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새해 초부터 ‘민생토론회’를 이어가며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새해 첫 업무일인 지난 2일에는 증권거래소를 찾아가서 공매도 금지를 유지하겠다는 발언과 함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를 공식화했다. 지난 10일 2차 토론회에서는 “30년 이상 된 주택은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을 허용”하겠다고 밝히며 재건축 아파트 소유주들에게 각종 혜택을 약속했다. 재벌 기업들에는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 연장을 약속하고, 상속세도 낮춰주겠다고 시사했다.
정책의 바탕이 되는 논리는 이명박 정권 때부터 많이 들었던 ‘낙수효과’의 재탕이다. 다주택자 중과세를 철폐하면 서민과 임차인들이 ‘혜택’을 볼 거고, 재건축 소유주들에게 혜택을 막 퍼주면 청년들을 위한 주택이 지어질 거고, 대기업에 세액공제를 해주고 총수 일가의 상속세도 깎아주면 경제가 잘 돌아갈 거라고 한다. 정확히 어떤 경로로 그렇게 되는지는 밝히지 않는다. 당연하다. 그런 건 밝힐 수가 없으니까. 낙수효과가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2015년 국제통화기금(IMF)의 발표로 정리되었다.
이 정책들은 대통령이 직접 발표했지만, 면밀한 준비가 된 것 같지는 않다. 총선을 겨냥해서 일단 던지고 보는 정책들이 섞여 있다. 그래도 총선 한 달 전인 3월 초까지 대통령 주재 ‘민생토론회’를 계속하겠다고 한다. 또한 윤 대통령은 내각에 ‘개혁 TF’라는 것을 만들어 경제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어젠다를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기업이 원하는 규제 완화를 팍팍 하라는 뜻이다.
‘선심’ 우려하는 조중동
[사설]한 달 새 20건 쏟아낸 용산의 감세…현금지원 ‘선심’ 릴레이(24.01.19 동아일보)
[사설]총선 앞 ‘선심’ 쏟아내는 黨政大, 청구서 어찌 감당하려고 (24.01.16 동아일보)
[사설] 여도 야도 ‘닥치고 선심’, 만약 다 실현되면 나라 경제 결딴날 것(24.01.17 조선일보)
<동아일보>는 정부가 내놓는 정책들을 우려하는 사설을 두 번이나 내보냈다. 정책들이 ‘선심성’이라는 것과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하다는 것을 걱정한다. <동아일보>는 “대략 추산된 규모만 10조 원이 넘는데, 마땅한 세수 확보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10조 원이라는 액수는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세액공제와 시설투자 임시투자세액공제 연장, 91개 부담금의 원점 재검토, 민생대책으로 나온 전기요금 및 건강보험료 감면, 시중은행의 이자 환급 등을 합친 것이다.
<동아일보>는 지난해 59조 원 ‘세수 펑크’가 났는데 “무분별한 감세나 현금 지원”이 이어지면 나랏빚은 더 늘어난다고 걱정한다. 또 “당정이 숨 가쁘게 내놓는 정책들 대부분이 총선 후 실행에 옮겨질지 불투명하다”는 점도 언급한다. 신문은 김포 ‘메가시티’ 구상은 벌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고 있다면서 “지금 쏟아내는 정책의 실천을 요구하는 청구서가 총선 후 쇄도할 때” 여권이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조선일보>는 여와 야 모두가 “포퓰리즘”에 매달리고 있으며 “마구잡이 선심 경쟁”에 나섰다고 본다. 민주당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재추진하겠다고 하는 것에 대해 “농민 표를 겨냥한 보여주기 쇼”라고 비난한다. 이어 윤석열 대통령이 공매도 금지 계속, 안전진단 없는 재건축 등 메가톤급 정책을 풀어놓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서민·소상공인 290만 명의 대출 연체 기록을 삭제하는 신용 대사면, 2금융권에서 대출받은 자영업자 40만 명의 대출이자 일부를 돌려주는 정책, 대주주 주식 양도세 완화 등을 한데 묶어 “선심 정책”으로 칭한다.
