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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빠진 집권 여당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5일 취임 한 달을 맞는다. 한 위원장은 법무부 장관 시절부터 형성된 강력한 팬덤을 토대로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는 차별화된 개혁 과제를 내놓으며 쇄신 작업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사천(私薦)’ 논란과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 수수 의혹 등을 둘러싸고 러닝메이트인 대통령실과 정면충돌하면서 당정 관계 정상화 시도에 제동이 걸렸다. 이제 총선까지 남은 77일 동안 답보에 빠진 당 지지율 반등과 당정 신뢰 관계 회복, 공천 잡음 최소화 등 산적한 과제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완수하는지에 따라 총선 결과는 물론 ‘정치인 한동훈’의 운명도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12월 26일 국민의힘 사령탑으로 임명된 한 위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운동권 청산론’과 ‘국회의원 특권 포기’ 등 잇따른 정치 개혁 화두를 던지며 화려하게 등판했다. 여의도에 부채가 없는 ‘비(非)정치인’이라는 자산을 활용해 기성 정치인들과의 차별화를 꾀하며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대항마로 떠올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새해 초부터 2주간 전국 시도당 신년 인사회를 돌며 확인한 강력한 팬덤은 한 위원장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한 위원장은 ‘영남당 이미지’ 탈피에도 적극 나섰다. 그는 광주를 찾아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는 문제에 적극 찬성하는 등 이념에서 유연한 모습 보였고 “총선 승부처인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층)’의 민심이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당내 호평도 얻었다. 여당의 한 수도권 의원은 “비상대책위원회 출범 이후 청년부터 노년층까지 당에 대한 민심이 사뭇 달라진 것을 피부로 느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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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 것 없어 보이던 한동훈표 쇄신은 ‘당정 관계 정상화’ 작업에서 급제동이 걸렸다. 한 위원장이 김 여사의 명품 백 수수 의혹 대응 방향으로 “국민 눈높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자 대통령실은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출하며 양측이 정면충돌했다. 한 위원장은 총선을 앞두고 ‘윤석열 아바타’라는 꼬리표를 떼고 당정 관계 재정립을 시도했지만 대통령실이 한 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하면서 결국 미완에 그치게 됐다.
전날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극적 만남으로 갈등은 봉합 수순으로 들어섰지만 갈등의 불씨는 살아 있다. 갈등의 진원지였던 김 여사 의혹에 대한 양측의 생각은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한 위원장은 이날 김경율 비상대책위원의 사퇴 요구에 대해 “그런 이야기를 들은 바 없다”고 일축했고 김 여사 의혹에 대해서도 “제 생각은 이미 충분히 말씀드렸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김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빗댄 김 비대위원의 사퇴로 양측이 출구를 찾을 것이라는 전망에 선을 긋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해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한 셈이다. 반면 대통령실은 김 여사 의혹은 ‘몰카 공작’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앞으로 한 위원장이 풀어야 할 과제는 수두룩하다. 당장 다음 달 본격화될 공천 정국에서 당정 간 긴장 수위를 관리하며 총선 승리를 견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천은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서로의 지지 기반 구축을 위해 양보할 수 없는 문제다. 특히 윤 대통령의 홍위병 역할을 자처해온 당내 친윤계 인사들의 공천 여부를 두고 양측이 다시 얼굴을 붉힐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의 한 재선 의원은 “한 위원장이 ‘공천 책임자는 본인’이라고 말한 것을 두고 영남권에서 거부감이 상당하다”며 “공천 시즌 당정 갈등은 상수로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한 위원장이 개혁 과제들을 완수하며 총선에서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지는 향후 지지율 추이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주 국민의힘 지지율은 40%에 육박하며 10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지만 이번 주 들어 컨벤션 효과를 일부 반납해 30% 중반대로 다시 주저앉았다. 우선 국민의힘 지지율이 40%대를 돌파하는지에 따라 김 여사 의혹 대응 방향과 공천 등 당정 간 주도권 경쟁의 양상이 좌우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한 위원장은 김 비대위원에 대한 모종의 조치를, 대통령실은 김 여사 의혹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며 “총선 패배는 윤 대통령이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하는 동시에 한 위원장의 정치적 미래도 사라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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