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엘리트 출신으로 자유 갈망해 귀순
최연소 장관 정책보좌관 거쳐 정치 입문
“국격 끌어내리는 정치문화 개혁하고파”
“운동권 내재적 접근법, 모든 궤변 시작”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말해 큰 파장을 일으켰던 1995년 ‘베이징 발언’으로부터 3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과연 그 사이에 우리 정치는 4류에서 조금이라도 랭크가 올랐을까. ‘헌정사상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 21대 국회의 모습을 보며, 일말의 기대마저 내려놓는다는 국민이 적지 않다.
과연 우리 정치, 우리 국회, 우리 정당은 무엇이 문제이며, 어떻게 해야 ‘4류 정치’를 청산하고 선진 정치로 나아갈 수 있을까. 데일리안은 ‘4류 정치 청산’을 주제로 하는 연속 인터뷰를 통해 그 길을 찾아보고자 한다. 마흔 번째 순서로 김금혁 전 국가보훈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만났다.
북한 평양 출생으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으로 2012년 귀순한 김 전 보좌관은 각종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해결하며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이듬해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지난 2021년 국민의힘 토론배틀에 합격하며 정치에 의지를 보였고, 윤석열 캠프에 합류해 인수위도 경험했다. 2023년에는 국가보훈부 장관 정책보좌관(5급 사무관)으로 채용됐는데 역대 최연소였다. 1991년생인 그의 나이 32세 때 일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것이 아닌 스스로 갈구해 쟁취했던 자유였기에 대한민국의 일원으로서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깊고, 무엇보다 북한의 인권문제에 관심이 크다. “모든 궤변이 가능한 것이 운동권의 내재적 접근법”이라며 더불어민주당 대북정책의 허상을 누구보다 정확히 꼬집었다. 나아가 김정은 일가 세습 독재 체제를 인정한 채로 통일 담론은 이어갈 수 없다고 단언한다.
현실정치에 뛰어든 결심을 하게 된 것은 ‘낙후된 정치문화’가 대한민국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외국에서 느낀 대한민국의 소프트 파워는 10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여의도로 눈을 돌리는 순간, 국격에 어울리지도 않고 국민 눈높이에 한참 뒤떨어진 전혀 다른 모습을 용납할 수 없었다”고 그는 말한다.
다음은 김금혁 전 국가보훈부 장관 정책보좌관과의 일문일답이다.
Q. 북한 출신이라는 이색 이력을 가지고 있다. 북한에서는 어떻게 지냈고, 왜 어떤 과정을 거쳐 한국으로 오게 됐는지 궁금하다.
“북한 평양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까지 3대가 평양에서 살며 유복하게 자란 편이다.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북한 정권에 충성해서 덕을 입었고, 학교도 좋은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평양외고와 김일성 종합대학 영문과를 나왔다.
그런데 2009년 북한에 큰 변화가 찾아온다. 김정은 후계자 작업이 있을 때였는데, 그전까지 이과생 소수만 유학을 보냈고 문과생은 전혀 내보내지 않았다. 아마도 사상적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다고 판단했을 거다. 그런데 2009년 갑자기 바뀌어서 1기로 2010년 베이징대로 유학을 갔다.”
Q. 북한에서 상당히 엘리트였던 것 같은데.
“맞다. 유학비용 전체를 본인들이 낼 수 있어야 했고, 부모 중 한 명은 유학지에 함께 있어야 했다. 정부가 다 관리를 못했으니까. 아버지가 중국에서 사업을 해 가능했다. 초기 3개월까지는 선택된 소수 엘리트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대사관 같은 데에서도 품위유지를 주문했다.”
Q. 북한 엘리트의 삶을 버리고 대한민국으로의 귀순을 결정한 계기가 있다면.
“최악의 독재국가에서 살다보니 상대적으로 중국에서 느껴지는 자유로움이 상당했다. 감시가 줄어드니 다양한 활동을 했고 중국의 발전 모습이 눈에 들어오더라.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데 어떤 나라는 시궁창이고 여기는 왜 이렇게 잘 사는가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그때 하필 천안함 폭침 사건이 발생한다. 그전에는 한국 학생들과도 잘 지내는 편이었는데 이후 냉랭해졌다. 어색함을 풀어보고자 토론을 했는데 그게 변화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천안함 관련 치열한 토론을 벌이다가 북한 체제 문제, 구조적 문제로 확대됐다. 팩트에 기반한 상대의 주장을 반박하기가 어려웠다. 북한의 선전·선동에 절어있었던 과거 기억으로 하려니 게임이 안 되더라.”