그러니까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부자에 대한 혜택, 대기업에 대한 혜택과 서민에게 돌아가는 복지지출을 구별하지 않는다. 모조리 ‘선심’ 쓰는 정책이라고 부정적으로 본다. 하지만 투자 여력을 가진 대기업에 추가로 세금을 감면하는 것과 실물경기 악화로 이중 삼중의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를 지원하는 것이 어떻게 같은가? 문제는 지금 누구를 지원해야 하느냐에 대한 정치적 판단이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그런 구별이나 판단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것 같다.
신이 나는 경제신문
[사설] ‘코리아 디스카운트’ 징벌적 상속세만이 아니다(24.01.18 한국경제)
尹 “상속세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세율 인하 서둘러야[사설](24.01.18 매일경제)
[사설] 尹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 연장”…’대기업 특혜’ 논란 더는 없어야(24.01.15 한국경제)
[사설] 주거 안정 위한 부동산 규제 철폐, 민주당도 결자해지 나서야 (24.01.10 한국경제)
尹 “재건축 기간 6년 단축”…공급 확 늘려 청년 집 걱정 덜어줘야[사설](24.01.10 매일경제)
경제신문들은 ‘세수 펑크’나 ‘포퓰리즘’을 걱정하지 않는다. 평소 자신들이 요구하던 바를 이번에 윤 대통령이 직접 발표했기 때문에 신이 났다. <한국경제>는 “12조 원이 넘는 상속세 때문에 삼성전자 등 보유 주식을 대거 내다 파는 삼성가(家)”를 언급하면서 상속세를 “속히 정상화”하라고 주장한다. <매일경제>는 “과도한 상속세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라는 대통령의 발언이 “전적으로 타당”하다고 맞장구를 친다. 나아가 상속세 때문에 “근로자와 개미 투자자들”이 부담을 고스란히 진다면서 상속세 인하는 “근로자를 비롯해 모두가 더 잘사는 나라로 가는 첩경”이라고 주장한다. 피라미드 위쪽의 조세 부담을 덜어주면 모두가 더 잘사는 나라가 된다는 단순한 논리! 또다시 낙수효과 만세다.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도 경제신문은 대만족이다. 윤석열 정부가 새해 초 내놓은 ‘1.10부동산대책’에 대해 <한국경제>는 “건설업계와 전문가들이 주거 안정에 필요하다고 요구해온 규제 완화 사항을 적극 채택했다”고 칭찬한다. 솔직하고 정확한 표현이다. 1.10부동산대책은 업계의 요구사항을 그대로 수용해서 정책화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빌라 업자들의 요구, 오피스텔 업자들의 요구, 민간임대주택 건설업자들의 요구, 다주택 민간임대사업자들의 요구가 빠짐없이 정책에 반영되었다.
<한국경제>가 정확히 짚은 부분이 하나 더 있다. “관건은 국회”라는 것이다. 조만간 정부는 윤 대통령이 약속한 내용이 담긴 법안들을 국회에 제출할 텐데,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동참하지 않으면 허사가 된다.
반발하는 야당, 그들의 모순
감세 때리면서 감세하자…민주당의 요상한 ‘이중플레이'(23.11.27 경향신문)
[사설]민주당 의원들도 “수술해야” 정치권 상속세 개편 속도 내길(23.11.29 조선일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8일 윤 대통령이 상속세 완화 필요성을 이야기하자 “초부자감세 그랜드슬램”이고 “충격”이라고 비난했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의 그간 행보를 생각하면 그들이 왜 충격을 받는지 이해가 잘 안 된다.
