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임팩트 박민석 기자 ] 오리온이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이하 레고켐) 인수를 발표한 이후 외국인 투자자들이 오리온 주식을 대거 팔아치우고 있다. 일각에선 이번 결정이 이화경 부회장 등 오리온그룹 오너일가의 의견만 반영한 전형적인 코리아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사례라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오리온 측은 과거부터 바이오 사업에 투자해왔으며 실질적인 성과가 나올 때까지 레고켐 인수의 성패를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2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3시 20분 기준 오리온의 주가는 전거래일 9만2000원 대비 2100원(2.28%) 하락한 8만9900원에 거래 중이다.
레고켐 지분 인수 공시가 나온 다음날인 지난 16일부터 19일까지 오리온의 주가는 21.4% 하락했다. 오리온 주가의 하락세를 이끈 건 외국인들이었다. 같은 기간 외국인은 오리온 주식을 1525억원 어치 순매도 하며 코스피 종목 중 가장 많이 내다 팔았다.
오리온은 지난 15일 장마감 후 약 5500억 원을 투자해 레고켐의 지분 25.73%(유상증자와 구주 매입)를 확보한다고 공시했다. 인수 주체는 오리온 홍콩 법인인 팬오리온이며 주식 인수는 오는 3월 29일로 예정됐다. 계획대로 오리온이 지분을 매입하게 되면 차세대 항암제로 불리는 항체 약물 접합체(ADC)로 전 세계에 기술력을 인정받은 레고켐의 최대주주로 올라선다.
이번 오리온의 레고켐 지분 확보는 각각 바이오사업을 통한 성장과 R&D(연구개발) 자금조달 목적에 있다. 하지만 레고켐의 과거부터 이어져 온 실적 부진과 신약개발 비용과 투자 리스크에 대한 부담으로 오리온의 주가가 급락했다는 것이 증권가 분석이다.
실제 레고켐은 2013년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이후 2019년 한해를 제외하곤 모두 영업적자를 기록해 왔다. 지난해 3분기 누적 영업손실은 556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6.5% 증가했는데, 결국 오리온이 레고켐 인수 후 관계회사로 회계처리 할 경우 오리온의 실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레고켐의 R&D 비용 부담도 있다. 레고켐은 향후 5년간 약 1조원을 투자해 ADC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현재 오리온이 연간 4000억원 수준의 현금을 창출하곤 있지만, 이를 고려해도 레고켐에 지원이 이어진다면 본업인 제과사업에 투자할 여력이 부족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바이오업계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신약개발은 투자기간이 길고, R&D에 소요되는 자금도 커 안정적인 투자 자금 확보가 중요하다”며 “다만 자금이 많아도 늘 성공하는 것이 아니어서 리스크가 현실적으로 큰 편인 만큼 지원이 지속되면 비용 부담은 커질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전형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사례…이사회 감시 미비”
이에 경영진의 레고켐 인수 결정을 방관한 오리온 이사회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KCGF)은 지난 21일 논평을 통해 “이번 오리온의 레고켐 투자는 대표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사례”라며 “시가총액 5조의 우량 제과 회사 오리온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창피한 단어를 전 세계에 수출했다”고 비판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주장은 오리온의 이번 레고켐 지분 인수가 일반 주주 등 이해관계자들의 의사는 무시한 채 대주주(이화경 부회장 등 오너일가)만 고려한 결정이라는 것.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외국인이나 일반 투자자들은 우량 제과 회사에 투자했는데, 갑자기 본인 의사와 반대로 이름도 생소한 바이오 회사에도 투자한 셈”이라며 “대주주가 일방적 의사 결정을 내릴 때 이를 경영진이 막지 못하고 권력기관 출신 중심의 사외이사로 구성된 이사회는 반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개인 돈으로 소셜미디어 엑스(과거 트위터)를 인수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최고경영자)를 예로 들며 “이화경 오리온 부회장 패밀리가 바이오 투자에 관심 있다면 본인 개인 자금 또는 패밀리 지분이 67%인 오리온홀딩스를 통해 투자 집행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이어 “길거리에서 남의 돈을 훔치면 범죄인데 회사에서 일반 주주 이익과 의사에 반하는 행위로 일반 주주의 현금과 현금흐름을 유용하는 것은 왜 범죄가 아닌가”라며 “상법 내 이사의 충실 의무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반드시 추가해야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오리온, “바이오 사업 장기적으로 봐야..향후 그룹 성장에 기여 할 것”
다만 오리온에서는 며칠간 주가 추이로 이번 지분 인수의 성패를 판단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입장이다.
오리온 관계자는 데일리리임팩트에 “바이오 사업은 고부가가치 사업이기에 장기적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다”며 “레고켐은 이미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인정 받는 기업이기에 향후 오리온 그룹 성장에 기여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리온은 바이오 사업 특성상 성과가 늦게 나타나고, 과거부터 바이오 산업 진출을 준비해 왔기에 이번 레고켐 투자도 장기적으로 봐야한다는 입장이다.
오리온은 지난 2018년부터 글로벌 식품·헬스케어 기업으로의 도약을 선언하면서 본격적으로 바이오 산업 진출을 준비해왔다. 앞서 허인철 오리온 부회장은 △음료(생수) △간편대용식 △바이오 사업을 3대 신사업으로 꼽아 주목을 받았다.
이후 2019년 주주총회에선 바이오의약품 개발·제조 등 사업을 정관에 추가했다. 이듬해 10월에는 중국 국영 제약사인 산둥루캉의약과 합자법인 ‘산둥루캉하오리요우’를 설립하고, 대장암 체외진단 임상 2상에 들어가며 바이오 산업 진출을 본격화했다. 지난해 6월 치약연구소를 설립하고, 지난해엔 국내 바이오업체인 알테오젠 대규모 M&A에 나서기도 했었다.
증권가 반응도 긍정적이다. 오리온의 레고켐 인수가 오리온 재무에 미칠 영향은 한정적이며 레고켐도 신약개발을 위한 충분한 자금을 갖고 있다는 설명이다.
장지혜 DS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18일 리포트를 통해 “시장의 우려는 레고켐을 향한 지속적인 현금 유출 가능성과 단일 사업 구조의 훼손이지만 이는 기우”라며 “오리온 입장에서 레고켐은 손자회사로 그룹의 신성장동력인 바이오 사업을 위한 투자 자산의 성격이 강하며 오리온 본사 실적에 미칠 영향도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레고켐이 지난 12월 얀센으로부터 확보한 계약금 1300억원과 향후 발생할 마일스톤, 오리온으로부터 확보한 현금까지 고려했을 때 향후 손익이 악화되거나 추가 투자 금액 발생 가능성은 낮다”며 “순현금 구조인 오리온 그룹의 가용 자금 1조원 중 일부를 투자한 것으로, 생산설비투자(CAPEX) 투자금액과 현금흐름을 고려했을 때 본업에 대한 투자 여력도 충분하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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