Q. 북한에서는 대한민국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나.
“일절 가르치지 않는다. 계층별로 오픈되는 정보의 양과 질이 조금 다르긴 하나 일반 대중에게는 거의 공개되는 게 없다. 교과서가 사실상 전부인데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미국의 지배를 받는 식민지 국가로 묘사된다. 그런데 오히려 감추니까 궁금증이 더 폭발했고, 전에는 몰랐던 케이팝이나 드라마에 열광하는 경향도 생겨났다.”
Q. 한국에서의 생활은 어떠했나.
“12년 정도 된 것 같다. 업앤다운이 심했다.(웃음) 북한에서 삶은 어쩌면 정해진 대로 살면 되는 것이었다. 체제가 요구하는 능력치만 갖추면 지도층으로 살 수 있는 보증이 되던 삶이다. 반면 한국에서의 삶은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고, 아빠찬스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하나원을 처음 나와 배정받은 집에 가니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막연한 외로움이 있었다.
믿을 건 나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알바천국에서 아르바이트부터 찾았던 것 같다. 주말 결혼식이나 피로연 뷔페를 했고 주중에는 편의점에서 일했다. 비흡연자다보니 담배 이름을 외우는 게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노동을 통해 급여를 받고 이런 과정이 쌓여가며 자본주의에서 살아남는 법을 익혔다고 해야 하나.(웃음)”
Q. 일반 사람도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것은 어려운데 힘든 삶을 살았다.
“2013년에 고려대학교에 입학하면서 그래도 내 삶의 궤도에 다시 들어간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소속감보다 고려대학생이라는 소속감이 먼저 생겼다. 운이 좋게도 주변에 좋은 동기들이 많았다. 용기를 줬고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 때에는 외로움을 느낄까봐 일부러 와서 시간을 같이 보내줬다.”
Q. 북한 출신이라고 받은 차별은 없었나.
“왜 없었겠나. 하지만 밝히고 싶지 않다. 격려와 응원이 훨씬 더 많았기 때문이다. 꼭 북한이 아니더라도 지역에 따라 차별은 조금씩 있지 않나. 그걸 기준으로 삼으면 인생이 우울하다. 응원과 격려가 훨씬 많았고 그걸 보고 가는 거다.”
Q. 정치를 하겠다고 결심을 했는데.
“북한 인권에 관심이 많다. 태생적으로.(웃음) 인권뿐만 아니라 북한 사람들의 삶의 질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다. 과거에는 NGO에서 활동하며 역할을 고민했는데, 결국 정치권에서 해결하지 못하면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상위 레벨에서 북한에 대한 인식과 우리 국익과의 연계 등을 제시하는 정치인이 없다면 답이 없다.
둘째는 정치외교학과를 선택했을 정도로 정치를 좋아한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면서 얼마나 멋진 나라인지 느낀다. 해외에 나가면 당당히 선진국이라 얘기할 정도로 국격의 상승을 느낀다. 실제 10년 전 외국에서 ‘Do you know South Korea’라고 물어보는 것과 지금은 천치 차이다. 아예 묻기 전부터 한국어 인사를 한다. 한국의 소프트 파워가 낸 성과다.
그런데 이렇게 멋진 나라에서 여의도로 눈을 돌리는 순간 의문이 든다. 국격에 어울리지 않는 정치 행태 아닌가. 여러 가지 막말과 국민 눈높이에 부합하지 않는 당리당략 등 언제까지 이를 방치해야 하나 의문이 들었다. 나는 탈북민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50년 이상 대한민국에서 살 국민이다. 내 나라고 조국인데 이런 식의 정치는 용납이 안 된다.”
Q. 구체적으로 대한민국 정치에 어떤 문제가 보였나.
“먼저 특권이 과도하다. 특권이 많으니 특권의식이 나오는거다. 예를 들어 9명의 보좌진이 필요한가. 국회의원 자격 중에 도덕성이나 능력 검증을 강화해야 한다. 최소한 글쓰는 능력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나. 보좌진이 쓰는 것만 그저 줄줄이 읽는 의원들이 적지 않다. 각 정당에서 공천을 할 때 국민 평가제를 도입해 후보자들의 토론과 연설 능력 등을 검증해보는 것도 좋겠다.