<경향신문>도 비슷한 의문을 품었는지, 민주당의 ‘이중플레이’를 지적하는 기사를 썼다. “민주당은 지난해(2022년) 예산안 국면에서도 법인세, 다주택자 종부세 완화를 골자로 하는 세법개정안을 국민의힘과 함께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법인세율을 1%포인트씩 일괄 인하했고, 3주택 이상 다주택자의 최고세율도 1%포인트 깎은 5%로 합의했다.” 예리한 지적이다. 2022년 12월 22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2023년도 예산안 중재안에 합의하면서 △법인세 각 구간별 1%p 세율 인하 △금융투자소득세 2년 유예 △증권거래세 단계적 인하 △종부세 완화 △가업상속공제 한도 5000억 원으로 상향 등을 함께 처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다수당이므로 힘이 부족해서 끌려갔다고 말할 수는 없다.
국민의힘은 부자와 기득권층에게 유리한 정책을 말과 행동으로 옹호한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말과 행동이 자꾸 어긋난다. 입으로는 부자감세에 반대한다고 해놓고, 감세 법안이 국회에 상정되면 숫자만 조금 깎아서 ‘합의 처리’한다. 지난해의 부자 감세도, 막대한 세수 결손도 따지고 보면 양당이 합의한 결과였다.
지난해 세수 결손의 가장 큰 요인인 법인세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 광장에 시민의 촛불이 켜졌던 2016년 겨울, 국회의원들은 법인세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었다. 여기서 법인세 정상화란 이명박 정부가 ‘부자감세’로 낮춰놓은 세율을 원상회복한다는 뜻이었다. 그해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공약 중 하나가 법인세 인상이었을 정도로 사회적 공감대가 컸다. 과세표준 500억 원 초과 기업에 대한 법인세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회복하는 법안에 국민의당을 포함한 모든 야당이 찬성했다. 여소야대가 만들어져 있었고, 여당인 새누리당은 분당 위기였고, 청와대는 힘이 없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여당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법인세 증세안을 정부의 누리과정 지원과 바꾸는 카드로 써버렸다. 너무 좋은 기회에 너무 쉬운 양보를 했다. 법인세 정상화 기회는 그렇게 날아갔다. 당시 원내대표였던 우상호는 “나중에 정권 잡으면 법인세 인상 추진하면 된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정권을 잡고 나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가? 법인세 최고세율은 드디어 25%로 인상되어 이명박 정부 이전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다.
그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 시기에는 대기업에 대한 각종 공제가 확대되어 실질적으로는 법인세 감면이 늘어났다. ‘신성장동력’이니 ‘혁신성장’이니 하는 명목으로 주로 대기업에 연구개발 비용 세액공제나 시설투자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했다. 문재인 정부 마지막해였던 2021년에는 ‘국가전략기술’이라는 이름으로 연구개발 세액공제를 더 늘리는 바람에 법인세 세수 감소분만 1조3000억 원에 달했다. 지금 윤석열 정부가 연장하겠다고 발표한 대기업 투자 세액공제 등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이어받은 것이다.
부동산 보유세는 어떨까? 촛불 항쟁의 분위기 속에서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새 정부가 부동산가격을 잡기 위해 보유세를 인상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그러나 김수현 당시 청와대 사회수석이 주도한 2017년 8.2대책에서 종부세 인상은 빠져 있었다. 오히려 다주택자가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종부세와 재산세, 양도세, 취득세, 건강보험료 등을 감면해주겠다고 발표했다. 8.2대책 발표 바로 다음날인 8월 3일, 기자들의 질문에 김수현은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는 소득이 발생하지 않는데 부과되는 세금”이라는 답변으로 보유세 인상에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이듬해 4월 문재인 정부는 근본적인 세제 개혁을 하겠다면서 ‘재정개혁 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특위가 내놓은 권고안마저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정권의 의지 부재와 기재부의 견제가 원인이었다. 당시 특위를 견제하고 보유세 인상을 막고 나섰던 기재부의 수장은 김동연이었다. 나중에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자 문재인 정부는 뒤늦게 보유세 인상에 나섰지만, 부동산시장 안정시키기에는 부족했고 결국 정권을 국민의힘에 내주게 되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벌어진 일들도 기가 막힌다. 윤석열 정부는 공정시장가격비율을 60%로 인하해서 고가 주택 소유자의 종부세를 낮춰주었다. 그런데도 2022년 말 국회에서는 종부세를 그보다 더 완화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1주택자의 종부세 공제 금액을 공시가격 기준 12억 원으로 상향하고, 조정대상지역이라도 2주택자까지는 중과세를 하지 않기로 했다. 3주택 이상 다주택자의 세율도 2.0~5.0%로 낮췄다. 결과적으로 고가 주택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더 큰 감세 혜택이 돌아갔다. 만약 더불어민주당이 끝까지 반대했다면 종부세법은 개정되지 않았을 것이다. 국민의힘 단독으로는 어떤 세법 개정도 불가능했다. 그 점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이 약속한 ‘초부자감세’에 정말로 반대한다면 더불어민주당이 법 개정에 끝까지 합의해주지 않으면 된다. 불평등 해소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더불어민주당이 굵직한 불평등 완화 법안을 만들어 승부를 걸면 된다.
