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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할 방향은 맞지만, 지금 당장 결정할 사안은 아닙니다.”
고용노동부에서 산업재해 예방 대책을 맡았던 한 관료가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을 두고 우려스럽다며 한 말이다. 다음 달 1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 유예안 처리는 여야가 산안청 설립을 어떤 방향으로 결론내느냐에 달렸다. 우려는 현재 더불어민주당이 주장하고 있는 산안청이 설립된다고 하더라도 인력과 역할, 그리고 현장 준비 사항 등을 고려할 때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30일 정부, 국회 등의 말을 종합하면 산안청 설립은 필요성보다 운영 방식과 시기가 쟁점으로 보인다. 이미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가 2020년 문재인 정부 시절 산재 예방 대책의 효율성을 위해 큰 틀에서 산안청 설립에 대해 합의했고 관련 법안들도 발의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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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재 고용부 안팎에서 산안청 설립에 대한 시각은 기대보다 우려가 더 크다. 문재인 정부는 고용부 산업안전보건본부를 청으로 승격하려고 했다. 만일 올해 산안청이 설립되면 본부 설립 후 3년 만이다. 질병관리본부가 청으로 승격된 기간(5년)보다 짧다.
산안청을 운영할 고용노동부의 우선순위 과제도 지적된다. 고용부는 27일 중대재해법 전면 시행으로 적용 사업장이 약 83만 곳 더 늘면서 법 위반 수사 인력이 태부족이라고 호소한다. 이 경우 고용부의 산재 예방 기능도 저하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런 우려는 산안청 기관 성격이 모호한 점과 맞닿아 있다. 당초 경영계가 산안청 설립에 동의한 것은 산재 예방 대책 방향을 처벌에서 예방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경제단체의 한 관계자는 “당시 산안청 설립 논의는 중대재해법 제정 전에 진행됐다”며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만들려는 산안청은 수사기관인가, 예방기관인가”라고 반문했다. 만일 산안청이 수사기관이 된다면 중대재해법은 처벌이 아니라 예방이 우선이라는 입법 취지에도 어긋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고용부의 산재 예방 기능을 산안청에 떼어내는 식으로 근로 개선 기능과 분리하는 게 정책 효율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근로자 보호는 근로기준법(근로 개선)을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단순한 예를 들어 고용부의 사업장 근로감독은 근로 개선 기능이다. 하지만 장시간 노동을 적발해 과로를 막았다면 작업 피로도에 따른 산재를 막는 예방 기능이다. 그동안 여러 산재 예방 대책과 법안이 근로기준법을 토대로 상호 보완 관계로 만들어진 배경이다. 고용부에서 퇴직한 관료는 “앞으로 수사가 대기업보다 상대적으로 법 위반 입증이 쉬운 영세 사업장으로 쏠릴 수 있다는 게 기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도 “역할과 기능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 새로운 기관이 들어서면 중소기업 현장은 또 다른 우려가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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