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거주 의무 폐지’ 1년 가까이 제자리걸음
1·10대책 발표했지만, 법 개정 사항만 18개
‘설익은 정책’ 시장 혼란 자초…정부 신뢰도 저하 우려
“이제 5년 정도 있으면 우리 아파트도 지은 지 30년이 넘어. 정부에서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데 얼마 안 있으면 슬슬 재건축 얘기 나오겠다. 안 그래?”
“에이, 돼야 하는 거지. 정책 발표한다고 당장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법도 고치고 할 게 많은데 이러다 엎어져도 모를 일이야.”
지난 주말 부모님과 나눈 대화다. 정부가 새해 벽두부터 1·10 부동산대책을 발표하며 정비사업 활성화를 통한 주택공급 확대 의지를 내비쳤다. 침체된 지방 부동산시장 수요진작책도 포함됐다.
앞으로 준공 30년 초과 노후 아파트에 대해선 안전진단 없이도 재건축 절차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핵심이다. 여기에 신축 빌라나 오피스텔, 지방에 적체된 미분양을 사면 각종 세제 혜택은 물론 주택수에도 포함시키지 않기로 했다.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대책이지만, 이번 대책을 바라보는 시장의 반응은 엇갈린다. 일부 정비사업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정부 정책을 믿어도 되냐는 의구심이 적지 않다. 4월 총선을 앞둔 포퓰리즘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1·10대책 관련 세부 추진 과제는 총 79개다. 이 중 절반 이상인 46개가 법 또는 시행령 개정 사안이다. 시행령 개정은 정부가 바로 추진할 수 있지만, 18개에 이르는 법 개정 사안은 국회 동의 없이 실효성을 얻기 힘들다.
과거 정부의 부동산 정책만 발표되면 기다렸단 듯이 시장이 들썩이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정부 발표를 믿고 기다렸다가 낭패를 본 ‘학습효과’ 때문이다.
여전히 국회 문턱조차 넘지 못한 ‘실거주 의무 폐지’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지난해 초 전매제한 완화와 함께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선제적으로 전매제한은 완화됐지만, 곧장 시행될 것 같던 실거주 의무 폐지는 1년 가까이 주택법 개정안이 국회에 가로막히면서 지지부진하다.
이 때문에 자녀 교육, 자금 마련 등의 이유로 당장 실거주하지 못하는 수분양자의 발등에는 불이 떨어졌다. 정부 부동산대책의 최대 수혜 단지로 평가되던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재건축)은 분양권 거래가 막히면서 근거 없는 소문이 나도는 등 조합원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업계에서도 대책 시행에 필요한 후속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한국주택협회와 대한주택건설협회는 “이번 대책이 시장에서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선 조속한 법령개정 등 후속조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여야 강대강 대치라는 정치환경 속에서 상당수 포함돼 있는 법률 개정사항이 원만히 처리될 수 있도록 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국민 대다수는 여전히 정부 정책은 어떻게든 시행될 거란 믿음을 전제로 둔다. 하지만 우선 정책부터 발표하고 뒤늦게 국회를 설득하는 지금의 방식으로는 그 믿음을 스스로 깎아 먹을 수밖에 없다.
양치기 소년의 말을 믿는 마을 사람들은 없다. ‘국회 동의를 구하기 힘들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등의 부연은 그저 핑계에 그친다. 설익은 정책부터 우선 내놓는 것이 아닌 정부에 대한 신뢰를 끌어올리고 정책 실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먼저 고민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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