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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이 있습니다. 인기 웹툰 작가 주호민씨의 자폐 아들을 정서적으로 학대했다는 혐의로 특수학교 교사가 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게 된 사건인데요. 특수학교 교사의 정서적 학대에 대한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주씨 부부가 몰래 녹음을 시도한 게 특히 논란이 됐는데요.
주씨 부부는 아들의 책가방에 녹음기를 숨긴 채 아이를 등교시켰습니다. 학대 증거를 찾기 위해서였는데요. 주씨 부부는 이렇게 녹음된 특수교사의 발언을 수사기관에 증거로 제출했고 검찰은 해당 녹음파일의 내용을 바탕으로 특수교사를 기소했습니다.
이후 검찰은 특수교사에 대해 징역 10개월과 취업제한 3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하는데요. 수원지법 형사9단독 곽용헌 판사 심리로 진행된 해당 사건의 결심 공판에서는 ‘몰래 녹음한 파일’의 증거능력이 쟁점이 됐습니다.
곽 판사는 “최근 대법원에서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에 관한 판결이 선고돼 검토가 필요하다”며 “검찰과 변호인 모두 추가 의견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서면으로 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주씨 부부가 아이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몰래 녹취한 행위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는데요. 몰래 녹음한 행위가 불법 녹음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았습니다.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통신 및 대화비밀의 보호)①누구든지 이 법과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우편물의 검열·전기통신의 감청 또는 통신사실확인자료의 제공을 하거나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
제14조 (타인의 대화비밀 침해금지)①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하여 청취할 수 없다.
◇상대방 동의 없이 몰래 한 녹음…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몰래 특수교사의 발언을 녹취한 주씨 부부의 행위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라는 지적인데요. 통신비밀보호법 제14조에 따르면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해 청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타인간의 대화를 몰래 녹음한다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에 따른 법적 책임을 지게 될 수 있습니다. 불법 녹취가 인정되면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자신을 험담한다는 소문을 확인하고자 타인 간의 통화 내용을 녹음하고 지인을 속여 돈을 가로챈 50대 여성 A씨가 실형을 선고받은 사건이 있었는데요.
A씨는 2021년 11월 25일 지인이 휴대전화 스피커폰 기능을 이용해 B씨와 통화하는 것을 자신의 휴대전화로 몰래 녹음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A씨는 봉사 단체에서 만난 B씨가 자신을 험담한다는 소문을 듣게 됐는데요. 이를 증거로 남겨두기 위해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재판부는 “범행 발단이나 귀책사유가 누구에게 있는지를 불문하고, 사생활과 통신의 비밀과 자유에 대한 보호 필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사회적 상황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의 죄책이 절대 가볍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대구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이종길)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6개월과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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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참여한 대화 몰래 녹취도 통비법 위반?
만일 자신이 참여한 대화를 몰래 녹음하는 경우는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한 것과 달리 법적 문제가 없을까요?
법에 따르면 자신이 참여한 대화인 경우 불법 행위로 보기 어려운데요. 최근 기존의 판례와는 상이한 판결이 나왔습니다.
상대방이 몰래 휴대전화 통화를 녹음한 경우 사생활 침해가 크다면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입니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이흥구)는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C씨와 D씨에게 징역 10개월을, E씨에게 징역 1년 4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C씨 등은 2019년 3월 수산업협동조합 조합장 선거에서 후보자 D씨의 선거운동원으로 활동했는데요. E씨의 당선을 위해 금품 제공, 선거인 방문, 대량 메시지 발송 등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C씨로부터 압수한 휴대전화 포렌식을 통해 C씨와 그의 배우자 F씨, 다른 피고인 간 통화 녹음 파일을 확보했는데요. C씨의 휴대전화는 통화 녹음 기능이 꺼져 있었으나 배우자인 F씨가 몰래 자동 녹음 기능을 켜 약 3년 동안의 통화 내용을 녹음해 둔 것이죠.
검찰은 해당 녹음 파일을 증거로 제출했는데요. 1심과 2심은 이들의 혐의를 대부분 유죄로 인정해 징역형을 선고했습니다.
해당 선고에 대해 B씨 등은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르면 배우자와의 녹음 파일은 ‘사인(개인)에 의한 위법수집증거’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하며 상고했는데요. 법 해석에 따르면 해당 녹음 파일은 증거로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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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해당 사안의 경우 녹음파일을 정당한 증거로 볼 수 있다며 상고를 기각했습니다.
대법원은 C씨의 배우자가 사생활을 침해했다고 볼 여지는 있지만 직접 대화를 나누며 통화를 녹음했기 때문에 침해 정도가 크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아울러 배우자가 녹음파일을 외부에 유출하지 않았다는 점도 고려했는데요. 범행 증거 수집을 위한 의도로 녹음이 이뤄지지 않았으며 선거 과정 속 금품 살포 행위는 비밀리에 이뤄지기에 범행 내용이 담긴 녹음파일을 증거로 사용할 필요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증거수집 절차가 개인의 사생활이나 인격적 이익을 중대하게 침해해 사회통념이 허용한 한도를 벗어났다면 진실 발견이라는 공익이 우월하다고 섣불리 단정해선 안 된다”고 밝혔는데요.
통화 당사자라도 몰래 녹음한 경우 녹음 경위와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생활이나 인격적 이익을 중대하게 침해했다고 판단되면 형사사건에서 증거로 인정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죠.
대법원 관계자는 “전화 통화 일방당사자의 통화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이 문제가 된 상황에서 녹음 경위와 내용 등이 사생활을 중대하게 침해한 경우 증거능력이 부정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밝혔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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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의 증거능력을 판단할 때 재판부의 기준은 구체적이지 않습니다. 사생활 침해 정도와 증거가치의 비중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인데요. 따라서 재판부는 개별 사건의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판단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법률 전문가들은 대법원이 위법 수집 증거의 증거능력 판단에 대한 세부적인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글: 법률N미디어 인턴 김소은
감수: 법률N미디어 엄성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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