국회의원들은 왜 고압적인가. 국민의 뜻을 대변해 상임위에서 질문하는 것인데 피감기관 기관장 태도 문제를 주로 삼는다. 질문 태도는 온당한 것인가. 국민을 대변한다는 게 국민의 종복으로서 일하는 것이지 특권은 아니다. 특권을 바탕으로 고압적인 행동을 하는 것 자체가 후진 정치문화다.
일례로 미국이나 프랑스의 청문회를 보면 굉장히 격이 높고 수준 높은 토론이 오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질의하는 사람과 답변하는 사람이 수준 높은 토론을 해주는 모습을 보여줘야 국민의 정치 혐오나 실망감도 해소할 수 있다.
특히 정치는 타협이고 공동체 안에서 갈등을 조정하는 일이다. 서로 내려놓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이어져야 하는데, 과거 운동권식 정치, 상대를 거대 악으로 몰아 붙이고 화염병을 던졌던 게 정치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걸 또 잘해야 투사로 대접받는 게 2024년에 통용되는 개념인가.
공무원 생활을 해보니 대한민국에서 가장 뛰어난 엘리트들은 공무원이더라. 국회의원이 상임위에서 활동하지만 관할 실·국장보다 전문적일 수 없다. 그럼 권위자의 답변을 존중해야 하는데, 국회의원들은 마치 자기가 다 아는 듯이 말한다. 솔직히 질문 수준 자체가 형편 없을 때도 많다. 국회의원 스스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Q. 북한 인권 문제는 북한 체제를 겨냥한 것이기 때문에 남북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다.
“모든 궤변을 가능하게 하는 게 소위 내재적 접근법이다. 북한의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인데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북한을 추종하는 종북주사파가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주장이다. 내가 정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 중 하나다.
북한 인권 문제는 김정은 정권을 겨냥한 게 맞다. 겨냥하면 안 되는 것인가. 북한이 과연 국민을 위한 정권이며 국민이 선택한 정권인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이 글로벌 시각에서 북한이 잘못하고 있다는 말 한 마디를 왜 못하는가.
남북관계가 어려워진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주장이다. 북한은 암 환자다. 수술대 위에 올려놓고 암을 도려내야 한다. 지금까지 남북관계는 보수·진보 모두 진통제만 넣었다. 북한 정권을 직접 겨냥하는 게 두렵고 파탄의 책임을 지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Q. 김정은 정권이 무너져야 남북관계를 논의할 수 있다는 말인가.
“지금 통일 담론들이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은 허구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어떻게 정반대 통치이념을 가진 국가와 통일을 할 수 있나. 그거야말로 기만이다. 일시적으로 남북관계가 단절이 될 수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직시하고 변화를 압박하고 유도하는 게 중요하지 책임이 두려워 계속 위선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남북관계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Q. 국민의힘을 선택한 것도 북한 인권 관점과 관계가 있나.
“기본적으로 우파주의자다. 시장경제를 선호하고 보편적 복지보다는 선별적 복지가 맞다는 입장이다. 경제사 사회를 바라보는 시점이 우파에 가깝다. 그리고 민주당을 선택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다. 운동권 청산을 하지 못한다면 북한을 바라보는 그릇된 관점이 고쳐지기 어렵다. 북한을 바라보는 것은 내재적 관점이 아니라 보편적 자유민주적 관점에서 봐야 한다. 글로벌 스탠다드로 보면 북한의 핵무장을 옹호하거나 유시민의 ‘김정은 계몽군주’와 같은 표현은 나오지 못할 것이다.”
Q. 정치인 김금혁은 무엇이 다른가. 김근혁은 대안이 될 수 있나.
“10년 전부터 정치인이 되기를 꿈꿔왔다. 그래서 누구보다 깨끗하게 살았다고 자부한다. 나이도 젊기 때문에 자산도 얼마 없다. 정치인은 남들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많이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자격이 있어야 한다. 내가 살아온 삶은 대한민국 평균적인 국민의 삶과 다르지 않았고, 청렴하게 살았다.
두 번째는 정치에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 정치문화 개혁과 교육 시스템 등 청사진도 마음에 품고 있고 정치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도 분명하다. 정치는 수단이지 목표가 돼선 안 된다. 정치라는 징검다리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세상에 대한 확실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 나는 비전이 있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젊음이다.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정치에 입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리당략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기 보다 32살 청년의 순수한 눈으로 현안을 보고, 귀로 국민의 목소리를 듣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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