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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은 왜 “남북관계 단절”을 선언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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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초 공개된 당 중앙위원회 제8기 9차 전원회의(2023.26~30) 결정문과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 내용을 둘러싸고 국내 정책당국자와 북한 전문가들 간에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거칠고 과격한 언사뿐만 아니라 북한의 기존 입장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김일성-김정일 정권의 연장선에서 김정은 정권과 북한 체제를 보아왔던 전문가들은 인식체계의 혼란에 빠져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은 당 전원회의 결정문에서 남북관계에 대해 “적대적인 두 개의 국가관계이며 전쟁 중에 있는 두 개의 교전국가간 관계”로 재규정하고, “일단 전쟁이 우리앞의 현실로 다가온다면 (중략) 전쟁은 대한민국이라는 실체를 끔찍하게 괴멸시키고 끝나게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는 “독립적인 사회주의국가로서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행사령영역을 합법적으로 정확히 규정하기 위한 법률적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다.

최근 북측의 입장 변화를 올바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에서 거칠고 과격한 표현들을 걷어내고 우리식 잣대나 고정관념, 희망 사항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그들의 주장과 논리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북측의 2개 국가론(이하 2국가론), 국경선 획정, 전쟁관 등을 분석하고 우리의 바람직한 대응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 12월 31일 북한 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가 지난 26일부터 30일까지 당 중앙위원회 본부에서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회의에서 올해 각 부문 사업을 총화하고 내년 당 및 국가사업의 발전 방향을 확정해 발표했다. ⓒ로동신문=뉴스1

두 개의 국가론과 민족통일

북한이 작년 말 당 전원회의에서 2국가론을 내놓은 배경에 대해 대척점에 선 두 개의 분석이 있다. 하나는 북한지도부가 대남 열패감에서 통일을 포기한 채 체제라도 보존하기 위해 2국가론으로 돌아섰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지도부가 핵무기 보유에 따른 자신감에서 무력통일의 명분을 갖추기 위해 2국가론을 채택했다는 분석이다. 두 유형의 분석을 딱히 보수적‧진보적 시각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으며, 전반적인 분위기에서 전자의 견해가 우세한 편이다.

첫 번째 시각은 북한지도부가 남북한의 현격한 국력 격차와 한·미 연합전력의 군사적 압박 속에서 적화통일은커녕 오히려 흡수통일을 당할 위기 상황에 처하자 유엔회원국으로서 국제법적 보호를 받기 위해 2국가론을 내놓았다는 분석이다.

그리고 북한 주도의 연방제 통일이 실현될 가능성이 없어지자 전략적 수세의 입장에서 흡수통일의 위험성을 차단하기 위해 아예 민족동질성마저 부정하고 2국가론을 채택했다는 것이다. 동서독관계에서 동독이 취했던 입장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시각은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한 전략국가의 지위에 올라선데다가 신냉전·다극화로 유리한 국제정세가 만들어졌다고 판단해 대남 무력통일을 위한 명분으로 2국가론을 내놓았다는 분석이다.

재래식 전력이 열세인 북한이 ‘남조선 평정’을 하기 위해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열어놓기 위해 ‘동족관계’임을 부인했다거나, 전략국가라 자칭한 북한이 ‘식민지 속국에 불과’한 남한을 배제한 채 한반도 문제에 대해 미국과 직접 담판을 지으려는 의도가 깔려있다고 보고 있다.

위 두 가지 분석에는 타당한 내용도 들어있지만, 우리식 잣대나 희망 사항에 따른 것이 아닌지 되새겨봐야 한다. 동서독의 사례에서 보듯이 국가나 민족을 둘로 나눈다고 통일이 안 되는 것도 아니며, 2국가가 되면 이른바 ‘통일전쟁’의 명분도 없어지고 선제공격할 경우 정전협정 위반뿐 아니라 국제법 위반이 되어 중·러 개입도 쉽지 않게 된다.

김정은 위원장의 속뜻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국제정세관과 국제 역관계 인식 및 북한 내부의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인식의 패러다임에 기초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이 통일을 포기했다고 분석하면서 무력통일을 획책하고 있다는 논리적 충돌에 부딪치게 된다.