아는 사람만 아는 사실. 윤 대통령이 재건축 아파트 소유주들에게 약속한 ‘용적률 완화’는 알고 보면 더불어민주당이 먼저 내세운 정책이다. 지난 대선 때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후보가 재건축 아파트의 용적률을 500%까지 높여주겠다는 파격적인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현행법 시행령에 없는 ‘4종 일반주거지역’을 신설하겠다고 했다. 안전진단 기준을 개선해 재건축을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도 빼놓지 않았다. 한편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1기 신도시의 일부를 용적률 500% 준주거지역으로 종상향하고 서울 역세권의 민간 재건축 용적률을 현행 300%에서 500%로 상향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양쪽 다 재건축 소유주들의 욕망에 호소하는 공약이지만, ‘4종 일반주거지역 신설’과 ‘준주거지역 종상향’은 엄연히 다르다. 역세권 용적률만 500%로 하겠다는 것과 모든 재건축 아파트 용적률을 500%까지 높여주겠다는 것도 다르다. 적어도 재건축과 관련해서는 지난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더 막나갔다고 말할 수 있다.
금융 과세는? 원래 문재인 정부의 대선 공약과 국정방침은 조세 형평성을 위한 자산소득 과세 확대였다. 문재인 정부의 재정개혁 특위에서도 금융소득이 상위 계층에 집중되어 있다면서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 금액을 현행 2000만 원에서 1000만 원으로 하향하는 방안을 권고했다. 하지만 그 방안은 실현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의 몇몇 의원이 금융소득 과세제도 개편 법안을 발의했지만 청와대와 기재부는 “보유세 인상과 금융소득 종합과세 강화를 한번에 추진하긴 힘들다”며 이를 가로막았다. 그래서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 금액은 여전히 2000만 원이다.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이 되는 대주주 기준은 박근혜 정부 때부터 단계적으로 낮추기 시작해서, 문재인 정부 때 종목당 10억 원까지 낮아졌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임기 초 ‘2017년 세법개정안’에 담았던 로드맵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2021년 4월부터 종목당 3억 원으로 대주주 기준을 변경해야 했으나, 주식투자자들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은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이나 “코로나 위기 극복”을 생각해야 한다며 재검토 의견을 내놓았다. 오히려 홍남기 부총리가 당초 안대로 3억 원을 고수하자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기재부 관료보다도 단호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대주주 기준은 10억 원으로 유지되었다. 그리고 지난 연말 윤석열 정부가 그것을 50억 원으로 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고액 자산소득자들의 입김에 휘둘리지 않고 2021년에 대주주 기준을 3억 원으로 바꿨다면? 윤석열 정부가 갑자기 50억 원이라는 숫자를 내놓지는 못했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초부자감세’ 드라이브는 심각한 문제다. 경제는 못 살리면서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사회를 더 암울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초부자감세’라고 비판하는 더불어민주당도 매번 적당한 ‘부자감세’를 선택한다는 데 국민의 불행이 있다. 부자감세만 그런 것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 때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사회, 노동 사안들이 윤석열 정부 들어서서 본격적인 문제로 불거진 것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과거의 오류를 반성하지 않는다. 답답하고 또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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