 보호와 같은 메시지를 던지진 않는다. 다만 관객은 오늘날 생활 방식이 지속 가능한지, 대안은 없는지 자연스럽게 고민하게 된다.

오키쿠와 츄지의 순진무구한 로맨스는 순환 경제와 함께 극의 축을 이룬다. 오키쿠 역의 구로키 하루는 첫사랑에 빠진 청춘의 모습을 얼굴에 스치는 표정 하나, 몸의 미세한 움직임 하나로 그려내는 빼어난 연기를 펼친다.

시대적 배경을 아는 관객은 이들이 머지않아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거라고 예감한다. 이런 예감으로 이들의 사랑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일본 영화의 ‘뉴 웨이브’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통하는 사카모토 감독의 서른 번째 작품이다. 흑백의 영상은 옛 분위기를 더하고, 분뇨가 나오는 장면의 거부감도 줄여준다.

1973년 도쿄에서 발생한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 사건을 다룬 영화 ‘KT'(2002)로 제52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기도 한 사카모토 감독은 ‘어둠의 아이들'(2008) 개봉 때 한국을 찾아 봉준호 감독과 대담하는 등 한국과 인연이 깊다.

‘오키쿠와 세계’는 자연과 환경에 대한 고민을 영화에 담아내는 걸 목적으로 일본 영화계와 자연과학 연구진이 참여하는 ‘좋은 날 프로젝트’의 첫 작품이다.

제97회 키네마준보 ‘일본 영화 베스트 10’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제치고 1위에 올라 주목받았다.

21일 개봉. 90분. 12세 관람가.

영화 '오키쿠와 세계'
영화 ‘오키쿠와 세계’

[엣나인필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ljglory@yna.co.kr

연합뉴스
content@www.newsbell.co.kr

댓글0

300

댓글0

[AI 추천] 랭킹 뉴스

  • 구글, 보급형 스마트폰 '픽셀 8a' 공식 출시
  • 尹대통령 “부총리급 ‘저출생대응기획부’ 신설…교육·노동·복지 등 사회부처 이끌게 할 것”
  • 현대차 美 합작사 모셔널, 인력 줄이고 자율주행 상용화도 연기
  • 현대모비스, 울산 전기차 부품공장 만든다...900억원 투자
  • 합리적인 가격으로 메리트 높아지는 '현대 테라타워 구리갈매'
  • 윤 대통령 "국민소득 5만달러 꿈 아냐…복지·시장정책 하나로"

[AI 추천] 공감 뉴스

  • 현대차 美 합작사 모셔널, 인력 줄이고 자율주행 상용화도 연기
  • 현대모비스, 울산 전기차 부품공장 만든다...900억원 투자
  • 합리적인 가격으로 메리트 높아지는 '현대 테라타워 구리갈매'
  • ‘나혼산’ 안재현+안주=76.55kg, 다이어트 시작 “결전의 날이 왔다"
  • 플랫폼·콘텐츠 고르게 성장한 카카오…'카카오톡'·'AI' 주력
  • 윤 대통령 "국민소득 5만달러 꿈 아냐…복지·시장정책 하나로"

당신을 위한 인기글

  • ‘감칠맛 최고봉’ 보글보글 끓이는 소리마저 맛있는 꽃게탕 맛집 BEST5
  • 고소한 맛을 입안 가득 느낄 수 있는 파전 맛집 5곳
  • 입소문으로 유명하던 맛집을 한 곳에서! 인천 맛집 BEST5
  • 눈으로 한 번 먹고, 입으로 두 번 먹는 브런치 맛집 BEST5
  • [맥스무비레터 #78번째 편지] 극장 온도 급상승 ‘히든페이스’ 문제작의 탄생💔
  • [인터뷰] 봄의 햇살 닮은 채서은, 영화 ‘문을 여는 법’으로 증명한 가능성
  • “야한데 야하지 않은 영화”…’히든페이스’ 관객 후기 살펴보니
  • [위클리 이슈 모음zip] 민희진 아일릿 대표 고소·개그맨 성용 사망·’정년이’ 끝나도 화제 계속 외

함께 보면 좋은 뉴스

  • 1
    미국인들 사랑받는 한국산 SUV “또 새로워진다”…어떤 매력 더해질까?