북한이 2국가론을 취하게 된 국내외적 배경은 크게 3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북한이 핵무기 보유로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쥘 것으로 기대했으나 한·미 핵협의그룹 창설과 ‘유엔사의 다국적 전쟁기구화’ 등으로 ‘힘의 균형’이 이루어져 어렵게 됐다는 점, 둘째는 한국과의 국력 격차로 북한 주도의 일국양제식 연방제 통일이 실현되기 어려워진 점, 셋째는 “제발 좀 서로 의식하지 말며 살았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라고 한 김여정 당부부장의 담화(2022.8)처럼 북한의 정치체제 전환을 위해 남측 간섭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필요성 등이다.

북한이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으로 전략국가가 되었다고는 하나 불안한 안보환경과 절대적인 국력의 열세 상황에서 체제안정이 절실하며 그 핵심은 안정적인 후계체제 구축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 핵우위에 대한 한·미의 상쇄 전략에 대처하고 특수관계론에 따른 남한의 내정간섭을 회피하면서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정권유지를 위해 정치체제 전환을 추진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가·인민의 안전을 영원히 담보할 수 있는 법적 토대 마련, 각급 인민회의 대의원선거의 경쟁방식 도입과 ‘지방발전 20×10정책’을 통한 나름의 빈부격차 해소 노력 등 정치체제 전환을 위해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함으로써 장기적으로 태국이나 전전 일본 방식의 입헌군주제를 실현해 나가려는 것으로 예상된다. (현안진단 제319호, “2023년 북한정세 평가와 2024년 전망” 참조)

국경선 획정 문제와 서해 북방한계선(NLL)

김정은 위원장의 말대로 남북한이 ‘두 개의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국경선이 분명해져야 한다. 지상에서는 군사분계선(MDL)이 존재하기 때문에 별도의 육상국경선 획정이 필요없지만, 해상국경선의 경우는 우리측의 북방한계선(이하 NLL)과 북측이 2007년부터 주장해 온 경비계선이 서로 달라 분쟁의 소지가 존재한다.

이와 관련해 1월 15일 김정은 위원장은 “우리 국가의 남쪽 국경선이 명백히 그어진 이상 불법 무법의 《북방한계선》을 비롯한 그 어떤 경계선도 허용될 수 없으며 대한민국이 우리의 령토·령공·령해를 0.001mm라도 침범한다면 그것은 곧 전쟁도발로 간주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것은 정전협정 체결 당시 해상경계선이 합의되지 않은 채 우리측이 일방적으로 NLL을 선포한 것이므로 국제법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1월 16일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NLL은 우리 장병들이 수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사수해 온 실질적인 해상경계선이고 어떠한 경우에도 이 NLL을 지키고 수호하겠다는 것은 우리 군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는 NLL이 국제법적으로 합법이라고 주장한 것이라기보다 국제정치적으로 힘의 논리에 의해 우리 측이 지켜왔다는 뜻이다.

그동안 남북은 ‘남북기본합의서'(1992) 부속합의서에서 “해상 불가침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지금까지의 관할 구역을 불가침구역으로 한다”고 합의했다.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직후 열린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서해평화협력지대를 구축해 NLL 문제를 우회적으로 다룬다는 큰 원칙에 도달했다. 2018년 ‘4.27 판문점선언’에서는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전한 어로 활동을 보장”하기로 합의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NLL을 인정하지 않고 영해 침범 땐 전쟁도발로 간주한다고 한 말 때문에, 북한이 서해 5도상에서 도발할 것이 확실하다고 단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북측 주장을 관철하는 데 2가지 방법이 있기 때문에 속단은 금물이다.

북한이 서해 5도에서 군사도발할 가능성은 충분히 대비해야겠지만, ‘2국가론’에 따라 국제상설재판소(PCA) 또는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그동안 북한이 특수관계론 때문에 두 번째 옵션을 고려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가능하게 됐기 때문이다.

새로운 전쟁관? 신냉전도 열전도 아닌 정전의 재확인

김 위원장의 ‘적대적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 ‘핵위기 사태에 남조선 전 영토 평정’ 발언 때문에 갑작스럽게 한반도 전쟁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전쟁공포는 지난해 7월 마크 밀리 미국 전 합참의장이 일본 <닛케이>(日經) 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발언에서 촉발되었고, 올해 1월 미국의 저명한 북한 전문가 로버트 칼린과 지그프리트 해커가 “김정은이 전쟁을 하기 위한 전략적 결정을 내렸다”고 한 경고로 증폭되었다.

