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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님, 혼인신고했으니 감형해주세요”…이게 된다고? [서초동 MSG]

이투데이 조회수  

피고인들의 혼인과 감형

한해 전국 법원에서 다루는 소송사건은 600만 건이 넘습니다. 기상천외하고 경악할 사건부터 때론 안타깝고 감동적인 사연까지. ‘서초동MSG’에서는 소소하면서도 말랑한, 그러면서도 다소 충격적이고 황당한 사건의 뒷이야기를 이보라 변호사(정오의 법률사무소)의 자문을 받아 전해드립니다.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를 운영한 손정우는 항소심이 선고되기 16일 전쯤 혼인신고를 했다. 그는 “부양할 가족이 생겼다”며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했고, 결국 징역 1년 6개월이 선고됐다.

손정우가 저지른 범죄를 고려하면 턱없이 낮은 처벌이 아니냐는 말들이 나왔다. 그가 석방된 직후 빠르게 이혼을 한 사실이 알려지며 ‘혼인신고라는 꼼수로 형량을 줄이려한 것’이라는 비판이 거세졌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실제로 법원은 이처럼 가족부양을 감형인자로 고려하는 양형기준으로 두고 있다. 부양가족의 유무, 피고인의 구금 여부가 부양가족의 생계에 과도한 곤경을 미치는 경우를 폭넓게 고려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재판에서 혼인·임신·출산은 형량을 깎아 줄 좋은 명분이 된다.

형이 확정된 재소자의 경우 혼인신고를 했을 때 보호관계가 성립되기 때문에 가석방이 빨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일부 재소자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진 ‘팁’이라고 한다.

뉴시스 아동 성착취물 다크웹 사이트 ‘웰컴투비디오’를 운영해 징역형을 받고 복역을 마쳤던 손정우가 2022년 5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범죄수익 은닉’ 혐의와 관련 1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그 팁을 악용하는 사례도 있다. 자녀의 재판 선고를 앞둔 한 부모님이 재판부에 ‘가짜 청첩장’을 제출했다. 결혼을 준비 중이니 양형에 반영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눈치가 빨랐던 판사는 그 속내를 꿰뚫어 알아차리고 보다 ‘센 실형’을 선고했다.

구속되자마자 혼인신고부터 한 피의자도 있다. 그런데 수사 과정에서 심리적 압박을 받았던 것인지 ‘양형을 위해 혼인신고를 했다’고 수사관에게 실토했고, 결국 얼마 뒤 이혼했다.

수감된 남자친구의 양형에 참작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교제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혼인신고를 한 여성도 있다. 이 여성은 2020년 혼인무효소송을 제기했는데 부산가정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두 사람은 교제한지 불과 3개월 만에 구치소에 수감됐는데, 수감된 지 2개월 만에 여성 혼자 혼인 신고를 했고 이후에는 전혀 교류가 없다”며 “양형에 참작될 수 있다는 말을 믿고 그를 도울 목적으로만 혼인신고를 하였다는 원고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고 밝혔다.

기혼의 피고인은 ‘혼인으로 사회적 유대관계가 분명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 한다. 가족 간의 주고받은 서신이나 서신수·발신 내역과 접견 내역서를 양형 자료로서 제출하는 경우도 서초동에서 한동안 유행한 ‘잘 먹히는’ 양형자료였다.

이같은 사례들은 혼인 여부가 양형을 좌우하는 주요한 기준 중 하나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피고인의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설정된 기준이지만 때로는 악용되기도 한다.

이보라 변호사(정오의 법률사무소)는 “이토록 종이 한 장에 불과한 혼인신고서가 죄질과는 무관하게 피고인의 인생을 좌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가해자가 충분히 죗값을 치르기를 원하는 피해자 입장에서는 또 다른 상처를 주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투데이 DB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교도소에서도 사랑은 계속된다

이처럼 양형을 위한 ‘위장 혼인’이 아닌 ‘진짜 사랑’도 있다. 기혼의 피고인이 구속되면 이혼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오히려 부부간의 정이 더 깊어지는 사례가 서초동 풍문으로 전해진다.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의 아내는 재판 과정에서 남편을 위한 탄원서를 내기까지 했다.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이뤄지는 교정본부 접견은 고작 10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배우자들은 명절 기차 예매만큼 전쟁 같다는 접견 예약에 매주 뛰어든다.

같은 방 재소자들에게 아내를 잘 부탁한다며 커피믹스를 돌린 남편도 있었고, 배우자가 매일 같이 눈물 젖은 편지를 보내 힘든 수감 생활을 잊을 수 있었다는 피고인들도 많다.

오히려 밖에 있을 때보다 배우자와 더 자주, 소소한 대화를 많이 나누는 것 같다고들 말한다. 이 변호사는 “굳이 변호인 접견 말미에 ‘배우자에게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전해주세요’라고 몇 번이나 다짐을 받아내는 피고인들을 보면서 애틋함에 젖은 눈빛에 홀려 꼭 전해주리라고 안심을 시키곤 한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이러한 모습을 볼 때면 행형의 목적인 교정교화·반사회성의 개선·재사회화에 있어서 가족이나 사회적 유대관계가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이를 양형에 적극 반영하는 것이 납득되기도 한다”며 “특히 배우자의 마약류 사용 재판을 계기로 마약 중독의 개선을 위해 마약퇴치운동본부의 가족 자조모임에 참여하거나 가족의 실천전략 프로그램을 수강하면서까지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피고인이 배우자에 의하여 교화되었다는 판단에 동조되기도 한다”고 했다.

이투데이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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