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첫 ‘물가 성적표’가 예상보다 양호했지만 낙관론보다 경계감이 더 큰 모습이다.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국제 유가 불확실성 확대와 더불어 국내적으로도 물가에 악영향을 미칠 시한폭탄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는 평가 때문이다.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은 총선 이후 인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가 억눌러 온 가공식품 등 가격도 원자재 비용 부담이 가중되면 추가로 뛰어오를 수밖에 없다.
4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3.15(2020년=100)으로 전년 동월 대비 2.8% 올랐다. 물가 상승률이 2%대로 회귀한 건 지난해 7월 이후 6개월 만이다.
정부는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6%로 전망하면서도 상반기에는 3% 내외 수준이 유지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를 감안하면 올해 첫 수치는 나쁘지 않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석유류 가격 안정 흐름이 1월까지 이어졌고 연초 서비스 가격도 둔화하면서 예상보다 나은 결과를 보였다”고 말했다.
지난달 전기·가스·수도 물가지수는 136.09로 전년 대비 5.0% 올랐다.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에 미친 기여도는 0.19%포인트에 그쳤다. 지난해 1월 전기·가스·수도 물가 상승률은 28.0%, 기여도는 0.94%포인트에 달했다.
공공서비스도 지난달 2.2% 상승하며 전체 물가 상승률을 밑돌았다. 국제 유가 안정으로 1월 석유류 물가는 지난해 1월보다 5.0% 하락하면서 전체 물가를 0.21%포인트 끌어내렸다. 지난해 1월 물가가 워낙 높았던 데 대한 기저효과가 크게 작용했다는 얘기다.
향후 물가 상방 요인 역시 적지 않다. 4월 총선을 앞두고 가격 인상을 최대한 억제 중인 공공요금 변수가 대표적이다. 전기·가스요금은 지난해 5월을 마지막으로 추가 인상이 없었다. 지난해 1월 난방비 폭탄을 맞은 것과 달리 올겨울에는 요금이 비교적 안정적인 이유다. 다만 한국전력과 가스공사의 재무 건전성과 실적 악화 추이를 감안하면 연내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
철도 운임도 조만간 오를 가능성이 높다. KTX 간선 운임은 2011년 인상된 뒤 계속 동결되고 있다. 한문희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사장은 물가와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부담을 더 이상 감내하기 어렵다며 운임 인상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지난달 물가 상승률 둔화를 견인한 석유류 제품 가격 동향 역시 불안하다. 최근 중동 지역 지정학적 위험이 고조되면서 국제 유가가 다시 들썩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주 국내 휘발유 가격은 17주 만에 상승 전환됐다. 반면 유류세 한시 인하 조치는 이달 말 종료될 예정이다.
중동발 리스크는 가공식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식품업계는 정부 압박 등으로 가격 인상을 자제해 왔다. 다만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이 더 오르고 운송비 부담까지 가중되면 가격 인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지난달 유지류, 유제품, 설탕의 국제 가격이 전월 대비 증가세로 돌아서는 등 우려가 현실화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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