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부부에게 접수되는 선물은 대통령 개인이 수취하는 게 아니라 관련 규정에 따라 국가에 귀속돼 관리된다.” (1월 19일 대통령실)
절차를 거쳐서 국고에 귀속된 물건을 반환하는 것은 국고 횡령이에요. 그 누구도 반환 못 합니다. 이것은 대한민국 정부 것.
-(1월 22일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최재영 목사로부터 받은 명품 가방 ‘디올(디오르)백’에 대해 대통령실과 여당 의원이 앞서 밝힌 입장입니다.
김 여사가 받은 명품 가방은 ‘대통령 선물’이고 관련 법과 규정에 따라 처리했다는 이야기로 절차적 문제는 없다는 이야기인데, 이러한 주장이 무리라는 비판이 나오며 논란이 계속됐습니다. 논란에 대해 윤 대통령이 한국방송(KBS) 대담에서 명확한 입장을 밝힐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7일 공개된 방송을 보면 제대로 된 설명도, 사과도 없었습니다.
윤 대통령은 “시계에다가 몰카를 들고 온 정치공작이라고 봐야 한다”며 “일단 용산 관저에 들어가기 전 일이다. (김 여사가 운영하던 코바나컨텐츠) 지하 사무실도 있으니 자꾸 (최재영 목사가) 오겠다고 해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고, 좀 아쉽지 않았나 생각된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윤 대통령, 대통령실, 여당이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 지금까지 국민에게 설명한 것은 ‘정치 공작인 명품 가방을 받은 것은 아쉬운 일이다. 대통령 부부에게 접수된 선물로 국고에 귀속된다’는 주장으로 요약됩니다. 선물을 왜 돌려주지 않았는지 설명하지 않고, 역대 대통령 부부가 받아온 선물과 김 여사가 받은 명품 가방을 동일선상에 올리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과거에도 대통령 부부가 명품 가방 등의 선물을 받은 사례가 있습니다. 그러나 역대 대통령 선물을 살펴보면 같은 명품이라도 김 여사가 받은 디올백과는 성격과 위상이 엄연히 다릅니다. 국고에 귀속된 진짜 ‘명품’은 어떤 걸까요.
디올백이 ‘대통령 선물’ 이 되려면
‘대통령 선물’에 관한 규정은 ‘대통령 기록물 법’과 ‘공직자 윤리 법’에 있습니다. 대통령실과 여당의 주장은 김 여사가 받은 명품 가방이 사실상 ‘대통령기록물’이라는 것인데, 관련 법 조항을 살펴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2조>
‘대통령의 직무수행과 관련하여 국민(국내 단체를 포함한다)으로부터 받은 선물로서 국가적 보존가치가 있는 선물 및 「공직자 윤리 법」 제15조에 따른 선물을 말한다’
<공직자 윤리 법 15조>
‘공무원(지방의회의원을 포함) 또는 공직유관단체의 임직원은 외국으로부터 선물(대가 없이 제공되는 물품 및 그 밖에 이에 준하는 것을 말하되, 현금은 제외)을 받거나 그 직무와 관련하여 외국인(외국 단체를 포함)에게 선물을 받으면 지체 없이 소속 기관·단체의 장에게 신고하고 그 선물을 인도하여야 한다. 이들의 가족이 외국으로부터 선물을 받거나 그 공무원이나 공직유관단체 임직원의 직무와 관련하여 외국인에게 선물을 받은 경우에도 또한 같다.
법에 비춰보면 김 여사가 받은 디올백은 대통령기록물과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대통령 직무수행과 연관이 없고, 국가적 보존 가치가 있다고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보니 여당 소속인 김웅 국민의힘 의원도 라디오 인터뷰(1월 24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이게 대통령 기록물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 디올백이 만약에 기록물에 해당이 된다고 하면 갤러리아 명품관은 박물관이다. 말이 안 되는 소리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실제로 과거 대통령 부부가 받은 선물을 살펴보면 디올백과 뚜렷한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YS와 DJ의 에르메스 선물, 박근혜의 페라가모백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 누리집을 보면 역대 대통령이 받은 선물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기록관은 “약 1.6만 점의 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그중 3,574건의 선물을 온라인 공개하고 있다”고 밝힙니다.
과거에도 명품 선물이 있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프랑스 명품 브랜드인 에르메스(Hermes) 핸드백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에르메스(Hermes) 나무 소반을 받았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인 페라가모 핸드백을 받은 것으로 등록돼 있습니다.
물론 과거의 명품 선물은 수령 경위와 증정인이 명확합니다. 수령 경위 등을 살펴보면 명품 선물이 대통령 기록물 법과 공직자 윤리 법에 부합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6년 9월 2일부터 16일까지 중남미 5개국을 순방했는데, 9월 9일 아르헨티나 카를로스 사울 메넴 당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아르헨티나 대통령으로부터 에르메스 핸드백을 선물로 받은 것이죠.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3월 6일부터 8일까지 프랑스를 국빈 방문했고, 3월 6일 자크 시라크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 주최한 국빈만찬에 참여해 명품 소반을 받았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2013년 2월 25일 대통령 취임식 참석 손님에게 페라가모 핸드백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취임식에 파독 광부와 간호사·간호조무사 등을 초청했는데 대통령기록관에는 윤행자 한독간호협회장이 선물을 준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명품은 아니지만 역대 대통령들이 국외 순방 중에 핸드백 등을 선물로 받아 국고로 귀속시킨 사례는 많습니다.
디올백은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까?
이전 대통령이 받은 명품 선물은 모두 대통령 직무수행과 연관성이 있고, 국가적 보존가치가 있습니다. 명품 선물을 통해 대통령과 외교라는 역사의 흔적을 엿볼 수도 있죠. 반면 김 여사가 받은 명품백은 이러한 기록물이 되기에는 여러 면에서 부족해 보입니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명품 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 김 여사를 함정에 빠트리려는 기획된 ‘몰래카메라 공작’이란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도 한국방송 대담에서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이 어느 누구한테 이렇게 박절하게 대하기는 참 어렵다”며 “정치공작”이라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물론 선물 전달을 한 최재영 목사·서울의소리의 ‘함정 취재’에 대한 정당성 여부는 계속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김 여사가 왜 선물을 받았는지, 왜 바로 돌려주지 않았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채, 선물을 ‘대통령기록물화’하는 대통령실·여당의 입장은 군색해 보입니다. 국민들에게 명확한 설명과 사과 대신 “아쉬운 점은 있다”고 한 윤 대통령도 마찬가지고요.
한겨레 이승준 기자 /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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