    차·테크 

  • 2
    '극한의 성능과 럭셔리' 올 뉴 디펜더 OCTA, 사전 계약 시작

    차·테크 

  • 3
    르노코리아, 그랑 콜레오스 시승 이벤트 실시

    차·테크 

  • 4
    당정, 금융·통상·산업 회의체 가동…증시 밸류업 펀드 조기집행

    뉴스 

  • 5
    티볼리, 10년 만에 국내외 누적 판매 42만 대 돌파

    차·테크 

[AI 추천] 인기 뉴스

  • 구글, 보급형 스마트폰 '픽셀 8a' 공식 출시
  • 尹대통령 “부총리급 ‘저출생대응기획부’ 신설…교육·노동·복지 등 사회부처 이끌게 할 것”
  • 현대차 美 합작사 모셔널, 인력 줄이고 자율주행 상용화도 연기
  • 현대모비스, 울산 전기차 부품공장 만든다...900억원 투자
  • 합리적인 가격으로 메리트 높아지는 '현대 테라타워 구리갈매'
  • 윤 대통령 "국민소득 5만달러 꿈 아냐…복지·시장정책 하나로"

지금 뜨는 뉴스

  • 1
    ‘한글로 선명하게’ 푸이그 새겨진 옷 입고 타격훈련…영웅들도 그를 원하고 기다리지만 ‘현실적 과제’

    스포츠 

  • 2
    ‘동대문구 맛집 추천’ 맛으로 승부하는 동대문 맛집 리스트 BEST 3

    여행맛집 

  • 3
    “국립국어사전박물관 꼭 필요”...오태완 군수 국가 예산 확보 ‘광폭 행보’

    뉴스 

  • 4
    2년 연속 철도 총파업 예고… ‘왜’

    뉴스 

  • 5
    우원식 의장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 국제사회와 함께 해결해야”

    뉴스 

[AI 추천] 추천 뉴스

  • 현대차 美 합작사 모셔널, 인력 줄이고 자율주행 상용화도 연기
  • 현대모비스, 울산 전기차 부품공장 만든다...900억원 투자
  • 합리적인 가격으로 메리트 높아지는 '현대 테라타워 구리갈매'
  • ‘나혼산’ 안재현+안주=76.55kg, 다이어트 시작 “결전의 날이 왔다"
  • 플랫폼·콘텐츠 고르게 성장한 카카오…'카카오톡'·'AI' 주력
  • 윤 대통령 "국민소득 5만달러 꿈 아냐…복지·시장정책 하나로"

당신을 위한 인기글

  • ‘감칠맛 최고봉’ 보글보글 끓이는 소리마저 맛있는 꽃게탕 맛집 BEST5
  • 고소한 맛을 입안 가득 느낄 수 있는 파전 맛집 5곳
  • 입소문으로 유명하던 맛집을 한 곳에서! 인천 맛집 BEST5
  • 눈으로 한 번 먹고, 입으로 두 번 먹는 브런치 맛집 BEST5
  • [맥스무비레터 #78번째 편지] 극장 온도 급상승 ‘히든페이스’ 문제작의 탄생💔
  • [인터뷰] 봄의 햇살 닮은 채서은, 영화 ‘문을 여는 법’으로 증명한 가능성
  • “야한데 야하지 않은 영화”…’히든페이스’ 관객 후기 살펴보니
  • [위클리 이슈 모음zip] 민희진 아일릿 대표 고소·개그맨 성용 사망·’정년이’ 끝나도 화제 계속 외

추천 뉴스

  • 1
    미국인들 사랑받는 한국산 SUV “또 새로워진다”…어떤 매력 더해질까?

    차·테크 

  • 2
    '극한의 성능과 럭셔리' 올 뉴 디펜더 OCTA, 사전 계약 시작

    차·테크 

  • 3
    르노코리아, 그랑 콜레오스 시승 이벤트 실시

    차·테크 

  • 4
    당정, 금융·통상·산업 회의체 가동…증시 밸류업 펀드 조기집행

    뉴스 

  • 5
    티볼리, 10년 만에 국내외 누적 판매 42만 대 돌파

    차·테크 

지금 뜨는 뉴스

  • 1
    ‘한글로 선명하게’ 푸이그 새겨진 옷 입고 타격훈련…영웅들도 그를 원하고 기다리지만 ‘현실적 과제’

    스포츠 

  • 2
    ‘동대문구 맛집 추천’ 맛으로 승부하는 동대문 맛집 리스트 BEST 3

    여행맛집 

  • 3
    “국립국어사전박물관 꼭 필요”...오태완 군수 국가 예산 확보 ‘광폭 행보’

    뉴스 

  • 4
    2년 연속 철도 총파업 예고… ‘왜’

    뉴스 

  • 5
    우원식 의장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 국제사회와 함께 해결해야”

    뉴스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