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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청소년에게만 지원하던 사람유두종바이러스(HPV) 백신을 남성 청소년에게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해 온 질병관리청이 비과학적인 근거를 앞세워 무리하게 접종횟수를 줄이려고 시도하다 도마에 올랐다. 남성 청소년을 무료 접종 대상에 포함하는 대신 총 2~3회 접종해야 할 HPV 백신을 1회만 지원하려다 전문가 단체가 반쪽짜리 사업이라며 반발하자 ‘1회 접종은 결정되지 않았다’며 한발 물러선 모양새다.
질병청은 감염병 예방에 꼭 필요한 백신에 대해 접종 비용 전액을 지원하는 국가 필수예방접종(NIP) 사업을 운영 중이다. HPV 감염은 자궁경부암의 주된 원인으로 백신을 통해 예방 가능하다. 정부는 자궁경부암 예방을 위한 백신 접종의 중요성을 인식해 2016년부터 12세 여성 청소년에 지원을 시작했다. 이후 12~17세 여성 청소년과 18~26세 저소득층 여성까지 지원 대상을 넓혔다. HPV 백신은 2회 또는 3회 접종이 필요하다. 접종 당시 나이에 따라 예방 효과가 달라질 수 있어 전문의와 상의해 정확한 횟수와 일정을 확인해야 한다. HPV 백신은 자궁경부암 뿐 아니라 남성도 감염되는 항문암·두경부암·구인두암 등 HPV 감염으로 유발하는 암의 90% 이상을 예방할 수 있다. 성적 접촉을 통해 남녀 누구나 HPV에 감염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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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의료계에서는 남성 청소년도 HPV 백신 접종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실제 경제협력기구(OECD) 가입 국가의 상당수는 남성 청소년에 대한 HPV 백신 접종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NIP에 포함된 ‘서바릭스'(2가 백신)와 ‘가다실'(4가 백신)보다 예방범위가 넓은 ‘가다실9′(9가 백신)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도 높아지는 추세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9가 HPV 백신 남녀 무료 접종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국정과제로도 포함시키면서 NIP 확대 여부에 대한 관심은 한껏 높아졌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윤 대통령이 대선 당시 영상을 통해 ‘가다실 백신, 빠르게 간다’고 공언하더니 진척조차 없다”며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몰아세웠다. 지영미 질병청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남성 청소년에게 HPV 백신을 지원하는 것이 비용 효과가 없다는 1차 연구 결과가 있었는데 현재 2차 연구 용역을 다시 하고 있다. 변수를 1차보다 훨씬 더 많이 넣었기 때문에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생각한다”며 “올해 말이나 내년 초까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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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V 백신은 가격이 비싼 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가다실9’ 기준 서울 의원급 의료기관의 1회 평균 접종가는 21만7565원으로, 2회 접종을 완료할 경우 43만 원이 든다. 예방 범위가 상대적으로 좁은 ‘가다실’과 ‘서바릭스’는 회당 평균 접종가가 14만 984원으로 소폭 낮지만 통상 3회 접종하다 보니 총 비용부담은 비슷하다. 정해진 예산 안에서 백신 접종 혜택을 늘리기 위해 고민하던 질병청이 최근 HPV 백신 1차 접종만 국가가 지원하는 모델로 전환한 영국과 호주 사례를 근거로 ‘2차 접종 무용론’을 펼치면서 의료계 공분을 산 것이다.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HPV 백신을 1회만 접종했을 때의 연구 결과는 아직까지 일관성이 없으며 안전성 및 효과 검증이 추가로 필요하다”며 “HPV 백신에 대한 국가 지원을 시작한 지 20년 가까이 되어 집단면역이 충분히 형성된 영국·호주 등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질병청은 “HPV 백신의 접종 횟수, 9가 전환 등을 검토하던 중 해외 권고사항 변경에 대해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았을 뿐 구체화된 사항은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25일 질병청이 공개한 ‘국가예방접종 도입 우선순위 설정 및 중장기 계획 수립’ 연구 결과에 따르면 12세 여아 대상 HPV 9가 백신 도입은 3순위, 12세 남녀아 HPV 9가 백신 도입은 6순위에 올랐다. 도입 타당성이 입증됐지만 인플루엔자(독감) 4가 백신 등 순위가 높은 백신과 함께 우선순위를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다른 국정과제였던 고령층 대상포진 백신도 각각 4순위(생백신), 15순위(재조합 백신)에 올라 HPV 백신의 지원 확대 여부와 시기를 점치기 힘들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정부가 대선 공약을 이행하고자 무리수를 뒀다가 전문가들의 반발에 부딪혀 입장을 선회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짙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매년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는 NIP가 충분한 과학적 검증 없이 불투명하게 운영돼서야 되겠느냐”며 “총선을 앞두고 효과와 안전성이 불분명한 정책이 생색내기 용도로 추진될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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