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정부의 대규모 신용사면이 대출문턱을 높여 소비자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나온다.
제2금융권은 가뜩이나 고금리로 연체율이 급등해 영업에 신중을 다해야 하는 상황인데 신용등급 신뢰도 하락으로 향후 대출심사가 더욱 까다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의 이번 신용사면으로 취약차주의 신용등급이 부풀려지고 왜곡되면서 신용사면에 혜택을 보지 못한 일반 금융소비자의 대출 문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발표하며 250만 명의 신용점수가 평균적으로 39점이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과거 정부에서 단행된 신용사면 당시에도 신용등급 상승 효과가 나타났다. 가장 최근인 2021년 사면에서는 신용점수가 100점 이상 오른 개인만도 10만 명을 넘겼다.
금융사는 신용등급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나 고신용자보다 취약차주를 주 고객으로 둔 제2금융권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제2금융권 한 관계자는 “신용사면은 연체차주를 정상적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어 놓는 것”이라며 “차주 관점에선 기회가 될 수 있지만 금융사가 대출을 심사할 때 제대로 된 평가를 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제2금융권 다른 관계자는 “연체 이력을 삭제하면 신용등급이 고평가 되는 경향이 있어 신용도 평가가 제대로 안 될 수 있다”며 “연체정보가 사라지면 다시 대출을 받을 때 한도가 늘어날 수 있어 이 고객들이 오히려 더 많은 돈을 빌려 연체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금융사는 결국 신용등급을 믿을 수 없어 자연스레 자체 대출심사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문턱을 높일 가능성이 크다. 과거 연체이력이 있는 차주라도 보통 차주로 나와 향후 연체율관리에 애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2금융권은 최근 고금리 여파로 급등한 연체율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건전성 관리를 위해 금리 경쟁력 등을 낮추고 있고 이에 따라 저축은행과 시중은행 사이 ‘금리 역전’ 현상도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저축은행은 시중은행보다 신용도가 낮기 때문에 높은 예금금리로 고객을 끌어모은다. 하지만 최근에는 저축은행 영업 규모가 움츠러들어 시중은행보다 저축은행 금리가 낮은 사례도 종종 포착되고 있다.
이날도 저축은행중앙회와 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12개월 예금 기준 저축은행 최고금리는 4.10%, 은행 최고금리는 4.12%로 집계됐다. 대다수 저축은행이 시중은행보다 낮은 예금금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제2금융권의 어려움은 실적 측면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전업카드사 8곳 순이익은 2023년 상반기 기준 1조4168억 원으로 2022년 상반기보다 12.8% 감소했다. 저축은행 79곳은 2023년 상반기 기준으로 962억 원 순손실을 냈고 상호금융권은 농협을 제외하고는 신용사업에서 모두 뒷걸음질쳤다.
이는 과거 신용사면이 단행됐던 2021년과 현재 상황이 다르다는 평가도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당시만 해도 카드사와 저축은행, 상호금융권은 모두 코로나 기저 효과 등에 힘입어 2021년 상반기 기준 2020년보다 증가한 순이익을 거뒀다.
제2금융권의 대출 문턱은 이미 높아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대출 문턱을 의미하는 ‘대출태도’는 은행권을 제외한 모든 금융권에서 높아지고 있다. 대출태도 조사는 한국은행이 국내 금융기관 204곳 여신업무 총괄담당 책임자를 대상으로 분기별로 수행하는 조사로 (+)부호는 대출태도 완화, (-)부호는 그 반대를 의미한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0월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상호저축은행과 상호금융조합, 신용카드사, 생명보험사의 대출태도는 지난해 내내 모두 (-)을 유지했다. 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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