불에다 기름을 부은 것은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다. 그는 외신 인터뷰에서 “4월 총선을 앞두고 대남테러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 데 이어, 국내 방송에서는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며 전면전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면서도 “우리나라에 대한 직접 군사도발, 대규모 해킹, 사이버 심리전, 회색지대 도발을 계속할 것”이라며 불안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하지만 전면적인 남침이 아니더라도 우발적 군사충돌이 국지전, 전면전으로 확전될 수 있고 북한이 ‘핵무력정책법'(2022.9)에 따라 핵무기를 사용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신 장관의 발언은 무책임한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전쟁’ 발언은 2국가론에 따른 것으로, 현 남북관계가 정전체제에 있는 ‘국제법적으로 전쟁 상태’에 있음을 거친 언사로 표현한 것뿐이다. 또한 ‘남조선 전 영토 평정’ 발언도 “만일의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핵위기 사태에 신속히 대응하고 유사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과 역량을 동원하여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겠다는 ‘조건부’ 표현으로서, 김일성이 6.25남침을 감행하면서 통일전쟁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국토완정(國土完整, territorial integrity)과는 다른 의미이다.

그보다는 미 국방부의 ‘핵태세보고서(NPR)’에 나온 ‘북한이 핵을 사용하면 김정은 정권은 종말을 맞을 것’이라는 경고와 비슷한 것이다.

주목할 것은 김정은 위원장이 국제정세관에서 ‘신냉전’이나 ‘다극화’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2023년 1월에 공개된 제8기 6차 전원회의에서는 “국제관계 구도가 《신랭전》체계로 명백히 전환되고 다극화의 흐름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고 밝혔었다.

하지만 이번 제8기 9차 전원회의 결정문에서는 “2023년의 국제정치환경과 역량 관계에서 일어난 거대한 지정학적 변화”라고만 언급하고 신냉전이나 다극화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북한의 국제정세관이 바뀐 것인지는 아직은 분명하지 않다. ‘신냉전’ 인식은 작년 11월 미·중 정상회담의 ‘전술적 휴전’의 영향 때문에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극화’ 정세관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다만 다극화가 완료형이 아니라 이루어야 할 목표로서 진행형으로 보고 있다. 국제정세관과 달리 한반도 정세관에서는 ‘신냉전’이 아니라 전쟁이 일시 멈춘 ‘정전’ 상태이지만, 언제라도 교전 상태, ‘열전’으로 바뀔 수 있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평화관리와 평화공존으로 정책 패러다임 바꿔야

북한이 2개 국가로 가기로 작정했다면 현실적으로 이를 뒤엎을 방법은 마땅치 않다. 1991년 8월 남북한이 유엔회원국에 동시 가입하는 순간부터 국제적으로는 2개 국가였고 이에 준하여 모든 국제법과 국제규범이 적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1개 국가라는 통일목표가 가능했던 것은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점에 남북한이 합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일방이 2국가론을 주장한다면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에 기반한 남측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도 그대로 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는 지금 새로운 통일방안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영호 통일부 장관의 정책자문기구인 통일미래기획위원회에서 ‘민족 우선’에서 ‘자유민주주의 가치와 이념’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통일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이념과 가치가 똑같아야지 통일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는 흡수통일을 하거나 사실상 통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통일방안은 초당적인 합의도 없이 정부의 발표만으로 공식 통일방안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 때 일방적으로 새로운 통일방안을 발표했다가 폐기됐던 과오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 윤석열 대통령이 1월 3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57차 중앙통합방위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현 국면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지금 국내외에서는 남북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보다는 당장의 한반도 전쟁 가능성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북한의 2국가론이나 국경선 획정, 전쟁관의 변화가 중장기적으로 남북관계와 한국 사회에 미칠 영향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우리 민족의 영구분단을 막을 수 있도록 남북관계의 인식과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남북관계를 조급하게 풀려고 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대응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북한의 2국가론에 맞춰 당장 우리의 대북정책을 바꿀 필요는 없지만, 관련 정부 부서와 전문가집단을 조직해 2국가론에 따른 분야별 정책 파급요인들에 대한 검토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아울러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를 바꾸어야 한다. 섣불리 통일방안을 급조하기보다는 남북한의 평화공존을 목표로 평화를 관리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무엇보다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과 시민사회와의 소통을 강화해 성공적인 정책 전환을 위한 공감대를 만들어 나아가는 것을 우선적 과제로 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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