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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는 소설가 ‘산드라’의 남편이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다. 사인은 추락사. 외진 곳에 위치한 집 마당에서 발견된 탓에 뚜렷한 목격자는 없다. 그날 집에 있던 사람은 산드라와 아들 ‘다니엘’뿐이다. 산드라는 남편의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까. 시각장애가 있는 다니엘은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증언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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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출신 쥐스틴 트리에 감독의 영화 ‘추락의 해부’는 어느 날 가족 앞에 닥친 죽음 속에서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룬 영화다. 영화는 관객에게 그날의 이야기를 보여주지 않는다. 산드라가 피고인으로 선 법정의 배심원에게 보여주듯이, 무작위하게 밝혀지는 증거를 배치할 뿐이다.
점차 밝혀지는 가족의 그늘은 짙다. 남편 ‘사무엘’의 부주의로 어린 시절 다니엘이 시각장애를 가지게 된 후 부부는 갈등에 시달려왔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나날이 승승장구하는 산드라의 커리어에 비해 사무엘은 작가를 꿈꿨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다. 산드라는 두 차례 외도를 가졌다. 독일 국적의 그는 사무엘의 고향인 프랑스 집에서 영어를 사용한다. 언어의 문제는 법정에서도 산드라를 불완전한 지위에 놓이게 한다. 설명 없이 시작된 영화의 도입부에도 긴장감이 감돈다. 한 대학생이 산드라를 인터뷰하던 중 느닷없이 경쾌한 음악이 울려퍼지고, 음악의 산뜻한 분위기와 정반대로 산드라의 표정은 굳는다. 그 직후 추락 사고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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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산드라는 의심스럽지만, 한편으로는 검사의 음해에 시달리는 희생양 같기도 하다. 독일 출신 배우 산드라 휠러의 탁월한 연기력이 이를 증명한다. 영화 초반 산드라는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에 혼란스러운 배우자의 모습을 보인다. 동시에 가족의 사생활이 공개되는 것에 항변하는 강인한 모습을 보인다. 그에 따르면 법정에서 드러난 가족의 속사정은 일부에 불과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작 중 산드라가 가장 연약해지는 지점은 다니엘이 부부 사이 갈등을 알게 되고 산드라를 거부하는 장면이다. 남편을 향한 사랑과 증오, 유명 작가로서의 사회적 체면이 뒤섞인 산드라의 인격은 모성 앞에서 산산이 부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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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장면이 주가 되기 때문에 이 영화는 법정 영화로 분류된다. 제목이 시사하듯 오토 프레밍어 감독의 영화 ‘살인의 해부(1959)’와 한 사건을 두고 검사와 변호사의 변론이 촘촘히 쌓이는 점이 유사하다. 그러나 법정에서의 드라마보다도 영화가 집중하는 것은 가족의 내밀함이다. 여느 표본과는 달리 날카로운 해부의 끝에 명확한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황과 추정만이 존재할 뿐이다. 쥐스틴 트리에 감독은 “관계의 추락을 그려낸 영화를 만드는 게 목표였다”면서 “법정은 흩어지고 모호한 요소들을 모아 함께 늘어놓고 타인에 의해 판단되는 장소다. 그것이 내가 관심을 가진 부분”이라고 밝혔다. 산드라 휠러조차도 자신이 맡은 역할이 범인인지 알지 못하고 연기에 나섰다고 한다.
그럼에도 작 중 어머니인 산드라를 믿을지 고민하는 다니엘은 관객과 함께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는 “확실하지 않은데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다니엘의 선택은 가족의 몫이 되었지만, 관객은 여전히 모호한 결말을 맞이한다.
작품은 지난해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이로써 쥐스틴 트리에 감독은 황금종려상을 받은 세 번째 여성 감독이 됐다. 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각본상과 비영어권작품상을 차지했다. 작품은 오는 3월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상에서 작품·감독·각본상 등 5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배우 산드라 휠러는 여우주연상 유력 후보로 점쳐지고 있다. 151분. 오는 3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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